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달리기의 좋은 점
나는 슬로우 러너다. 느리게 달린다. 거의 누구를 제치는 경우는 없다. 대부분 다른 사람들이 나를 제치고 앞서간다. 탱크톱, 레깅스, 헤어밴드, 스마트워치 등 본격적으로 달리는 사람들. 다들 어쩜 그리 빨리 달리는지 쳐다보고 있어도 숨이 찬다. 가끔은 나도 저렇게 빠르게 달리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휙휙 바람을 일으키며 달리는 모습이 멋있기 때문이다. 나도 저 바람을 느껴보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든다.
전에는 따라잡아 보려고 했는데, 이내 숨이 차서 멀어졌다. 오히려 지쳐서 멈춰 서게 되었다. 다들 너무 빠르다. 몸이 가볍고, 오래 달려온 사람들을 따라잡으려면, 잠깐은 쫓을 수 있지만, 금방 지친다.
당연하다. 왜냐하면 그들의 속도는 나의 속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들의 무게와 나의 무게는 많이 다르므로 - 나는 세자리, 그들은 두자리 몸무게..)
나의 속도가 있다. 나한테 맞는 페이스가 있다. 오래 달리려면 나의 페이스로 달려야 한다. 꾸준히 달리고 싶다면 내 페이스로 달려야 한다. 너무 빠르게 달리면 숨이 차고, 숨이 차면 힘들어 진다. 힘들어지면 달리기 싫어진다.
오늘만 아니라, 내일도 모레도 달리고 싶다. 달리는 게 싫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KOREA ARMY를 입고 이 열 종대로 빠르게 달려가는 크루들, 바람을 일으키며 쭉쭉 앞으로 뻗어나가는 “진짜 좀 달려본” 사람들한테서 신경을 꺼야 한다. 그들은 그들이고, 나는 나라고. 나의 속도로, 속도에 맞는 호흡으로, 숨차지 않게 달리겠다고 스스로 마음을 다 잡아야 한다.
슬로우 러닝은 좋은 점이 많다.
우선 주변 풍경을 살펴볼 여유가 있다. 호흡이 빨라지면, 들숨과 날숨에 신경 쓰느라, 주변을 살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여유가 생기면, 멀리 하늘을 흐르는 구름을 볼 수 있다. 바람 가는 대로 천천히 흘러가는 구름. 유유히 흐르는 한강도 보인다. 잔잔한 물결.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 표정에 엿보이는 기쁨도 볼 수 있다. 세상도 그리 빠르게 흘러가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보다 세상은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
마음속을 천천히 살펴볼 여유도 생긴다. 회사에서 일할 때는 정신이 없다. 뒤죽박죽, 급하고 바쁘다. 출퇴근 길엔 또 어떤가. 사람들 틈새에 꽉 껴서 짜증이 치솟는다. 해지는 저녁 한강 변을 느리게 달리면, 전쟁 같은 일과는 멀어지고, 평온이 찾아온다. 마음의 속도가 느려진다. 그제야 정신이 없어 찬찬히 들여다보지 못한 마음을, 느린 풍경을 바라보듯 살펴보게 된다.
빠르게 달리는 것만이 유일한 달리기는 아니다. 대회에 나와 있는 게 아니니까. 천명이 있으면 천명의 속도가 있듯이 각자에 맞는 달리기가 있다. 중요한 것들 빠르냐, 느리냐가 아니라, 충분히 즐기면서 달리고 있느냐일 것이다.
달리기를 삶에 대입해 보면 또 그런 생각이 든다. 빠른 삶이 반드시 좋은 삶은 아니라는 생각.
빠르게 돈을 벌고,
빠르게 목표를 달성하고,
남들보다 더 앞서가는 삶.
목적지에는 남들보다 먼저 도착했겠지만,
그러느라, 길가에 코스모스가 피었는지, 패랭이 꽃이 피었는지, 같이 살아가는 소중한 사람들의 표정이 어떤지 보지 못했을지도.
느리게 사는 삶은 다른 사람들보다 목적지에는 좀 늦게 도착할지 모른다.
그만큼 그 과정에서 좀 더 찬찬히 깊이 소중한 것들을 시간 들여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빠르다고 나쁜 삶이라거나 느리다고 좋은 삶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도 의미 없는 게 빠르다거나 느린 것은 상대적인 평가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저 중요한 것은 나의 호흡, 속도, 리듬에 맞춰 풍경을 보는 것. 놓치고 있는 소중한 것들을 다시 한 번 살펴보는 것.
오늘도 나는 슬로우 러닝을 한다. 나의 ‘느림’으로 달리고, 나의 ‘느림’으로 살아간다.
느리게 달리는 내가 좋다. 느리게 달리는 내 삶이 좋다' 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