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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 Nov 17. 2022

<책>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심윤경

괜찮아. 이것도 사랑이야!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를 읽으며 삶이 참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했다. 부러워서 그런 생각을 했다. 사랑받는 줄도 모르고 받는 사랑이, 뭘 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말할 수 없이 부러웠다. ‘사랑’은 그렇게 잊을만하면 내 뒤에서 빼꼼 고개를 내민다. 정신없이 살다가도 어느 책에서, 어떤 이의 해사한 얼굴에서, 누군가의 빛 나는 말이나 태도에서 어김없이 내 안의 구멍을 마주하게 만든다.

     

건강한 웃음을 가진 사람이 있다. 투명한 얼굴을 가진 사람이 있다. 가만히 있어도 빛을 내는 사람이 있다. 사랑받고 자란 사람들은 대게 그런 것 같다. 사랑만 받고 자라서 그런 게 아니라, 언제고 꺼내어 볼 수 있는 사랑이 있어서 그럴 거라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생각지 못한 불행이나, 혼자 힘으로는 어쩌지 못하는 일들이 생기곤 하지만 사랑을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은 쉽게 넘어지지 않는다. 넘어지더라도 금방 일어선다. ‘그럴 수도 있지 뭐’ 혹은 ‘내가 뭐 어때서’처럼 조금은 덤덤하게 넘길 수 있는 힘이 그들에겐 있는 것 같다. 지나치게 예민하지 않고, 지나치게 걱정하거나, 지나치게 슬픔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 마음의 근육. 사랑이 그런 것 같다. 사람을 단단하지만 유연하게 만들어 준다. 흔들릴 수는 있어도 부러지지 않게.

     

삶이 맘 같지 않을 때, 사는 게 너무 힘들어 앞이 보이지 않을 때 슬쩍 꺼내어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순간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일까. 생각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사람이 있다는 것, 무슨 말을 해도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믿음(p109)은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일까.   

   



옛날 같았으면 분명 난, 주먹을 불끈 쥐고 아이들에게 작가의 할머니 같은 사랑을 주겠다는 다짐을 했을 거다. 한 권의 책을 읽을 때마다 얼마나 많은 다짐을 했던 나인가. 책 속의 모든 이야기가 내겐 너무 생경하지만 그만큼 빛나 보여서 수백 번 다짐을 했었다. 그게 사랑이든 뭐든, 이런 사람이 되어야지, 저런 사람이 되어야지, 이렇게 살아야지 하고. 그럼에도 이번엔 어떤 다짐도 하지 않았다. 그보단 아름다운 이야기로 가슴에 남겨두자 했다. 이런 사랑도 있구나, 이렇게 큰 사랑을 받고 자라는 사람도 있구나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런 큰 사랑을 욕심내기보다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하는 게 더 나을 거라 생각했다. 작가의 할머니 흉내를 내려면 사랑을 하기 전에 산티아고 순례길이라도 다녀와야 할지 모른다. 아니면 산에 올라가 108배라도 하든지. 마음 수양하러. (책 속의 할머니는 "그려, 안 뒤야, 뒤얐어, 몰러, 워쩌, 장혀" 라는 몇 마디 말로 사랑을 만들어 내신 분이다. 덤덤하고 무심하게)

   


   

내 안엔 커다란 구멍이 있다. 주기적으로 거센 바람을 일으키고 폭풍우를 불러와 나를 휘청이게 하는 구멍. 오랜 시간 그 구멍을 메꿔보려 했지만 실패했다. 그래서 어쩌면 평생 이 구멍과 함께 살아가야 될지 모르겠다. 아름다운 이야기 앞에서 낯설어 어쩔 줄 몰라하거나, 세상을 향해 불만을 내뱉으면서. 그렇지만 이게 나란 걸 안다. 그래서 욕심내지 않는다. 구멍은 있지만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는 것도 아니까. 내 사랑은 작가의 할머니만큼 빛나거나 아름답지 않지만 그렇다고 누가 감히 사랑이 아니라 말할 수 있을까.     


“근데! 거 뭐 될 필요는 없다!”(p199)라는 책 속의 말처럼, 나는 그냥 나로 살아가려 한다. 살다 보면 마주하게 되는 사랑 넘치는 사람들의 따뜻한 손과, 무심한 듯 건네는 고마운 말들로 구멍 난 가슴에 온기를 불어넣으면서. 그리고 서툴지만 스스로를 믿고자 하는 마음에 기대어.


북클럽 멤버의 말처럼, 기억할 수 있는 순간은 지금부터라도 만들면 된다. 꺼내어 쓸 수 있는 기억이 없다고 말하는 대신, 그곳에 말 줄임표를 그려 넣는 대신, 만들면 되는 거다. 만들면 된다는 말, 이 말은 또 얼마나 멋진 말인가. 그러니 발악하지 말자, 사랑받지 못했다 울지 말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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