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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브투헤븐: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

마지막 이사

by 순정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무브투헤븐:나는 유품 정리사입니다

일요일 정주행 하다


나는 생각한다

내가 볼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에 대해...


끌림이다

끌리는 이유에 대해 정의를 내리라고 한다면

모르겠다

순간 이거다 하는 찰나가 있을 뿐이다

감독이 좋아서 배우가 좋아서 제목이 좋아서

좋은 이유는 많다


반면에 선택하지 않는 이유도 없다

다만 감독은 좋은데 스토리도 좋은데

배우(출연자)가 싫으면 절대 못 본다

안 보는 게 아니라 못 본다

싫은 이유는 없다

아주 무서운 말인데 '그냥'

(그냥은 없다고 런온의 오미주가 말하지만...)


무브투헤븐:나는 유품 정리사입니다

사전 정보 없이 봤다

제목이 정확하게 부제목이 날 자꾸 끌어당겼다

나는 유품 정리사입니다.


첫 화부터 어라 이거 뭐지?

제목에서 이미 슬픔은 장착되었다고 각오는 했는데

울분을 토하게 하는 이것은

끝나는 순간까지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여준다


내가 뉴스, TV를 끊었던 이유들이 쫘악 나열되는 순간 드라마를 보면서 화를 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지찔이 같아서 싫은 모습)


산업재해, 데이트 폭력, 백화점 붕괴, 갑질, 고독사, 해외입양, 동성애 등등...


무브투헤븐:나는 유품 정리사입니다

친절한 제목이자 먹먹한 마음이 밀려드는 제목이다

(전적으로 개인적인 느낌이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해 유품을 정리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

일반적으로 가족, 친척 그리고 반려동물의 유품을 정리해 봤을 것이다.


나는 가족, 친척, 반려동물의 유품을 정리해본 경험이 없다

나는 알지 못하는

얼굴은 몇 번 스쳤을

인사는 몇 번 했었을지도 모르는 후배의 유품을 정리한 적이 있다

무브투헤븐(Move To Heaven) 마지막 이사를 한 적이 있다(시리즈에서 표현한 것처럼)


스스로 세상과 인사를 한 후배

대학원을 다니면서 용돈과 숙소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한 기숙사 사감(보)

어처구니없지만 어디서든 리더를 하는 용띠(사주풀이)


4월의 아카시아 향이 만발한 어느 날

후배의 마지막 이사를 하기 위해 그의 방문을 열었다

마음의 동요가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최대한 평정심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말없이 후배의 책상을 정리하면서 알 수 있었다


원작 김새별. 전애원의 에세이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의 제목처럼

드라마에서 줄곧 이야기하고 있는 유품에는 생전 고인의 삶이 깃들여 있다.

작은 흔적도 세심하게 챙겨야 한다.


유품 정리사는 아니었지만

슬프고 슬픈 죽음 앞에서 경건해질 수밖에 없었다

후배가 남겨 놓은 물건을

유품을 정리하면서

그의 선택이 순간의 선택이며,

그는 미래를 꿈꾸고, 하고 싶은 일이 많았던 청춘 있었다


유품을 들여다보니 점점 마음이 동요되면서

덥지도 않은 4월 식은땀이 흘렀다


유가족으로 유품을 전달 받으러

후배의 백부와 조카 오셨다

이런 상황이 처음인지라 한없이 어색하게

인사를 나눈 뒤 다시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순간!! 백부가 하신 말씀에 팽팽히 당기고 있던 마음이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땀인지 눈에서 나오는 물인지 눈앞이 점점 흐릿해졌다

그 이후 어떻게 정리를 했는지 기억이 없다

조카(후배보다 어린)가 어떻게 챙겨야 하는지를 물었다.
백부: 너무 죄송하다. 학생들한테도 여기 계신 선생님한테도 남김없이 먼지까지 싹 가지고 가야 한다.

누군가의 죽음이 죄송함과 송구함으로 변했다

유가족에게 물품을 전달하고 사무실로 돌아와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눈에서는 쉼 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후배의 기억이 흐릿해질 무렵

후배의 아버님이 후배 이름으로 장학금을 몇 해에 걸쳐 지원하셨다

(여기저기 선생님들의 안타까운 탄성이 나왔다)

훌륭한 백부와 부모님을 둔 후배의 선택에 순간 원망스러웠다


드라마를 보면서

벚꽃이 휘날리면서 아카시아 향이 가득한 4월 어느 날이 오버랩되어 더욱더 드라마 보기가 힘들었다.

다시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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