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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 Oct 05. 2022

두 번의 장례를 치렀다.

죽음에 기대어.

9월 초 시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얼마 전 시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9월에만 두 번의 장례를 치렀고, 두 번 다 복숭아 포장을 하던 중에 소식을 들었다. 초기 치매 증상으로 요양원에 계셨지만 그래도 건강하셨던 할머니는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고 일주일 만에 떠나시고,  몇 번의 고비가 있었던 시할아버지는 100세를 몇 달 남기고 눈을 감으셨다.


영정사진 속 가득했던 할머니의 주름과 입관식에서 보았던 차갑게 굳은 할아버지는 몇 해 전 돌아가신 친할머니의 죽음을 떠올리게 했다. 급성 백혈병으로 점점 마르고 작아졌던 할머니의 몸. 햇볕이 가장 잘 드는 곳에 앉아 두 다리를 가슴팍에 모아 끌어안고 계시던 할머니의 좁고 굽은 등허리. 증손자들의 손위에 겹쳐졌던 쪼글쪼글하고 앙상했던 손. 병원문을 열고 들어설 때 날 알아보고 눈을 깜박이며 옅은 웃음을 보이던 할머니의 얼굴. 화장터에서 한 줌의 재가되어 다시 마주해야 했던 나의 할머니.


누군가는 삼키고 누군가는 서럽게 뱉어냈던 울음들 사이에서 나는 울지 않았다. 영구차를 따라가다 조금 눈물을 흘렸고, 서럽게 울던 아버지의 손을 잠깐 동안 잡아주었다. 그러고 보니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에도, 날 예뻐해 주던 막내 삼촌 장례식장에서도 나는 눈물을 흘린 기억이 없다. 눈물을 쏟아낼 만큼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고, 그저 죽음이라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아 덤덤하게 영정사진 속 고인이 된 그들을 바라보았다.


나는, 사라져 버린 누군가 보다 남겨진 사람들의 슬픈 얼굴이 혹은 보이지 않게 끝까지 고인을 돌봤던 이들의 수고스러움에 더 마음이 쓰였다. 그것도 아니라면 가족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끝까지 예의를 갖추지 않고 못난 모습을 보이고 말던 철없는 어른들을 보며 씁쓸한 숨을 내쉬었다.


슬프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내게도 어느 한 계절, 어떤 날, 짧은 순간이나마 고인과 보낸 시간들이 있었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따뜻했던  말들과, 주고받은 눈빛들이 내 안에 남아있어 서글펐다. 하지만 나는 죽음 곁에 남겨진 사람은 아니었다. 나는 남겨진 이들의 슬픔에서 한 발 정도 떨어진 사람이었다. 내 곁엔 고인이 된 이들보다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언젠가 그들이 죽음을 맞이 한다면 아마도 난 그때, 남겨진 사람이 되어 삼킬 수 없는 눈물을 흘릴지 모르겠다.



아직 난, 죽음이 낯설고 두렵다. 사람을  떠나보낸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다시는 볼 수 없는 얼굴이 있어서,  다시는 잡을 수 없는 손이 있어서, 다시는 들을 수 없는 목소리가 있어서 꺼이꺼이 울음을 토해본 적이 없다. 죽음의 지척에서 깊게 파인 누군가의 그늘진 얼굴과, 갈라진 목소리, 끝없이 흘러내리던 눈물, 텅 빈 그림자 따위를 보며 감히 죽음의 무게를 가늠해볼 뿐이다. 언젠가 죽음의  경계에서 사경을 헤매던 엄마의 축 늘어진 몸처럼.. 남겨진 이들의 기억 어딘가에 진득하게 붙어있을 차갑고 서늘한 무게에 대해.


딱딱한 철제 침대 위에 놓인 시할아버지의 몸은 바싹 마른 여린 가지 같았다. 이가 빠져 안으로 말린 입술, 푹 패인 양볼, 살짝 벌어진 입. 아마 할아버지의 몸은 철제 침대보다도 더 차갑게 식어있었을 거다. 숨이 빠져나가면서 쪼그라든 작은 몸.  한 줌의 재가 되어 땅에 묻히고 나면 사라져 버릴 몸. 언젠가 나도,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이들도 저렇게 여린 가지처럼 차가운 죽음을 맞이하겠지... 모든 시간이 홀연히 빠져나간 텅 빈 몸이 되어서.


입관식, 죽음의 모퉁이에 서서 나는 고개를 숙여 마지막 인사를 하고 나왔다. 몇 년간 요양원에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던 이들의 서러운 통곡. 그 알 수 없는 슬픔이 낯설어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복잡해지고 말았다. 죽음과 길 잃은 슬픔이 뒤엉킨 마음, 그리고 아직은 내 곁에서 함께 숨 쉬고 있는 사랑하는 이들에 의지해 내쉬는 안도와 감사의 숨.


누군가의 죽음 앞에 안도의 숨을 쉬는 것이 맞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살아 있어서, 살아가야 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둘러싸고 존재하는 이들에 감사하고, 그들을, 내 삶을, 나를, 내가 살아가는 이 시간을 좀 더 귀하고 소중하게 여겨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죽음은 공평해서 내가 살아감을 의지하게 하는 나의 연결고리들 또한 영원하지는 않겠지만, 언젠가 이별을 해야 할 때 너무 많이 아프지 않기 위해 더 많이 사랑하며 살자 홀로 되내어 본다. 남겨질 나와 내 곁에 남겨질 이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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