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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 Oct 25. 2022

뭐라도 되고 싶은 마음.

질리도록 쓸 일만 남았다. 

최근 내 마음은 바싹 말라버린 화분 같았다. 올해 복숭아 농사가 끝난 뒤 회복되지 않는 일상이나, 특별히 괴로운 일이 있어서는 아니다. 브런치 공모전. 자꾸만 그게 생각나서 아무것도 못하겠는 일상을 보냈다.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는데도 그랬다. 퇴고를 하고자 하면 고칠 것이 투성이고, 무엇보다 너무 평범해서 눈을 비벼야 겨우 보이는 '엄마 사람' 이야기에 사람들은 별 관심이 없을 것 같았다. 가만있어도 눈에 띄는 재미나고 특별한 이야기가 브런치엔 너무도 많으니까. 그래서 난 응모하지도 않은 '공모전' 앞에서 잔뜩 주눅이 들었다. 


누가 뭐라 하든, 잘 썼든 못 썼든, 되던 안 되던, 그냥 하면 되는 걸 못하는 내가 싫어서 침대 속에서 며칠을 보냈다. 아무 생각하고 싶지 않을 때, 머리를 텅 비어버리게 만들고 싶을 때 나는 휴대폰을 들고 침대 속으로 들어간다. 밤늦게까지, 그리고 아이들을 보낸 뒤,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드라마를 틀어놓고 멍하니 본다. 보다 자고, 자다 시끄러워서 깨고, 일어났다 다시 눕고, 또 보다, 아이를 데리러 가고, 겨우 집안일을 하고 다시 눕고. 그렇게 며칠을 보내면 머리가 몽롱하고 좀이 쑤셔서 이불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 무언가에 주눅 든 몸을 일으켜 세우는 데엔 질리도록 누워 있는 것만큼 좋은 게 없다. 움직이지 못해 안 달이 나게. 


머리가 빙그르르 돌 때까지 넷플릭스를 돌려보고도 공모전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그러다 주말에 글쓰기 수업을 들었던 작가님께 짧은 메시지를 받았다. '고운님이 분명(나를 참 잘 안다.) 도전 안 하실 것 같아 연락했다고. 꼭 해보라고.' 그때 난 친구 집에 아이 셋을 데리고 가 이른 핼러윈 파티를 하고 있었다. 혼디 주와 동학, 와인과 맥주, 별빛 청하를 사이좋게 나눠 마시면서 말이다. 취기 때문인지 '그래,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지만 다시 또 난, 침대 속으로 숨어들었다. 대체 그게 뭐라고. 그게 뭐가 그렇게 어려운 일이라고 이렇게 쓸데없이 도망을 가나.


브런치 작가도 그랬다. 안 될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생각도 안 했다. 같이 글쓰기 하는 친구들이 브런치 작가가 되는 걸 보면서도 나는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날 , 충동적으로 노트북을 열고 앉아 작가 신청을 했다. 써놓았던 글 두 개와, 아무 생각 없이 대충 목차를 만들어 보냈다. 어쨌든 결과는 합격. 이 사람들이 잘 못 보낸 게 아닌가 싶었다. 그렇게 브런치를 시작했다. 그때를 떠올리니 조금 용기가 났다. 그래, 그냥 해보지 뭐. 하고. 


써둔 글을 대충 엮어 응모하기 버튼을 눌었다. 아무 기대도 하지 않는다. 정말. 오늘 이 버튼을 누른 건 나를 드러내는 용기다. 조금 부족해도, 모자라도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밖을 향해 한 발 나를 내어놓을 수 있는 용기. 어차피 글은 계속 쓸 테니까. 지금 내놓은 브런치 북이 내 안에 든 모든 이야기는 아니니까 말이다. 응모하기 버튼을 누르니 한결 마음이 가뿐하다. '별거 아니네 뭐' 하고 웃어도 본다. 지나가는 누군가가 내 글을 보면 뭐라 말할까 생각하려다 만다. 그보단 누가 뭐라던 신경 쓰지 말자 생각한다. 그냥, 세상엔 나 같은 사람도 있다는 걸 말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자. 그렇게 쓰고 또 쓰다 보면 읽히는 글들이 늘어나겠지 하면서. 


진짜 뭐라도 되고 싶다던 친구의 톡에 너는 꼭 네가 원하는 사람이 될 거라고 말했다. 진심이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친구라 믿으니까. 친구가 그랬다. 너도 그렇게 될 거라고. 너는 결국 해내는 사람이라고. 그걸 너만 모르고 있다고. 간질거리는 말을 참 잘 주고받는 우리다. 옛날의 나라면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일 텐데......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함께 쓰고 나누는 친구를 만나면서 나는 이렇게 조금씩 변해간다. 고맙다는 말도, 좋아한다는 말도, 간질거리는 진심 어린 마음도 이제는 제법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여전히 자주 웅크리지만 어떻게 하면 다시 기지개를 켤 수 있는지도 잘 안다. 노력은 결과가 아니라 태도에 있다는 것도. 그걸 알아서 응모하기 버튼을 누를 수 있었는지 모른다. 잘 쓰고 못 쓰고에 상관없이 이곳에 써 내려간 모든 글이 나의 노력이니까. 나를 갈구하고, 삶을 갈구하고, 세상을 갈구하고, 사랑을 갈구하는 내 안의 조각들이 만들어낸 노력. 


나는 무엇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무언가 되리라 믿는다. 끝내 원하는 삶에 가닿을 친구처럼, 나도 해내는 사람이 될 테니까. 우리의 말, 서툴게 써 내려간 노력의 시간에 기대 끈질기게 나를 세워갈 일만 남았다. 질리도록, 아무런 미련이 남지 않을 때까지 쓰고 또 쓰면서 말이다. 그것만이 '나'라는 목적지를 향해 가는 가장 빠른 길일 테니까. 

작가의 이전글 쓰기를 놓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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