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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 Jul 16. 2022

멜로망스의 노래가 듣고 싶은 날.


코로나를 통과하며 아이들과 세 번의 자가격리를 했었다. 돌아보면 육아 인생 12년 동안 가장 험난한 시간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매일이 전쟁 같은 시간이었다. 막내의 어린이집에서 확진자가 나온 탓에 네 아이 모두 어린이 집과 학교를 갈 수 없었고, 몇 달 뒤엔 어린이집을 시작으로 나와 배우자를 제외한 아이들 모두가 확진 판정을 받았다. 그리곤 아이들 학교에서 또 한 번 확진자가 나와 격리. 다행히 아이들이 많이 아프진 않았지만 3번의 격리를 통과하는 동안 집 나간 내 영혼은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것 같다.


그래, 까짓 거 얼마나 힘들겠어. 네 아이 모두 1년 넘게 가정양육을 하며 온종일 아이들과 쿠키를 만들고, 책을 읽고, 산과 밭을 뛰어다니던 때도 있었는데, 하며 마음을 다 잡았었다. 그럼에도 나의  다짐은 하루가 채 가기도 전에 무너지고 말았다. 아이들이 너무 커버렸다는 걸 잊고 있었던 거다. 일단은 하루 섭취해야 하는 아이들의 음식양부터가 달랐다. 한참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은 집 안에 있어도 하루 세끼 만으로는 에너지를 충족하지 못했다. '돌 밥(돌아서면 밥)'이라는 말을 온몸으로 실감해야 했다. 14일을 집안에 갇혀 밥을 해대는 동안 아이들은 통통하게 살이 오르고, 난 점점 더 말라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싱크대 앞을 벗어나지 못하니 신경질이 늘어 자꾸만 짜증이 났다. 소리를 지르고, 얼굴을 찡그리고, 잔소리를 하고, 제발이라고 시작되는 길고 긴 말을 쉼 없이 해댔다. 아이들은 네! 하고 아주 큰소리로 대답해도 뒤돌아서는 순간 제 멋대로다.  장난감의 주인을 가리는 다툼, 몇 개 남지 않은 초콜릿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 책 하나를 두고 먼저 읽겠다는 오기, 그러다 툭-선빵을 날리고 도망가는 아이, 그 아이를 잡겠다고 쫓아다니다 넘어져 퉁곡 하는 아이, 엄마로 빙의해 잔소리를 하는 큰아이 까지.   

   

격리 기간 동안 제일 참기 힘들었던 건, 소리가 끊이지 않는 거였다.  웃는 소리, 우는 소리, 먹는 소리, 발소리, 공 굴리는 소리, 장난감 던지는 소리, 저금통 흔드는 소리, 둘째 피아노 소리, 밥 달라는 소리, 똥 다 쌌다는 소리, 그리고 귓가에 울리는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나는 빙글빙글 도는 머리통을 겨우 붙들고 앉아 책을 읽다, 세수나 양치를 하다, 심지어 머리를 감다가도 거실로 달려가 아이들 틈에 서야 했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빈속에 커피부터 벌컥벌컥 마시고 하루를 시작해도 이미 탈탈 털려버린 영혼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그렇게 밀려오는 우울이 턱 끝까지 차오르면 나는 방문을 잠그고 앉아 비탈리의 <샤콘느>를 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이라 불리는 바이올린 연주곡.     



열여덟,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싶었던 그때, 나는 커튼을 닫아둔 어두운 방에 앉아 하루 종일 조관우 노래를 들었다. 처연하고 슬픈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깊은 우울이 내 몸을 파고들었다. 우울이 날 완전히 집어삼킬 때까지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멍하니 앉아 듣고 또 들었다. 그때의 난 울지 않았다.  슬픔을 쏟아내기보다 더는 내 안에 빈 공간이 없을 때까지 꾸역꾸역 그것들을 삼켰다. 그렇게 반년 간 어두운 방에 갇혀 지내다 검정고시를 보러 갔다. 아마도 그때의 난, 어두운 방에 나를 버려둔 게 아니라 나와 싸우고 있었는지 모른다. 사라지고 싶었지만 사라지고 싶지 않았던 나를 발견할 때까지, 그렇게 나를 지독한 외로움 속에, 소름이 돋는 우울함 속에 내버려 둔 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마음이 버거운 날 슬픈 노래를 찾아 듣는 건 그때의 나를 기억하고 있어서 인지 모르겠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정말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 밖이 아닌 안으로 도망치고 숨었다 나오는 나는, 결국 다시 일어서고 싶은 사람이라는 것. 매번, 자주 감정에 치여 비틀거리지만 그럼에도 작은 희망만은 기어코 손에서 놓지 않는 사람. 어쩌면 그래서,  네 아이와 세 번의 자가격리를 하는 동안에도 책을 읽고 무어라도 끄적거리며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글을 쓸 때면 느낀다. 나는 생각보다 강한 사람이라는 걸.



다시 일상을 회복하고 있는 요즘, 내가 통과해야 했던 세 번의 자가격리를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한 기분이 든다. 백신을 맞고는 또 얼마나 아팠었나. 축 쳐진 몸을 끌고 운전할 힘도 없어 택시를 타고 갔던 병원에선 그 정도는 누구나 다 아픈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나를 돌려보냈다. 의사가 그렇게 말하니 그러려니 약만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곤 3~4일 정도를 앓았다. 입이 써 밥도 먹지 못하고, 설명할 수 없는 피곤함에 잠도 제대로 못 잤다. 그렇게 일주일 만에 4킬로가 빠졌다. 옷을 입고 거울을 봐도 앙상한 몸이 도드라졌다. 온몸의 수분이 다 빠져나간 것 같았다. 그때 시작된 피부 건조증은 아직도 낫질 않았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시간들을 통과한 지금, 아이들은 수학 도둑을 보러 모두 도서관에 가 있다. 주말이면 커다란 가방 하나를 챙겨 아침 일찍 도서관에 내려 주는데, 그럼 2~3시간은 지들끼리 신나게 책을 읽는다. 그럼 난 집에 와서 대충 청소를 해놓고 앉아, 책을 보거나 글을 쓰다 시간 맞춰 아이들을 데리러 가면 된다. 주말 아침, 이렇게 주어지는 두 시간의 자유만 있어도 남은 하루를 보내기에 충분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힘들었던 시간이 결론이 아니라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찾은 듯한 평온한 오늘의 아침이 참 좋다.

오늘은 비탈리의 <샤콘느>가 아닌 멜로망스의 노래를 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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