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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niday Mar 31. 2024

불안

11주 차 | 건강하지 못한 감정들의 향연

―불안함, 초조함, 질투, 건강하지 못한 감정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 말고 다 잘 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주변 지인 중에 8개월 차 프리랜서가 있다. 6개월 차 즈음에 회사에 다시 들어갈까 고민하던데.

그때 내가 했던 말이 뭐였더라.

"그만큼 버는데 왜 돌아가, 회사 돌아가면 네가 못 버틸 걸"

그랬더니 그 친구가 그랬다.

"사람이 그리워."


지금에 와서 조금 그 말이 공감이 되었다. 다만 사람이 그립지는 않고 내가 불안해서 그렇다.

최근 중개 플랫폼에서 킥오프 미팅은 많이 들어오는데 광고주 중에 당장 할 것처럼 하고 막상 본 계약이 체결이 안된 경우가 2건.

중개 플랫폼 외에 들어오는 업무 중에는 진행이 더디거나 아예 성사가 안된 경우 (특히 비용을 터무니없이 깎아서 말하는)가 많다.

지금 하고 있는 업무 중 금액을 높여서 계약하기로 한 건이 있는데, 금액은 인상 없이 그냥 연장계약만 하면서 일은 늘어났다.

다시 나와 함께 광고를 시작하기로 한 광고주도 있었는데, 갑자기 나한테 왜 시작해야 하는지 어떤 걸 해줄 수 있는지 킥오프를 하자고 한 광고주도 있다. -나는 그분께 시작할 때가 되면 천천히 하셔도 되고 나는 이런 것을 해드릴 수 있으니 지금 필요한지 점검해 보라고 하려 한다.-


참 이상한 일이다. 프리랜서로 돈을 벌고 있지만 지출이 많아서 만족이 안 되는 건가.

이전에 회사를 다닐 때보다 수입이 줄어들어서 그런 걸까.

(월평균을 내보았을 때는 비슷하지만 업다운이 심하다)

나는 너무도 불안했다.

그리고 알고리즘이 바뀌면서 나에게 프리랜서 업무하는 법, 인스타, 블로그, 유튜브 관련 강의들이 뜨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니 모두가 잘하고 있는 것처럼, 나 빼고 모두 자신의 브랜드를 구축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외주가 중심이 아니라 내 서비스와 브랜드를 만드는 게 중심이 되어야 하지만

나는 회사 밖으로 나와도 유튜브를 아직 시작하지 못했다.

이건 용기의 차이인 걸까 실행력의 차이인 걸까.


"2개월 반정도 지나면 수입이 거의 안정화되어야 할 때가 아닌가?"

내 욕심에는 그랬다. 문득 프리랜서의 장점은 수익이 안정화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확장성에 있다는 생각이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드네.

아, 그렇구나. 나는 확장을 안 하고 있었구나.

그리고 확장에 필요한 돈을 망설이면서 쓰고 있었구나.

외주를 받으며 일을 하는 지금 나의 모습이 회사 다닐 때와 뭐가 다른지.



―트라우마, 변화, 지인이 들려준 이야기


토요일에는 사람들을 굉장히 만났다.

아침에 만난 지인은 굉장히 오랜만에 만나게 된 분이었는데, 우리 둘 다 사업을 하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내가 직장에 다닐 때와는 사뭇 달랐다. 분명 그분도 일 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겠지.
그분이 한 이야기 중에 기억에 남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사업가의 계획과 시간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 일을 하다 알게 된 사업가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확실히 다르더라고요. 저는 한번 망한 적이 있잖아요. 짧은 기간 안에 성공을 바랐는데, 그분들은 1,2년의 계획이 아니라 10년, 20년의 계획을 세우고 보고 계시더라고요."


내가 조급하게 세 달이면 안정될 줄 알았다는 말을 하니 해주신 말인데 그때 한번 와우모먼트가 왔다.

아 맞네 나는 왜 이렇게 다급하게 생각하고 있었지.

이게 이렇게 쉬웠으면 다른 사람도 다 했지. 허들 높은걸 항상 선택하는 게 내 강점 아니었나.

나는 다시 한번 더 이 허들을 넘어야 하는구나. 이것도 허들이었구나.


두 번째 이야기는 일과 건강에 관한 이야기였다.


"항상 건강이 중요해요. 제가 아는 형이 있었는데 어느 날 백억 계약을 따냈다고 양주 한잔 하자고 전화가 왔어요. 그런데 제가 그때 일이 있어서 다음에 보자고 했거든요.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가족에게서 그 형이 돌아가셨다고 연락이 왔어요. 과로사가 원인이었어요. 그때 나갈걸... 나가서 자랑 실컷 들어줄 걸 그랬어요."


그런데 기분이 정말 이상하고 (나는 F로 변해버린 것이 틀림없다) 슬픈 거다.

광고대행 업을 하고 있다고 이야기를 들을 때 내가 "아 그 일 힘든데.."라고 말했었는데, 그다음에 100억 계약을 따냈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에이 설마 하면서도 결말을 예감해 버렸나.

광고대행이 100억이면 엄청 큰 프로젝트였을 텐데, 정말 힘들 텐데. 연간 백억이었겠지? 한 달에 8.3억 정도.

수수료만 한 달에 1억 이상이었을 텐데. 그럼 진짜로 큰 스케일 업이 필요하거나 인력 보충이 필요했을 거다. 광고주도 엄청 피드백과 인볼브가 잦았을 거고.

"A 님도 건강 잘 챙기셔요."

나는 이 말밖에 할 말이 없었다.


잠시간의 숙연함. 그 자리는 이내 마무리되었고, 둘 다 사업하는 동갑내기인 우리는 다음에 보기로 기약했다.


문득 내가 살아있음이 감사했다.

