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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니 Jan 22. 2020

명랑함의 힘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매일 아침 끔찍한 기분으로 눈을 뜨던 시절이 있었다. 신경 쓰이는 것, 불평할 것, 나를 괴롭히는 것에 사로잡혀 살던 시간이었다. 그 시절 내가 우울증 진단을 받지 않을 수 있던 이유는 거의 매일 억지로라도 하던 운동과 산책 덕분 이거나, 혹은 우울증이라고 알아봐 줄 말통하는 의사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남들의 불행은 단순하고 단편적인 납작한 어떤 것처럼 보였다. 반면 나의 불행은 설명이 필요한 복잡다단한 입면체라고 믿었다.
그 시절을 어떻게 통과했는지, 끝맺음은 어땠는지 많은 기억들이 그저 흐릿하다. 비슷한 하루하루들이 비극처럼 돌고 돌았다. 운 좋게 그 관성에서 튕겨져 나왔을 뿐이다.
내 친구 A는 명랑하다. 그에겐 비극이나 우울을 이길 힘이 있어 보인다. 그의 일상은 너무 시트콤 같아서 듣고 있자면 같이 웃음을 터트린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트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알 수 있듯이 당사자가 처한 상황은 상당히 심각하거나 참담하기도 하다. A의 일상도 사실 상당히 하드코어였다. 특별한 점이라면 A는 스스로의 비극을 조롱하고, 듣는 사람과 함께 웃어넘길 용기가 있다. A는 춤을 추는 댄서였다가, 언어를 가르치는 교사였다가, 사람들을 숲 속에 모으는 요기(yogi)였고 어느 날은 보트 청소부였다. A는, 그 모든 자신이 하는 일에 경중을 두지 않았다. 그는 유연하고 다채로운 생활을 했다. A는 돈이 없어 바게트 빵 하나로 3일을 버텨내는 본인의 일상에 대해 농담을 던졌고, 새해를 맞아 섬에 캠핑을 가려다 폭풍우를 만나 무인도에 정박해 아무것도 없이 새해를 맞은 무용담을 신나게 늘어놓았다.
나는 A를 알게 된 후 내 일상은 조금 더 경쾌하고 명랑하게 해석하게 되었다. 전이었으면 울적해하며 신세한탄할 일을 두고도 '정말 거지 같구먼!'하고 웃어넘겼다. 'A도 더한 상황에서 저리 유쾌하게 살잖아' 따위의 건방진 비교 심리가 아니었다. 차라리 존경심에서 우러나온 모방심리에 가깝다.


나는 유쾌함이나 해맑음이 우울보다 더 가치 있다고 믿지 않는다. 그저 파도처럼 밀려들거나 멀어져 가는 감정들일 뿐이다. 삶의 바탕색은 결국 우울이나 권태일 수밖에 없다고 믿는 염세주의자지만, 그럼에도 명랑함의 힘에 감사하다. 우울이 우세인 삶에서 균형을 맞춰주는 명랑함이란, 요리에 적절히 사용된 조미료 같은 것이 아닌가. 우울에 푹 잠긴 시간을 보낸 후로는 그 균형감각이 더없이 소중해졌다.


당신이 많이 지쳤다면 오늘 저녁이나 내일쯤 조금 명랑해져 보자. 자신을 울적하게 만든 일을 가지고 농담도 해보고, 아예 다른 생각을 하며 경쾌하게 누덕 거리는 감정을 털어내 보자. 다시금 우울이 묻어나는 일상을 잘 살아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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