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 소확행과 경험 비즈니스 1
10년 전, 군대에서 제대한 친구들은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한 잔 하는 나의 행동을 된장남이라고 생각했었다. 된장남은 비싼 가격의 물품과 서비스를 즐기며 과소비를 하는 남자를 비하하는 단어다. 하지만 요즘은 아침 출근길마다 3000~4000원 정도 하는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며 하루의 업무를 시작하는 모습을 보고 된장남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제 스타벅스에서 아메리카노 소비하는 것은 된장남이 아닌 작은 행복을 불러일으키는 일상의 루틴(Routine)이 돼버린 것이 아닐까?
'루틴'이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될 때가 많다. 매번 반복되는 판에 박힌 일이나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을 표현하는 단어로써 변화 없는 무료한 사람의 삶을 대변할 때 사용한다. 루틴의 뜻은 '일상'이나 '관례'를 의미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굳이 반복적으로 해야만 하는 일과 같은 부정적인 어감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지금만 같기를 바라는 '루틴'에서 행복을 찾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어른이 돼버린 것을 깨닫게 된다. 이는 어른일수록 저마다 삶의 두려움을 안고 살기에, 변화보다는 안정에서 행복감을 느끼는데 기인한 것이다.
그렇다면 지루해 보이는 루틴에서 느낄 수 있는 행복감은 어떤 것일까. 아침에 출근하여 전 향이 좋은 커피 한잔을 마시며 시작하는 그런 작은 행복은 아닐까? 최근 일상에서 작은 행복이 반복하려는 행위를 트렌디한 단어로 '소확행(小確幸)'이라 정의하고 있다.
소확행은 이루기 힘든 만큼 성취가 큰 행복보다, 소소하고 확실한 성취를 통해 일상의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경향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김난도 서울대 교수가 올해 소비의 주요 흐름으로 2017년 10월 트렌드 코리아에서 예견한 단어이며,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1986년에 발간한 수필집 [랑겔 한스 섬의 오후]에서 처음 등장한 단어이다.
하루키의 소설에서 소확행은 현재 한국의 저성장 시대과 닮아있는 1980년 일본의 경제 불황기 시절에 취업불안 과 같은 스트레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 려는 일종의 ‘방어기제’의 역할로서 소소하나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려는 소망을 담은 단어로 사용되었다. 이는 너무 빨리 달려오느라 뒤를 돌아보지 못한 일본과 우리의 사회에 행복의 진정한 개념을 돌이켜보게 되는 씁쓸한 이면과 같계가 깊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소확행이란 어디서 어떻게 일어날까? 아침 출근길 단순히 음료를 마시기 위해서라기보다 브랜드를 즐기고, 향을 음미하며 분위기를 만끽하는 소소한 기쁨과 만족스러운 투자, 비 오는 날 내 마음에 드는 비옷과 신발을 신고 빗길을 걷기, 비가 온 뒤 미세먼지가 걷힌 날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기, 그리고 출퇴근길 내가 모르던 좋은 음악을 발견하고 감상할 수 있는 일... 이 모든 행동에 담긴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처럼 소확행은 남들은 아닐지 몰라도, 최소한 나에게만큼은 즐거운 경험을 위한 투자라고 할 수 있다. 이 투자는 시간 또는 비용을 지불하여 나만의 소박한 경험을 즐기기 위한 목적으로 사실상 주체의 개성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타인의 비교와 불행한 사회현상에 순순히 지배당하지 않겠다는 자아 발현의 행동인 것이다.
과거 행복을 찾기 위해서 연예인과 같은 유명인들이 사용하는 값비싼 유행 아이템 너도나도 똑같이 구매하는 모방 소비와 과시형 소비가 점차 사라지고, 나만의 공간과 나만의 취미 생활을 찾으며 소소하고 수행 가능한 행복을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도 소확행이 확산되는데 역할을 하고 있다.
과거와 다른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는 사람들이 획일적인 성공지향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 행복하게 사는 자신만의 방식을 추구하는데서 시작되었다. 이는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서 소비가 삶의 필요를 채우는 수단에 변화가 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의 핵심적인 시도 중 하나가 물질이 아닌 관계에서 행복을 찾고자 하는 휘게, 킨포크, 라곰 라이프스타일이다.
'휘게(Hygge)'는 행복지수 1위인 덴마크의 여유와 관계의 미학을 기반한 행복한 라이프스타일을 의미한다. 웰빙, 아늑함, 안락함, 여유, 친근함 등을 표방하며 럭셔리 라이프오 반대 성향으로 나타난 삶의 방식이다. '킨포크(Kinfolk)'는 나와 살을 맞대고 사는 사람들에 더 집중하자는 삶의 방식이며,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나누며 살자는 라이프스타일을 의미한다. '라곰(Lagom)'은 많지도 적지도 않게 딱 적당한 균형점을 지향하는 스웨덴의 라이프스타일을 의미한다. 이는 아늑하고 편안한 나만의 공간을 제안하는데, 여기서 벽난로, 자연물로 꾸민 공간, 목재가구, 담요와 러그, 자연광이 드는 창, 핫초코가 담긴 머그잔과 함께 집 안에서 이 순간이 행복하면 그만인 심심의 평안함을 추구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는 투박하고 조용한 상태를 가리키며, 작은 것에 만족하며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하며 늘 적게 소유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로 '와비사비(わび・さび)'가 발전되었다. 와비사비 라이프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정취를 말하며 시간의 덧없음, 아름다움, 진정함을 의미한다. 사비를 실천하는 삶은 태어나고 죽는 자연의 섭리를 받아들이고 그 과정에서 수반되는 불완전함을 포용하며, 덧없는 것 속에서 조화와 기쁨을 발견하는 삶이다.
상기와 같이 좋은 대학, 대기업 취업, 결혼, 출산으로 이어지는 인생 공식에 목매지 않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에 지장이 없는 수준의 수입을 버는 세대가 증가가 만들어낸 라이프스타일 변화를 판매하는 비즈니스와 문화욕구를 만족하기 위한 소확행을 추구하는 소비자를 만나면서 우리 삶 내부로 침식하고 있다. 바로 잘 사는 도시에서 골목상권의 소규모 샵이 번성하는 '골목길 소확행'의 트렌드로서 말이다.
트렌드는 이태원, 해방촌, 경리단길, 황리단길, 객리단길, 익선동... 익숙함을 버리지 않고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며 한국만의 레트로 한 골목 경험으로 확장되며 골목길 소확행의 트렌드가 형성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골목길 소확행 비즈니스에 대해서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참고자료
마쓰다 무네야키, 라이프스타일을 팔다 - 다이칸야마 프로젝트, 2017
이영미, 소확행의 힘, 새가정(제65권 통권 제709호), 2018
줄리 포이터 애덤스, 와비사비 라이프 - 없는 대로 잘 살아갑니다, 2017
최태원,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가 온다,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