그리고 우리 시골에 있는 길고양이들이 생각났다. 갑자기 웬 길고양이냐고?

우리 집 마당에는 길고양이들이 여러 마리가 있다.

집에 2개월에 한 번씩 내려가서 일주일을 죽치고 있다가 올라오는데 추운 겨울에는 조금 물도 녹여두고, 쥐도 많이 잡아주니까 이뻐해 주고 그랬는데 어느 날은 너무너무 약하고 작은 검은 아기고양이가 태어난 거다.

이름은 까망이었는데, 내가 집에서 쉬다가 서울로 올라가면서 다음에 보자고 했는데 3일 지나서 죽어버렸다.

다른 꼬리 끝이 노란 길고양이가 다른 구역에서 넘어와서 고양이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던 때였는데 까망이가 첫 희생양이었다. 그 녀석은 까망이를 엄마아빠가 잠시 외출한 사이에 말도 못 할 정도로 잔인하게 죽여버리고 사라졌다. 다른 고양이도 조금 다쳤고 그 새끼를 엄청 싸고돌던 겨울이는 다른 남은 두 새끼와도 안 놀아 주고 엄청 슬퍼 보였다. 아빠는 아직도 그곳에 고양이가 누워있으면 까망이가 죽은 것처럼 그 고양이도 죽어있을까 봐 마음이 덜컥 내려앉는다고 하셨다.


엄마가 귀여워하던 삼색이라는 고양이도 어느 날 사라져 버렸다.

그다음에 시골집에 내려갔다가 올라왔을 때는 내가 좋아하는 얼굴이 동그란 고양이 까미가 다리를 다치고 당해서 절뚝거렸다. 다음에 시골집에 내려갔다가 서울로 올라왔을 때는 밥풀떼기라는 작은 고양이가 당해서 텃밭 고랑 아래 죽은 듯이 누워있었다.

엄마가 창고에서 음식 안 먹는 거 먹이고, 따뜻하게 해주고 해서 지금은 조금 걸어 다니게 되었는데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길고양이들을 키우던 '하하하'라는 유튜버가 왜 고양이들을 위한 넓은 장소를 만들고 그 아이들을 키우기로 했는지 깨달았다.

내가 갔다 오면 한 녀석씩 없어지는 것이다.

나는 이 녀석들 때문에 감성적이게 변해버린 건지도 모른다. 부모님도 이것 때문에 분명 힘들어서 지금도 씩씩거리면서 노란 꼬리의 고양이가 오면 바로 불 켜고 뛰쳐나간다.


정말 정이라는 게 그리고 시간이라는 게 덧없다. 너무 빨라서 우리는 주변 사람들과 반려동물과도 시간을 꼭 가지고 자신도 잘 챙겨야만 한다.

건강해야지, 나도 루틴 찾고 안 좋아지던 건강 챙겨야지. 그래서 어글리어스(판로가 없거나 못난이라서 팔 수 없는 야채정기구독 서비스)를 구독하고 식단에 야채를 껴넣었으며, 일주일에 두세 번 이상은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마침 지인과 이야기하며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새삼 내가 부정적인 감정들 속에서도 잘 방법을 찾아가고 있었구나 싶었다. 모두를 위해 더 잘 찾아가 봐야겠다는 다짐이 들었다.


불안과 우울, 무기력증은 결국 모든 것이 그렇듯 사람을 통해서 해결된다.

지금에서와 드는 생각이지만 프리랜서는, 그리고 1인 사업가는 혼자서 일하는 직업이지만 같이할 수 있는 직업인 것 같다.

우리는 사업가라는 이름 아래에 서로와 공감대를 형성한다.


"사업가세요? (혼자 업무 하세요?)"

"네 사업가예요. 사업가세요? (이런저런 일 많으시죠? 잘 지내고 계시나요?)"


그다음 반갑다며 마주 잡는 손은 우리끼리의 생존신고를 뜻하고.
도란도란 나누는 우리들의 이야기는, 혼자 혹은 따로 또 같이 일하는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과 같다.
그리고 우리가 또 다른 사회 안에 속해있구나 하는 유대감을 느끼게 한다.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라 혼자서는 살 수 없다.

특히 나는 소문자 외향형이기는 하지만 외향형 인간으로서, 그리고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으로서, 함께 할 때 더 좋은 시너지가 난다.

내향형인 사람 역시 그렇다. 일의 효율이 올라가려면 항상 혼자인 상태여서는 안 된다.

맞잡은 손의 온기로 서로의 생존을 확인해야 한다.

마주 보는 눈으로 인사하고, 따뜻한 말과 느슨한 유대로 소속감을 느껴야 한다.


오후에는 또 다른 느슨한 유대의 사람들과 끊이지 않게 이야기를 나눴다.

너무 재미있어서 영어학원도 못 갔는데, 최근 연애남매 그리고 환승연애 일 이야기와 이상형 등 사소한 이야기들을 나눴다. 귀가 다른 감각기관 대비 많이 발달되지 않은 이유가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좋아해서 귀는 상대적으로 덜 발달된 것이다 같은 이야기도 하고 말이다.


결국 나는 이렇게 이번 주차도 사람 덕분에 건강하게 살아남았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사업가이거나 프리랜서 라면, 혹은 아니더라도 혼자라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그 부정적인 감정 나와 손 마주 잡고 훌훌 털어버리자.


잘 지내고 계시죠? 저도 잘 지내고 있어요.


아참, 업무는 늘어나는데 용역비는 그대로인 광고주와는 깔끔하게 안녕을 고했다.

그리고 고민하고계시던 다른 광고주와 킥오프를 하고 같이 일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공간적 자유 100%, 시간적 자유 80%를 꿈꾸면서 소중한 사람과 웃기 위해 달리는 7년 차 마케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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