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 싸예, 참외 싸예
동네에 커다란 과일 수레를 끌고 다니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아저씨가 있었다.
« 수박~수박 싸예~ 참외~참외 싸예 ~ »
아저씨가 얼마나 오래 그 일을 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내 어린 날의 봉명동 여름 안에는 늘 그 아저씨가 있었다. 아저씨를 기억하는 이유는 단 하나이다. 아저씨의 목소리. 아저씨의 고함소리는 짐승의 울부짖음에 가까울 정도로 걸걸했다.
아저씨가 지나가면 우리반 아이들은 키득거리며 아저씨의 목소리를 흉내냈다. 교실에서 아이들이 아저씨 목소리를 듣고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면 선생님은 제법 근엄한 목소리로 ‘너네 저렇게 안 되려면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하고 말했다.
요즘에야 덜 하지만 그땐 삶을 살아내는 어른들마저 노동에 귀천을 매기는 것에 거리낌없어 하던 시기였다. « 너네 열심히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된다. »라는 것이 마치 동화 속 교훈처럼 자연스레 전해졌다. 문장 속 ‘저렇게 ‘는 대부분 육체 노동, 근무 시간이 일정치 않은 노동, 들이는 고생에 비해 나오는 돈이 적은 노동을 하는 사람을 일컬었다.
열 살 무렵의 나는 그 아저씨의 사생활에 대해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아저씨가 끄는 수레의 무게는 어떨지, 수레를 끌고 다닐 수 없는 겨울에는 무엇을 하는지, 아저씨가 지친 다리를 이끌고 돌아간 집에 방이 두 칸일지, 세 칸일지, 아파트일지, 반지하일지, 부인과 중학생 아들이 있을지, 있다면 그 아들은 아저씨의 직업을 ‘저렇게 ‘라고 콕 찝어내는 어른들의 말을 어떻게 삼켜낼지를 상상해 보기엔 나는 무척 어렸다. 나에게 과일장수 아저씨는 끊임없이 소리를 지르며 골목 골목을 배회하는, 그저 신기한 사람이었다.
머리가 미처 자랄 틈도 없이 나는 서른을 넘겼다. 어른들 말마따라 ‘열심히 공부해서’ 성인이 되었으니 편하고 만족스러운 노동자이자 사회의 일원이 될 줄 알았는데 웬 걸. 삶이 왜이리 맵고 쓴지. 나는 이리저리 휩쓸리다보니 쌩뚱맞은 나라에서 책을 쓰고 싶은 프리랜서 영어 강사가 되어 있다. 겉으로는 ‘선생님’소리 듣는 고상해보이는 이 일을 하기 위해 서너 시간 수업 준비를 하고, 한시간 동안 버스를 갈아 타서 일터에 도착하면, 한 시간 짜리 수업을 하고, 한 시간 만큼 시급이 쌓인다. 수업은 일정치 않다. 나 혹시 « 너네 공부 열심히 안 하면 저렇게 된다 »에서 ‘저렇게’의 표본이 된 걸 까나. ‘편한 노동을 못한다’라는 생각은 나라는 사람의 가치에 대한 의심으로, 그 의심은 다시 불안감으로 돌아와 스스로의 가슴을 후벼팠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짧은 다큐멘터리 영상을 하나 봤다. 섬에 사는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배에서 내렸다. 미역을 아주 많이 땄다는 노인의 피곤한 미소에 카메라를 진 젊은이가 묻는다.
« 힘들지 않으세요 ? »
노인은 당연하다는 듯 쉽게 대답한다.
« 힘들지요. 힘들지 않고 어찌 일을 한당가요. »
노인의 간단한 대답에 담긴 깊은 지혜와 연륜에 나는 감탄한다. 어째서 나는 당연히 힘들 수 밖에 없는 노동의 섭리를 의심했을까. 삶은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낼 때가 가치있다는 것을. 조용하든 시끌벅적하든 우리 모두는 자신만의 투쟁을 해내고 있다는 것을. 세상에 ‘저렇게’로 취급받아도 되는 노동은 없다는 것을 왜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을까. 아저씨의 처절한 고함 소리는 그 아저씨가 삶을 살아내는 투쟁의 방증이었다는 것을 어린 나는 이제야 깨닫는다. 사는 것은 투쟁이다. 쉬운 투쟁이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