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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niday Apr 29. 2024

리프레시

15주차

―프리랜서가 되고 나서도 헷갈렸다, 나는 회사를 계속 다니고 있는건지 자유로운건지.


프리랜서가 되면 듣는 말이 있다.

'부러워요'

'정말 대단한거에요'

'어떻게 그런 결정을 하게 되었어요?'

'세상에 프리랜서요? (눈을 동그랗게 뜬다)'


사람들은 올 해부터 프리랜서 생활을 시작했다고 하면 놀라며 부러워 한다.

그런데 나는 진짜 프리랜서 생활을 하고있는걸까, 아니 애초에 내가 생각했던 프리랜서는 뭐였을까.

자유롭게 일을 하는 직업? 재택을 할 수 있다는거? 원할 때 어디로든 이동할 수 있다는 것?


그런데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개인의 의지를 혼자서 컨트롤 하기에 나는 너무 약했고, 광고주의 일도 만만치 않았다.

나는 거의 9to6 의자 앞에 앉아있었다. 때로는 그보다 늦게.

그러다 보니 나는 회사를 안나가기만 했지 똑같이 직장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기회가 생겨서 제주도 숙박비를 지원받게 되었다.

눈을 떠보니 이미 2박 3일 여행갈 짐을 꾸렸고, 제주도행 새벽비행기를 타고 있었다.

역대급으로 아무 계획없는 여행이었다.



―아무런 계획없는 여행


오로지 알고있었던건 숙소가 자동으로 예약되었다는 사실 뿐이었다.

숙소 이름도 위치도 공항으로 택시타고 가면서 네이버 지도에 검색을 하면서 이런 곳임을 알게될 정도였다.

숙소 위치를 모르니 가는 길, 근처 맛집, 가볼만한 곳 찾아봤을 리가 만무하다.

그냥 말 그대로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아서 나는 내가 P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ENTJ)


쿠구구구구구구구.

비행기가 하늘속으로 들어갔다.

비행기를 창 밖에서 보면 아마 내가 창문에 따개비처럼 딱 달라붙어 까만 점처럼 보일텐데.

구름속으로 들어와 온통 하얀 구름 위에 있는 작은 점 같겠지.


안에서 본 바깥은 온통 하얀데 하늘은 새파랬다.

너무 파랗고 하애서 둘이 섞이지 못하는지 맡닿는 경계에 하늘색으로 희게 빛나는 띠가 보였다.

이런 하늘은 처음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이륙할 때 그제서야 정부지원에 당첨되었을 때 휴가를 쓰지않고도 훌쩍 가는 여행임이 실감됐다. 참 이상한 기분이 온몸을 가득 채웠다. 이런게 가능하다니.



프리랜서의 장점은 때로는 멀게느껴진다.

출근을 안해도 된다는 것 말고는 특별할게 없이 느껴진달까.

집에만 계속 있고 나가지 않으니 재택근무하는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출퇴근을 안해도 되고, 내가 밥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고, 아침시간을 내맘대로 쓸 수 있고 솔직히 좋은게 많은데 조금만 다른 일을 하면 금새 시간이 휘발되어버리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에 느꼈다.

혼자서 여행을 시간 제약없이, 공간 제약 없이 갈 수 있다는 게 이런거였구나.

나는 이런 삶을 살 수 있었던 거구나.


숙소는 멋졌고 음식들도 맛있었고, 같이 지원받아서 숙소에서 통성명 하게된 사람들도 모두 새로웠다.

숙소 근처에는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시설이 갖춰져 있었고 조금만 걸으면 바로 바다였으며 작았지만 내 숙소 창밖으로 바다가 보이기도 했다.


방을 쭉 기록하고, 공용 업무 공간에 있는 책장에서 원하는 책을 한권 새벽에 꺼내읽었다.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어딜 나가든 일을 하든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났다.


정말 필연적이게도, 앞으로 나는 혼자하는 여행을 몇번 더 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미래의 나에 대해서 조금 더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5년후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35살의 나는 어떤 삶을 살고있을까?


(1) 새벽4시 공유오피스 책장에서 꺼내읽은 책을 다이어리에 정리했다. / (2) 1인석 자리 듀얼 모니터 쓸 수 있다 / (3)숙소 뷰.


