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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 Aug 07. 2022

뻔뻔해도 괜찮아.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몇 번의 연애를 하고, 지금의 배우자를 만났을 때 처음 결혼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 전까진 내게 결혼이란, 정말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관심 밖의 일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이 사람과 연애를 하게 된다면 결혼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결혼을 했다.

  

결혼 준비를 하면서 가장 날 설레게 했던 건, 집을 갖게 되는 일이었다. 평수나 구조, 집 주변의 환경 따윈 전혀 상관없는 편안한 집. 그런 집을 갖고 싶었다. 나를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만이 함께 사는 집.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편하게 쉴 수 있는 집. 현관문 앞에서 카운트 다운을 세지 않고 힘차게 문고리를 잡아당길 수 있는 집. 매일매일 애쓰고 노력하지 않아도 웃을 수 있는 집. 나는 그런 집을 꿈꿨다.      


그리고 정말 그런 집을 갖게 됐다. 더는 가드를 올리고 나를 방어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넘치는 행복을 맛보았다. 결혼 전 46킬로였던 몸무게가 처음으로 50킬로를 넘었고, 불안과 스트레스로 오래도록 달고 살던 성인 여드름과 만성 두드러기도 언제 그랬냐는 듯 감쪽 같이 사라져 버렸다. 푸석했던 피부엔 윤기가 돌고, 웃는 날이 많아졌다. 진창 같았던 삶이 떠오르지 않았다. 더는 살면서 바닥을 치는 일이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어리석게도 정말 그렇게 믿었다.  밑도 끝도 없는 성취감에 빠져 들었다. 편안한 집을 갖게 되었다는 것, 그 안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예쁜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사는 것이 엄청난 업적을 이룬 것 마냥 매 순간 나를 들뜨게 만들었다.      



이제와 돌아보면 ‘불안’ 하지 않던 날이 없었어서 불안이 없는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것 같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진짜 보다 더 빛나 보였다. 과장된 행복, 현실을 등진 허구, 나는 정말 양손 가득 사탕을 쥐고 방방 뛰는 어린아이처럼 아이를 낳고, 키우고, 밥을 하고, 청소를 하며, 소꿉장난하듯 삶에 심취해 버렸다. 네 아이를 돌보는 육아와 살림이 버겁지 않았던 것도 그 때문일 거다. 그런 줄도 모르고 어른이 됐다고, 잘 살고 있다고 착각을 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살다 마주한 나는 남편과 아이들이 없는 텅 빈 집을 상상하고 있었다. 도리스 레싱의 소설 <19호실로 가다>처럼 나만의 19호실을 갖고 싶어 미칠 지경이 되었다. 캄캄한 밤이면, 생의 가장자리에 서서 고개를 숙인 채 안절부절못하는 내가 있었다. 수천 개의 기저귀를 갈고, 수만 번의 밥상을 차린 후에야 알았다. 과장을 덜어내고 허구를 지워버린 현실에서의 난, 생각보다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란 걸. 그 순간 가장 견딜 수 없었던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하루도 감상에 빠질 여유가 없는 삶이었다. 뒤죽박죽 엉켜버린 삶을 정리할 수 있는 며칠의 시간조차 내겐 허락되지 않았다. 아이를 씻겨야 했고 밥을 해야 했고 청소를 해야 했다.  집 밖의 삶, 엄마가 아닌 나를 꿈꾸기엔 너무 오랜 시간 집안에만 머물러 있었다.




반찬을 배달해 먹는 지금도 수시로 냉장고를 열어보는 길들여진 손은 얼마나 징그러운 것인지. 그럴수록 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무엇이 되고 싶고 되어야겠다는 뻔뻔한 꿈을 꾼다. 그런 간절함 혹은 절실함을 혹여나 잃어버리기라도 할까 초조한 표정으로 책상 앞에 앉아 대체 그 무엇이 무엇인지 내게 묻고 또 묻는다. 종종 아무것도 되지 못해도 괜찮다는 말을 하지만 그 또한 얼마나 뻔뻔한 거짓말인가.


이승우의 소설 중에 <사람들은 자기 집에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는 제목을 가진 책이 있다. 정말 그런 것 같다. 불안과 공포만이 가득했다고 생각했던 유년시절의 집에서도 그것과는 다른 것들을 발견하는 날이 있고, 행복만을 보았던 나의 집에서도 상상하지 못했던 또 다른 고통과 절망을 보았으니 말이다. 오늘도 난, 무엇이 있는지 모를 그런 집에서 또 하루를 살아낸다. 끝까지 살다 보면 알게 될까? 나의 집에 무엇이 있었는지에 대해서. 아니 그보다 더, 내가 무엇이 될 수 있을지?.


그러나 얼마나 살 수 있을지 또한 모르는 일이니 좀 더 뻔뻔해 지기로 다짐해 본다. 편안한 집을 갖는 것이 내가 가질 수 있는 행복의 전부라 믿었던 것처럼, 엄마가 아닌 무엇이 되고야 말겠다는 바람도 그렇게 믿고 싶은거다.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지만, 모르는 척 그냥 그렇게.

 

기승전결이 있는 글을 쓰듯, 삶도 그렇게 써내려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알아서 그저 난, 바닥을 치면 치는 대로, 괴로우면 괴로운 대로, 수시로 무너지는 마음의 둑을 몇 번이고 다시 쌓아 올리면서 썼다 지우기를 반복한다. 정리되지 않은 마음과 요동치는 감정들이 거르고 걸러져 껍데기뿐인 문장에 살이 오르고, 매일 토하듯 지긋지긋하다고 쏟아냈던 삶이 단 한 줄의 위로라도 건넬 수 있는 날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나는 정말, 그런 날을 꿈 꾼다. 쓰다 보면, 계속해서 쓰다 보면 정말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하나를 붙들고 조금은 뻔뻔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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