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줄 안다.
동네 친구 A가 말했다. A는 회사에서 사람들이 자신을 너무 쉽게 봐서 화가 난다고 했다. 조금 잘해줬더니, 후배는 기어오르고, 상사는 내 일도 아닌데, 떠넘긴다고, 화를 냈다.
화를 냈다, 꼭 나한테 화내는 것처럼. 나는 동네 친구 A의 상사도 후배도 아닌데.
집에 돌아오는 길에 동네 친구 A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줄 안다.
묵묵히 동네 친구 A의 화를 들어주고 있느라, 생각하지 못했지만, 다시 그 말을 떠올려보니,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었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아는 사람들. 조금 화가 올라왔다. 하지만, 혼자라 어디에다 화풀이할 곳은 없었다. 동네 친구 A는 자신의 화를 오늘도 착실히 입금했다. 적금처럼 A의 화가 내 안에 누적된다.
복리로.
집으로 가는 골목 길. 가로등 밑. 쓰레기 봉투가 쌓여있는데,
그 위에 초록색의 무언가가 있다. 물건은 아니고, 살아있는 것만 같다.
너무 놀라, 뒷걸음질치다, 턱에 걸린다.
호이!
뒤로 균형을 잃고 자빠지려던 몸이 앞으로 균형을 찾는다. 부드럽지만, 강한 바람 같은 것이 등을 떠밀어준다.
초록색의 무언가가 가로등 불빛 아래로 나온다.
둘리.
둘리구나, 라고 안심한다.
- 여기서 뭐해?
- 길동이가 또 쫓아냈어. 못 살겠어 진짜.
둘리와 나는 손을 잡고, 동네 놀이터로 간다. 나란히 그네에 앉아, 얘기를 계속한다.
길동이 녀석. 내가 호이! 호이! 해서 집도 대궐처럼 만들어주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도와줬는데.
둘리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닭똥, 아니 공룡똥 같은 눈물을 흘린다.
- 아니, 글쎄. 자기가 요새 탈모가 있다고, 머리를 심으라는거야. 그건 호이 호이! 로도 안 먹히더라고. 그랬더니만, 날 쓰레기 봉투에 담아서 쫓아낸거 있지. 이제서야 간신히 쓰레기 봉투를 찢고 나온거야. 길동이 그 새끼, 진짜 나쁜 새끼야. 내가 희동이만 아니었어도…
묵묵히 들었다. 한동안 둘리의 푸념은 계속되었다. 새벽 어스름이 밝아올 때까지.
새벽 어스름이 밝아오자, 둘리가 갑자기 뭔가 생각난듯, 호들갑을 떨며 일어났다.
- 얼른 가야겠다. 아침 되기 전에 몰래 들어가야지. 길동이 일어나면, 또, 외박하고 왔다고, 구박할거야.
둘리가 저편으로 뛰어갔다.
집에 들어가는 길에 둘리가 했던 말을 떠올린다.
호이가 계속되면 권리인줄 안다.
오늘도 역시 묵묵히 듣기만 하느라, 아무 얘기도 못한, 오늘.
마음 속 그들의 적금 통장은 오늘도 누적되고 있다. 복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