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만에 복숭아 포장으로 멈추었던 글쓰기 모임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내가 쓴 글을 소리 내어 읽는 시간. 소리 내어 읽는다는 게 별거 아닌 것 같아도 나를 좀 더 면밀히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준다. 목소리의 톤이 높았다, 낮았다, 속도가 조금 빨랐다 느렸다, 멈칫했다, 긴 숨을 내쉬었다, 혹은 큭큭 웃으며 글을 읽고 있으면 글 속에 스민 감정이 보인다. 그때의 나. 오래된 기억 속에 묻힌 시간들이 되살아 난다. 이야기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일들을 글로 쓰고 입으로 뱉어내고, 그렇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도 조금은 의연해진 나를 확인하는 시간.
처음 글쓰기를 할 때 단어 하나를 선택하면서도 얼마나 스스로를 검열하고 고민했었나. 단어 하나, 한 줄의 문장. 그 안에 담긴 모습이 나의 전부라고 생각할까 두렵고 무서웠다. 무너지고 부서졌던 캄캄한 시간이 나라는 인간의 고정된 배경이 될까, 썼다 지웠던 많은 이야기들. 너무 초라하거나 볼품없는 인간이고 싶지 않아서 절망 끝엔 늘 희망을 갖다 붙였다. 이러이러해야지 하면서, 마치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라는 듯.
내 안에 쌓인 절망과 우울의 그림자를 아름답게 포장하고 싶었다. 그럼 난, 상처투성이 인간이지만 조금은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글쓰기에 대한 욕심이 생기면서부터는 더 그러했던 것 같다. 가지고 있는 이야기가 모두 어둡고 음울해서, 갖고 싶은 이야기를 상처 뒤에 엮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단한 사람이 되었다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갖고 싶었나 보다. 그럴수록 글 속엔 요란한 미사여구들이 많아졌다. 본래 감정과잉이라 어떤 글이든 부유하는 감정들을 죄다 늘어놓고 마는 이상한 버릇이 있는데, 그걸 아름답게 쓰려니 죽도 밥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고 마는 요란한 일기장 같은 글을 얼마나 많이 썼던가.
생각이 많고 감정의 밀도가 높은 난, 담백하고 깔끔한 글을 쓰지 못한다. 엉망진창인 삶을 공감받고 싶어서 자꾸만 설명한다. 나를, 내 마음을, 내 안에 담긴 모든 것들을.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예전에 썼던 글들을 보면 깜짝깜짝 놀란다. 피곤한 글을 너무 피곤하게 써놔서 얼굴이 빨개지고 만다. 그런 시간(부끄러움)을 견디며 글을 썼다. 그러다 보니 글쓰기 모임도 하게 됐고, 얼굴이 새빨개지지 않을, 조금은 정돈된 글을 쓸 수 있게 되어 여전히 쓰기를 욕망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 그런 시간을 견딘 것이 오늘은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견디지 못하고 포기했다면, 내려놓았다면 오늘은 없었을 테니까.
글쓰기 모임을 끝내고 아이를 데리러 학교에 가면서 웃었다. 그냥 웃음이 나왔다. 아니다, 웃음보단 미소라는 말이 맞다. 그냥 씩 웃으면서 운전을 하다 내가 웃고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복숭아 포장을 끝내고 일상을 회복하지 못해 축축 늘어지기만 했던 나였는데, 어쩐지 마음에 '씽' 봄바람이 불었다.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글쓰기를 놓아 버렸다면 이불속에서 웅크리고 있었을 시간일 텐데 말이다. 그런 웅크림은 분명 또, 지독한 자기혐오로 이어졌을 거다.
글쓰기를 놓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 정신없는 일상을 살다가도, 생각지 못한 일에 매달리다가도, 금방 '나'라는 사람을 확인할 수 있으니 말이다. 나아졌든 나아지지 않았든, 잘하든 잘하지 못하든, 내가 살아있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참 좋다. 늘 제자리걸음인 것만 같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글쓰기를 하다 보면 드러낼 수밖에 없는 지난한 내 삶의 이야기들. 그 이야기를 끊임없이 들으면서도 "잘 살았다, 열심히 살았다, 잘했다" 이야기해주는 글쓰기 친구들이 있어서 감사하다. 오늘은 그런 친구들의 말을 들고 집으로 돌아와 생각한다. 다정하고 단단한 친구들의 말을 마음속에 잘 저장해 둬야지. 나를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것, 나를 웃게 해주는 것, 내 마음에 온기를 불어넣어 주는 것들 사이에 잘 넣어두었다 움츠러들고 싶을 때 몇 번이고 꺼내 써야지 하고.
글쓰기는 참 좋다. 거창한 질문들- (삶의 의미, 가치, 존재의 이유 같은)-을 애써 꺼내놓지 않아도 끊임없이 나를 들여다보게 해 준다. 지나온 시간, 지금의 시간, 앞으로 살아갈 시간 곳곳에 놓인 나를 기억하고 생각하고 상상하게 한다. 너무 무겁지 않게 어렵지 않게 내게 많은 질문들을 던져주고, 내 안에 담긴 이야기로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는 힘을 키워준다. 이슬아 님의 말처럼 누군가의 말에 기대 삶을 지탱하는 것은, 어쩌면 조금 위태로울 수 있는 일이니까.
불안을, 절망과 슬픔을, 음울하고 눅눅한 이야기들을 꺼내는 것은 괴롭고 힘든 일이지만 그렇게 계속 쓰다 보면 보이지 않게 고여있던 다정하고 따뜻한 말들이 내 안에서도 자라나겠지. 사람은 복잡하고 미묘한 존재니까. 그래서 쓴다. 잘하든 잘하지 못하든, 예쁘든 못생겼든, 내 삶의 모든 면면들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둥글게 둥글게 잘 다듬어져서 기쁨과 슬픔, 절망과 희망을 자유롭게 떠다니며 살고 싶어서.
글쓰기를 시작한 건, 포기하지 않은 건, 이렇게 계속 쓰고 있는 건, 정말 잘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