어쨌든 살아 볼 일이다.

죽음에 대해.

by 고운


아슬아슬한 시간을 살고 있다. 본래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근래 들어 집안에 있는 시간이 더 늘었다. 끊임없이 잠을 자지만 좀체 피곤이 풀리지 않는다. 식욕이 돌아 평소보다 더 많은 양의 음식을 먹어도 돌아서면 금세 허기가 진다. 벌컥벌컥 커피를 물처럼 마시고 책상에 앉아서는 하릴없이 가십거리를 찾아 휴대폰 삼매경에 빠진다. 담배가 늘어 아이들하고 있는 시간을 견디다 보면 자꾸만 가슴이 쿵쾅 거린다. 안 되겠다 싶어 마음을 가다듬어 보지만 쉬이 진정이 되질 않아 오히려 더 우울해지고 만다.


통제를 벗어난 날 선 감정들은 쿵쾅거리는 발소리로, 무표정한 얼굴로, 거친 호흡과 상대를 집어삼킬 듯 커다란 목소리로 몸을 뚫고 나와 나를 폭로한다. ‘또 시작이군'.이라고 말하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 울컥 눈물이 올라 후다닥 방으로 도망친다. 문을 닫고 돌아서면 순식간에 목젖을 타고 올라오는 슬픔이 너무 아파서 나도 모르게 손으로 목을 그러쥔다. 차마 뱉어내지 못한 울음은 송곳이 되어 나를 찌른다.

내가 그다지 좋은 인간은 되지 못한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나를 보는 아이들의 얼굴로 그러한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차마 감당치 못할 부끄러움을 느끼게 만든다. 수치스럽다는 표현으로도 다 담아낼 수 없는 부끄러움이 가슴을 조여 오는 것이다. 그렇게 턱 하고 숨이 막혀올 때면 종종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살아있는 것이 이토록 부끄럽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낫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




그런 날이면 엄마를 떠올린다. 낡은 엘란트라에 몸을 싣고 6차선 도로를 역주행했던 엄마, 지금의 내 나이 즈음 양주 한 병을 입속에 들이붓고 꼴 딱 꼴 딱 숨이 넘어갔던 엄마. 응급실 침대에 누워 옆으로 고개를 돌린 채 위세척을 하던 엄마를 보면서 열여섯의 나는 처음으로 '사는 게 참 무서운 거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것, 그 무시무시한 일을 해야만 했던 엄마의 삶은 어떠했던 걸까. 비닐봉지에 빈 술병을 담아 들고 응급실 복도를 오래도록 서성이며 생각해 봤지만 도무지 가늠이 되질 않아 눈물조차 흐르지 않았다.


도로 위를 역주행하다 컴컴한 논두렁 가에 차를 세우고 하염없이 울었다는 후일담을 들었을 때도 같은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사는 건 참 무서운 일이구나' 하고. 그래서인지 몰라도 두 번이나 목숨을 끊으려 했던 엄마를 향해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 진짜 죽으면 어쩌려고 그랬느냐는 어리광 같은 투정을 하기엔 엄마의 얼굴에 깔린 그늘이 너무 깊고 어두웠다.


그리고 지금 내 얼굴엔 그 당시 엄마에게서 보았던 회색빛 절망의 조각들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다. 떼어내려 해도 끈질기게 붙어 떨어지지 않는 우울의 그림자들이 수시로 내 안에서 어둠의 빛을 드리운다. ‘자, 그동안 오래 버텨왔잖아. 이제 도망갈 차례야.’라고 자꾸만 내게 말을 건넨다. 휘휘 고개를 내젓고 손바닥으로 가슴을 쓸어내려 보지만 몸속에서 웅얼거리는 소리들이 심장을 조여 오면 제 멋대로 날뛰는 심작박동 소리가 나를 불안의 늪으로 밀어버린다.


나는 소리 없이 발버둥 친다. 오래도록 잠을 자면서, 눈을 감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 꼼짝하지 않으면서, 담배를 피우고 매일 밤 맥주를 마시면서, 읽히지도 않는 책을 몇 시간이고 쥐고 앉아서, 노트북 뚜껑을 수시로 열었다 닫고 거실과 주방에 하염없이 불안한 발자국을 내며 서성거리는 것으로 시간을 잡아먹고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런 나를 책망하며 홀로 버둥거린다.


예고도 없이 나를 집어삼키는 우울과 불안을 건널 때마다 시간은 더디면서도 빠르게 나를 통과한다. 무력하게 흘려보낸 시간은 한참을 지나서야 조롱하듯 나를 내려다본다. 사라져 버린 시간만큼, 아니 그보다 더 애쓰고 애써야 겨우 상쇄시킬 수 있을 버려진 시간이 채근하듯 나를 볶아댄다.


‘너는 언제까지 네 삶을 고통으로 만들 작정인 거야. 이제는 그만할 때도 됐잖아…….’



도망가라고 부추기던 웅얼거림이 다시 또 농담처럼 삶을 붙들 라고 말하면 정말이지 사는 게 무서워진다. 사실 내가 이토록 괴로운 것은 죽고 싶어서가 아니라 살고 싶어서였다는 것, 누구보다 잘 살아내고 싶어서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라지고 싶은 내 안의 비겁함, 도망가고 놓아버리고 싶은 마음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나를 서성이게 한다. 하지만 죽음을 생각할 때조차도 언제나 반대편엔 삶이 놓아져 있다. 그래서 죽음을 생각할 수 있는지 모른다. 그러다 보면 결국엔 삶을 택하는 나를 만나게 되니까.

왜 꼭 이래야만 하는지 모르겠지만 죽음을 생각하는 나는 살고 싶은 사람이란 걸 안다. 살고 싶어서 죽음을 생각한다. 죽음에 이르는 경로가 스스로의 선택이든, 우연한 사고든, 호흡이 멈추는 순간 세상에서 사라지는 존재가 되는 그 홀연한 죽음의 무게와 상실의 깊이에 진저리를 쳐댐으로써 죽음보단 삶에 더 닿고 싶은 사람이다.


엄마도 그랬던 것은 아닐까. 살고 싶어서, 사실은 누구보다 더 살고 싶어서 죽음에 닿으려 했던 건 아닐까. 양주 한 병을 마시고 울며 잠을 청하던 날, 엄마는 내 옆에 누워있었다. 나는 허허헉 허허헉 엄마의 몸에서 숨이 빠져나가는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깼다. 어쩌면 그날 내가 본건 죽음이 아니었는지 모른다. 죽음에 닿음으로써 삶을 붙들어 보려 했던 생에 대한 처절함이었는지도.


그래서 부끄럽지만 나도 살아볼 것이다. 아슬아슬한 시간을 건넌 나의 심장이 천천히 제 호흡을 찾을 때까지 끈질기게 내 삶을 붙들고 있을 거다. 잠 좀 많이 자면 어떻고, 줄담배 좀 피우면 어떤가. 그냥 지금은 다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러니 그냥 살아보자고. 살다 보면 분명 너는 또 웃을 수 있을 거라고, 살아 있다는 것에 몸 둘 바를 모르게 감사하게 되는 날이 있을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그때의 난, 분명 지금보다 더 많은 것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 있을 거라고 믿고 싶을 뿐이다.


그래. 그냥 이렇게 살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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