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설거지와 밤 청소를 마치고 깨끗하게 씻은 아이들이 이불 위를 뒹굴거리는 시간이 되면 냉장고를 열어 맥주 한 캔을 들고 방으로 온다. 더는 잔소리를 하지 않고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지 않아도 되는 시간. 작은 스탠드 불빛만 가득한 조용한 방에 앉아 홀로 마시는 맥주는 정신없는 하루가 마무리되어감을 알리는 일종의 신호다. 시원한 맥주를 한 입 들이켜는 순간은 아무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다. 톡 쏘는 맥주의 알싸함이 몸속으로 천천히 퍼지는 느낌이 좋아 될 수 있다면 천천히 들이킨다. 실밥이 풀린 낡은 앞치마를 입은 채로 책상 위에 두 다리를 올리고 기대앉아 마시는 맥주는 아이들을 쫓느라 긴장했던 마음을 유들유들하게 해 준다. 머리 위로 팔을 뻗어 커다란 기지개를 켜면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나른함이 좋다. 250ml 작은 캔 하나가 건네는 선물 같은 위로다.
주부의 삶은 출퇴근이 없다. 월급이 없다. 승진이나 휴가도 없다. 종종 모성이라는 말로 치켜세워지는 때도 있지만 그보단 아줌마라는 말로 뭉뚱그려져 평가절하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주부에게 맥락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주부다. 그냥 아줌마다. 그래서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아줌마의 남편이나 자식들 안부가 아줌마의 안부고 아줌마의 삶이다. ‘나 여기 있어요’ 하고 틈 날 때마다 목소리 내지 않으면 아줌마는 보이지 않는다. 몸이 아파 병원이나 가야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있다. 그렇게 그냥 아줌마가 된다.
그게 싫어 책을 읽었다. 졸린 눈을 비벼 가면서, 책상에 머리를 몇 번이고 처박으면서, 노트 위에 커피를 쏟고, 끈적하게 흐른 침을 닦아가면서. 그러면 뭐라도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되기는커녕 삶이 목구멍에 걸린 듯 더 답답해지고 말았다. 가지고 싶은 삶만 켜켜이 쌓여갔다. 어떤 삶은 너무 터무니없어서, 어떤 삶은 너무 늦어서, 어떤 삶은 내 능력 밖이라 아무리 손을 뻗어도 무엇 하나 가질 수가 없었다. 그럴수록 마음은 옹졸해졌다. 망할 놈의 세상. 불공평한 세상. 거지 같은 세상. 안 될 놈으로 운명 지어진 것 같은 야박한 인생까지 들먹여가며 여기저기 뾰족한 마음을 숨지기 않고 드러냈다.
뭐라도 될 줄 알았을 땐 아름답게만 보이던 세상은, 딛는 곳마다 쉬는 숨마다 까끌까끌한 모래 투성이었다. 사는 게 넌덜머리 나서 지긋지긋하다고 했더니 사람들은 그런 나를 지긋지긋한 눈으로 봤다. 나도 내가 지긋지긋했다. 복병은 나였다. 생각지 못한 걸림돌은 내게 붙은 아줌마란 이름도, 망할 놈의 세상도 아니었다. 그냥 ‘나’였다. 오랫동안 그 사실이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이래나 저래나 삶은 무지막지했다. 그렇게 내팽개쳐진 대로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살아야 해서 다시 책을 읽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도서관에 가고, 내려놓았던 글쓰기도 다시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또 살아졌다.
지금도 난, 오전에는 집 안과 아이들 주변을 맴돌고, 해가지는 늦은 밤엔 시효가 짧은 다짐들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특별한 날 보다 평범한 날이 더 많고, 평범함에도 미치지 못하는 구멍 난 하루가 더 많지만 그런 시간을 돌고 돈다. 어떤 날은 웃음이 넘치고, 어떤 날은 우울이 넘친다. 하지만 어떤 하루를 보냈든 그것에 골몰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삶은 언제나 예상 밖이라 울다가도 웃고, 웃다가도 우는 게 너무 빈번해서 섣불리 예측하지 않는다. 그냥 살아간다. 그게 잘 안 되는 날은 그런 척이라도 한다. '됐어, 괜찮아, 아무렴 어때' 하고. 가끔은 그런 억지도 필요하다. 무지막지한 삶에 맞먹는 막무가내의 위로.
그러니 어떤 하루든 내가 할 수 있는 건, 토닥토닥 나를 끌어안는 일뿐이다. 무얼 하고 무얼 하지 않았든, 어떤 하루를 보냈든 상관하지 말고 기꺼운 마음으로 나의 하루를 끌어안는 일. 너무 많은 의심과 질문으로 나의 하루를 깎아내리지 말고,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하루를 또 한 번 잘 버텼으니 그걸로 됐고, 수고했다고 말이다.
냉장고에 든 시원한 맥 주 한 캔이 내겐 그런 위로다. 시원하게 마시고 시원하게 끌어안는다.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혹은 읽고 싶었던 책을 펼쳐두고 맥주를 마시는 동안엔 우울이나 슬픔이 없다. 아무것도 끼어들지 못한다. 실밥이 터진 낡은 앞치마를 입고 있어도, 보풀이 인 낡은 수면 양말은 신고 있어도, 고무줄로 동여맨 머리가 산발이 되어 흘러내려도 그 순간만큼은 무엇도 나를 방해하지 못한다. 그냥 그거면 된다. 여전히 ‘아무나’로 살아가지만 잘 버텨낸 하루가 있고, 시원한 맥주가 있고, 책이 있고, 사라지지 않은 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