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운 Jul 29. 2022

나는 정말 '무음'을 원해!

언제가 됐든.

기본이 4인분인 육아의 현장에서 가장 참기 힘든 건 단연코 '소리'다. 끈질기게 엄마를 불러대는 아이들의 목소리부터, 인간이 살면서 만들어 내는 어쩔 수 없는 생활 소음들. 오죽하면 치열한 5년의 육아기를 보내면서 내가 가장 바라던 건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 곳'에서 딱 일주일만 지내다 오는 거였다. 남편에게, 친구에게, 엄마에게 자주 그렇게 말했다. "나는 정말 무음을 원해"라고.


아기의 울음소리는 힘들지 않았다. 그건 살기 위한 본능 같은 거라 아무리 목이 터져라 울어도 괴롭다는 마음이 들었던 적이 없다. 하지만 '엄마'를 부르는 아이들의 목소리는 달랐다. 두 글자밖에 안 되는 짧은 단어 안엔 내가 해결하고, 들어주고, 받아주고, 이해하고, 때론 해석해야 하는 수많은 이야기가 들어있었다. '엄마'는 부르면 끝나는 말이 아니라 언제나 새로 시작하는 말인 거다. '자, 이제 얘기를 시작할 테니 잘 들어봐' 하고 말이다.


그럼 난, 귀 기울여 듣거나 얼른 몸을 움직여 무언가를 해결해야만 한다. 그런데 만약 두 아이가, 아니 세 아이, 네 아이가 한꺼번에 '엄마'를 부르면? 그땐 뭐, 그냥 전쟁이다. - 내가 먼저 말했잖아. 아니야 내가 먼저야. 엄마는 왜 맨날 내 말만 안 들어. 엄마! 내 말 듣고 있어?. 야, 내 말 안 끝났잖아. 이게. 우이 씨. 퍽. 악. 으로 끝나고 마는 전쟁.

 

앙증맞은 두 발을 잡고 누워 옹알이를 하다 불현듯 뱉은 '엄마'라는 말에 벌떡 일어나 박수를 치고 오두방정을 떨며 좋아했던 날이 있었는데. 그때는 몰랐다. '엄마'라는 말이 이토록 무겁고 버거운 말 인지를.



주말이면 '엄마'라는 말이 온종일 내 뒤를 따라다닌다. 달팽이관에 과부하가 걸려 현기증이 날 정도다. 컨디션이 안 좋은 날엔 귀에서 삐-하고 이명이 들리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면 아이들에게 부탁한다.  "얘들아, 엄마 30분만 혼자 있게 해 줘. 방에서 딱 30분만 쉬다 나올게. 그때까지 엄마 부르지 마." 하고. 아이들은 흔쾌히 알겠다고 한다. 그리곤 '엄마, 이제 몇 분 남았어?"하고 아주 큰소리로 물어온다.  어떤 날은 좋게 대답해주고, 어떤 날엔  속을 안 지켰으니 10분을 추가한다. 매번 질 수만은 없어서 부리는 오기다.  


아이가 클수록 '엄마'라는 말은 더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들고 온다. 마음이 여린 첫째의 부름은 깊은 공감과 위로를 필요로 하고, 자기주장이 강한 둘째의 부름은 이해에 닿기 위한 긴 대화가 필수로 들어가야 한다. 그에 비하면 과자를 똑같이 나눠갖고, 응가를 닦아주고, 장난감의 행방을 찾아주기 위해 불리는 엄마는 애교 수준이다. 몸이 피곤하고 귀찮은 것은 참을 수 있지만 어떤 이유로든 덩어리 진 마음을 풀어준다는 건 너무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더 힘든 건, 내 안의 에너지를 싹싹 긁어 모아 아이를 마주하고 있는 때에도 문틈으로 들어오는 거실의 온갖 소음을 함께 견뎌야만 한다는 것.


나는 지금도 매일 '무음의 세계'를 상상한다. 커피와 책, 약간의 음식, 이불 따위처럼 혼자 시간을 보낼 때 필요한 것들로만 채워진 작고 단정한 공간과 그 안에 깃든 깊은 적막 같은 것. 커다란 창문이 하나쯤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그럼 난, 영화 <마나나의 가출>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 푹신한 패브릭 소파에 기대앉아 하루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먹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냥 그대로 충분히 행복할 것만 같다.



아침이면 아이들과 남편이 빠져나간 집의 고요함이 좋다. 집안 정리를 다 끝내면 주어지는 상쾌한 고요함은 더없이 좋다. 휴대폰을 무음으로 해두고 잘 정리해둔 커다란 침대 위에 팔다리를 쭉 뻗고 누워 있는 잠깐의 시간은 하루를 시작하기 전 나에게 주는 선물 같은 시간이다. 어김없이 들아닥칠 아이들의 부름에 조금이라도 더 친절하게 답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필수템 같은 것.


혼자가 기본값이 되는 삶은 이미 물 건너간 꿈이지만, 파트타임처럼 시간을 나눠 갖는 혼자만의 시간과 고요함도 그렇게 나쁘진 않은 것 같다. 매일이 우당탕탕이지만, 혼자였다면 받지 못했을 넘치는 사랑고백도 매일매일 받고 있으니 말이다. 뜬금없이, 아무 때고 불쑥불쑥 말이다. '엄마'라 불려본 사람은 알 거다. 아무 때고 훅 치고 들어오는 아이들의 사랑고백을. 지긋지긋하게 느껴지는 삶의 페이지를 휘릭 넘겨버리는 마법 같은 고백들을.


그래도 포기하고 싶진 않다. 한 번쯤은 꼭 나를, 집에서 멀리 떨어진 아주아주 조용한 곳에 데려다주고 싶다. 언제가 됐든 그날을 꿈 꾸며 또 하루를 보낸다.






이전 11화 뻔뻔해도 괜찮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