이번 한주는... 그래, 내가 프리랜서의 장점을 비로소 알게 된 한주였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맞는걸까 생각이 많아지고 우울할 때는 여행을 가야한다는 것도.



(1)숙소 근처 바다등대 / (2)노을지는 제주도의 하늘 / (3) 요가라움


그리고 새로운 취향도 생겼다.


그도 그럴 것이 리플로우(숙소)는 꽤나 유사하게 나의 취향을 그려놓은 공간이었다. 공용 공간은 천창이 뚫려있어 날은 어떤지를 바로 볼 수 있었다. 빈티지 유럽 보헤미안 러그의 멋도 알게되었고 의자도 몸에 딱이었다.


특히 내 취향이 된 것은 어매니티였는데, 다른 숙소와는 달리 전부 이솝이었다 (핸드워시, 로션, 바디워시, 샴푸, 컨디셔너). 머리결이 금새 부드러워지고 몸도 적당히 촉촉해서 하나도 건조하지 않고 1층 출입구에 들어오면 엘레베이터 앞이 이솝 매장과 연결되어있어 좋은 향기가 났다.

이솝 매장에 가서 제품을 둘러봤는데 500ml 1개가 12만원이 넘었다.

놀랐지만 당장이라도 사고 싶었다. 지금 쓰고있는 샤워용품이 다 없어지면 이솝을 들여놓을 내 모습이 훤했다.



―결국 목표를 세워야 함을 인정하기, 미래를 예측하려고 해야함을 받아들이기


프리랜서가 되고 나서는 루틴한 미래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수치적인 목표보다는 루틴과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집중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어째서 시니어 분들이 뭘 할지 모르겠더라도 목표를 가지라고 한건지 이해가 됐다. 예측하지 않는 사람과 목표가 없는 사람은 미래의 모습을 그릴 수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그렇듯 미래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더욱 선명하게 생각할 수록 가까이 온다고 하지 않던가.


그 공간, 배치, 공기, 향기, 올라가는 방향, 자연스레 인사하는 제스처, 내 헤어스타일과 말투...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최근 작은 꿈이 생겼다.

풀스택 개발을 배워서 프로덕트를 만들어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 제주여행 때처럼 어디든 돌아다니며 해외에서 글로벌리 일을 하고있겠지. 나만의 파이프 라인을 가진채로, 부수입까지 빵빵하게 가진채로 말이다.

그리고 내 옆에는 같이 다닐 수 있는 한명이 있을 것이다.

믿고 의지할 수 있는 한 사람 말이다.

뱃속에 아이가 있을지도? 그리고 그 아이가 천재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내 몸은 지금보다 건강할 것이고, 피부는 지금보다 젊을 것이다. 작은 것에도 웃을 수 있을 것이고, 다른 사람에게 업무적으로 필요한 조언을 주는 일도 병행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만들고 싶은 프로덕트를 구현해 보기도 하고, 앱스토어에 여러개를 출시하면서 캐시카우 테스트를 하고 있을거다.

옷은 지금처럼 베이지, 오트밀 계열을 깔끔하게 입고 있겠지, 머리 스타일은 약간 짧게 잘라서 편하게 감고 스타일링 할 수 있게 되어있을 거다. 짐은 그렇게 많지 않고 최대한 간단하게 들고다닐거다.

가방은 때가 잘 안타는 어두운 색의 각이 진 가방일거다.


화상미팅을 하면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외국인도 포함되어있을 것이다.

나는 영어로 자유롭게 말을 하면서 의사소통을 하고, 사람들의 말을 이해하고 적당한 리액션을 하고있겠지.

가보고 싶었던 구글 본사도 가보고, 실리콘 밸리에도 방문해 볼 것이다.

그리고 이곳 저곳에서 한달 이상 진득하게 살며 그곳을 즐기다가 한국으로 돌아와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거다. 배우자는 배우자의 집에, 나는 나의 집에 가서 부모님과 이야기 하면서 마당을 보고있겠지.


제주는 그런 곳이었다.

이런 상상을 할 수 있게 해준, 다시금 삶의 목표를 잡을 수 있게 해준 그런 곳.

이제 다시 조금 더 똑바로 방향을 잡고 가볼 수 있을 것 같다.


프리랜서라는 길을.



간적 자유 100%, 시간적 자유 80%를 꿈꾸면서 소중한 사람과 웃기 위해 달리는 7년 차 마케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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