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4. 엄마와 소포
휴, 또 엄마다.
“아직도 도착 안 했나 궁금해서.”
짐짓 무심한 척하는 목소리 뒤에는 애가 닳는 심정이 숨어 있다.
엄마는 타국에 사는 다 큰 딸내미 걱정에 일 년에도 몇 번씩 소포를 부쳐왔다.
엄마가 보낸 상자 속엔 라면부터 손톱깎이나 화장솜 같은
지레한 생활용품까지 한가득이었다.
쓸데없는 것까지 돈 들여보내냐는 딸의 성마른 잔소리에 엄마는 늘,
너넨 그런 거 살 돈 아껴서 잘 살 생각 해야지,라고 답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나는 엄마에게 선전 포고하듯 더 이상 소포를 받지 않겠다 선언했다.
내가 당장 아쉽든, 엄마가 서운하든 간에 소포를 그만 받아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안 그래도 무거운 소포를 우체국까지 가져가는 엄마의 노고와,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배송비 때문에 부담감을 떨칠 수 없었는데,
지난해엔 아빠가 퇴직 후 작게 꾸려오던 사업마저 기울어 부모님의 집이 경매로 넘어갔다.
태평양 건너편으로 보내는 라면과 김은 이제 사치품의 목록에 속했다.
-엄마, 이제 소포 보내지 마. 나 아무것도 필요 없어. 그깟 라면이랑 김 없으면 없는 대로 사는 거지.
단호한 나의 목소리에 못 이긴 척 한걸음 양보한 건 엄마였다.
5월의 내 생일과 남편의 생일이 낀 크리스마스. 일 년에 두 번만 보내기로 우린 합의 아닌 합의를 봤다.
퍼즐처럼 빈틈없이 속이 꽉 채워진 엄마의 소포는 약속대로 5월에 왔다.
늘 그렇듯 동의하지 않아도 날이 저물고 달이 기울었다.
달력 끄트머리 성큼 고개를 들이민 크리스마스.
엄마는 배송이 2주 정도 걸리는 걸 감안해 조금 앞선 12월 초 소포를 부쳤다고 한다.
그리고는 짧으면 이틀, 길면 나흘 꼴로 전화가 왔다. 전화 내용은 늘 같았다.
“아직도 도착 안 했나 궁금해서.”
엄마의 소포는 무려 4주나 지나서 도착했다.
아니, 원래대로 2주 전에 도착했지만 어디선가 발생한 ‘전산상의 오류’로 내게 오지 않았고
우체국 창고 한 켠에 방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나는 부랴부랴 우체국으로 달려갔다.
내 여권을 보더니 우체국 직원은 뒷문으로 사라졌다가 이내 큰 상자 하나를 안고 돌아왔다.
왜인지 몰라도 상자 한 모퉁이부터 옆 면이 축축하게 젖어 시큼하고 쿰쿰한 냄새가 났다.
직원은 찡그린 채 손에 남은 냄새를 킁킁거린다. 20킬로그램쯤 되는 상자를 차에 싣고 나의 불만은 폭주했다.
-어휴. 정말 제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여기 우체국은 도대체 일을 어떻게 하는 거야?
박스가 저렇게 젖도록 방치해? 엄마도 그래, 라면 몇 개만 보낸다더니, 누구 이민 가냐고.
저 냄새는 또 뭐고. 어휴 답답해.
박스는 이제 거실 한가운데 자리 잡았다.
인부들의 거친 손길에 모퉁이가 터질 새라 걱정하는 마음으로
몇 번이고 휘감은 테이프를 보니 왠지 코끝이 맵고 목젖이 묵직해졌다.
저 테이프 끝자락마다 엄마 지문이 찍혀있겠지. 작은 칼로 테이프를 갈라 박스를 열었다.
라면, 미역, 원피스, 귀걸이... 끝없이 나오는 물건들은 좁은 거실 바닥을 금세 채웠다.
꺼내면 꺼낼수록 낯선 타지의 아파트에서 엄마 집 냄새가 났다.
옷장 속 나프탈렌과 구수한 집된장, 엄마가 쓰는 비누 향이 합쳐진 냄새.
내 목젖은 이제 묵직함을 넘어 뜨끈뜨끈하고 눈은 그렁그렁하다.
나는 진득하고 시큼한 냄새의 원인을 찾아 더 파고든다.
박스 아랫쪽 넓적한 조미김 봉투 켜켜이 그 액체가 배어있다.
나도 모르게 아이 씨, 욕지거리가 나왔다. 맨 밑의 조미김을 들추니 냄새와 습기의 범인이 빼꼼 드러난다.
우유곽만한 유리병에 가득 찬 고추장아찌.
뚜껑에 겹겹이 씌워진 비닐을 단단히 묶었어야 할 고무줄이 끊어진 채
상자 바닥에 몸을 배배 꼬고 있다. 양념간장이 새어 나와 병 안에는 겨우 자박하게 남아있다.
젖은 박스 모퉁이가 설명이 된다.
장아찌 병을 들어 가만히 응시한다.
가끔 입맛이 없다고 하면 ‘우리 딸 고추장아찌 좋아하는데’ 하던 엄마 목소리가...
나는 이제 안다. 그 진득하고 시큼하던 것의 정체를.
다시 전화벨이 울리고 그녀 목소리가 들린다
“아직 도착 안 했나 궁금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