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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 Sep 24. 2022

수고했어, 우리 딸.

아이랑 같이 울어 버렸다.

열한 살 딸아이가 세 번째 콩쿠르를 나갔다. 2학년 때부터 동네 피아노 학원에 다니면서 학원에서 하는 작은 발표회에 두어 번 참여했는데 아이가 욕심을 냈다. 더 잘하고 싶고, 무대에 서는 게 너무 좋다고. 선생님께 의논을 하니 전공반으로 가길 권유해 주셨다. 잘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3학년 겨울, 전공반으로 옮긴 아이는 무척이나 들떠 있었다. 하루 30~40분 치던 피아노를 꼼짝없이 앉아 두 시간씩 쳐야 했는데도 무리 없이 잘 적응했다. 한 달 정도 적응기간을 거친 후 두 시간은 세 시간이 되었고, 그렇게 조금씩 늘어난 시간이 지금은 기본 하루 네 시간, 콩쿠르를 앞두고는 다섯 시간까지 늘어났다. 학교를 마치고 학원에 내려주면 아이는 종일 피아노 앞에서 시간을 보내는 거다.

     

아이는 한 번 도 힘들다 말하지 않았다. 늘 웃으면서 들어갔다 웃으면서 나온다. 맨발로 아파트 단지 주차장에서 고무줄놀이를 하고, 계단에 앉아 학종이 따먹기나 하던 나의 열한 살을 떠올리면, 어디서 그런 욕심이 나와 그 힘든 시간을 견디는지 기특하고 대견할 뿐이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다른 아이들 몰래 예쁘고 맛있는 마카롱을 하나씩 사주고, 학원이 끝나는 시간 아이의 손을 잡고 집으로 오면서 잠깐이나마 둘 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전부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아이는 2주 전부터 하루 4~5시간씩 피아노를 쳤고, 주말에도 똑같이 연습을 했다. 어쩐지 좋은 예감이 들었다. 전공반으로 옮긴 지 이제 열 달, 그동안 실력도 많이 늘었고 본인도 열심히 한 만큼 자신감을 가지고 대회장으로 갔다. 새벽 6시에 출발해서 대구로 가는 길, 새벽하늘에 수놓아진 예쁜 구름을 보면서 말했다.  '우리 사랑이 잘하라고, 기분 좋게 가라고, 구름도 저렇게 예쁜 거라고'

   

학교 앞 연습실을 미리 예약해 둬서 한 시간 연습을 하고 들어갔다. 보호자는 함께 들어가지 못해 복도에 서서 기다렸다. 아이가 준비한 곡은 베르코비치의 토카타. 2분 40초를 연주하기 위해 그동안 아이가 했던 노력을 생각하니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코로나 탓인지, 아이들은 한 명씩 들어가 연주를 마치고 나왔다. 아이가 대회장 문을 열고 들어가고 나오기까지 걸린 3분 동안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제발 실수하지 말기를, 연습했던 만큼만 잘하고 나오길 바라면서 나도 모르게 발을 동동 굴렀다. 아이는 웃으면서 나왔다.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가 없다고 말하는 아이가 고맙고 기특해서 엉덩이를 두드려 주었다. 결과는 여섯 시에 나온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와 결과를 기다리는 서너 시간이 하루처럼 길게 느껴졌다.     



친정엄마 집에 아이를 내려주고 집으로 와서도 가만있을 수가 없어 계속 몸을 움직였다. 앉아 있어도, 누워 있어도 서성이는 마음 때문에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대구엔 차가 왜 그리도 많은지 잔뜩 긴장하고 다녀와 몸은 녹초가 되었는데, 긴장이 풀리지 않아 자꾸만 허기가 느껴졌다. 다섯 시, 다시 아이를 데리러 친정엄마 집으로 가는 길에 결과가 나왔다. 4,5,6 학년을 합친 58명의 아이들 중 수상자 명단에 아이의 이름이 보이지 않았다. 몇 번을 보고 또 봤다. 빤히 없는 줄 알면서도 그랬다.      


아이를 태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우린 함께 울었다. 괜찮다고 의연하게 넘기는 듯했던 아이가, 선생님과 통화를 하고 난 후에 울음을 터트렸다. 네네, 하며 울음을 참는 아이의 꾹 누른 목소리를 들을 때부턴 내 눈에서 먼저 눈물이 주룩 흘러내렸다. 감출 새도 없이 흘러나온 눈물을 어찌할 수 없어 같이 울었다. 얼마나 속상할까,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나는 모른다. 오로지 아이 혼자 감당하고 이겨낸 시간이라 그저 짐작만 할 뿐. 참다못한 눈물을 쏟아내며 엉엉 우는 아이가 안쓰러워 가슴이 아팠지만 결과보단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 너는 누구보다 최선을 다했다는 뻔한 말 밖에는 해줄 수가 없었다.      


진부한 위로. 그럼에도 그 안에 깃든 의미만큼은 진실이라고 아이가 믿길 바랐다. 무언가를 위해 인내하며 버틴 시간, 그런 시간이 당장에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할 지라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언젠가는 반짝하고 빛날 네 삶을 향해 천천히 제 길을 내고 있는 거라고. 그러니 잠깐 동안 실망할 수는 있어도 좌절하지 말라고. 네 안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을 너를 믿으라고. 그래도 된다고.   

   

집으로 돌아온 아이는 몇 번이고 자꾸만 내게 와 안아달라고 한다. 나는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혹여라도 상처받지 말기를, 노력의 시간을 의심하지 말기를 바라면서 온 마음을 다해 꼬옥.   



아이는 내일도 학원에 간다. 그리고 일주일 뒤 또 다른 콩쿠르에 나간다. 그리고 그다음 주에도. 너무 일찍 정글에 뛰어든 아이가 안쓰럽지만 언제나 그랬듯, 스스로 다른 선택을 하기 전까지 나는 말없이 지켜볼 뿐이다. 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것, 무언가를 동경하고, 먼저 그 길에 들어선 이들의 고난과 빛나는 성취를 보며 경탄할 수 있는 아이의 마음 또한 쉽게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닐 거라 믿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아이의 마음이 고맙다. 무언가를 선택하고 밀고 나갈 수 있는 힘. 작은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정, 끈기, 인내. 그거면 충분하다고 믿는다.  다시 또 울음을 터뜨리게 되더라도 아이는 그 열정으로 금세 일어설 거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 울음을 멈춘 뒤 <스티커 사진>을 큰 목소리로 따라 부르던 오늘의 그 모습처럼. 그렇게 아이는 분명 일어서고, 뛰어넘고, 다시 웃으며 걸어갈 거다.


달달한 마카롱과, 맞잡은 손, 그리도 단단한 믿음. 나는 이 세 가지를 가지고 아이 곁에 있을거다. 그리고 때론 함께 울어주면서.


수고했어. 우리 딸. 이름만큼이나 예쁜 우리 사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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