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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이너리 Sep 25. 2022

#2 회상

극심한 고통 속에서 찰나의 평온이 찾아왔을 때


극심한 고통 속에서 찰나의 평온이 찾아왔을 때, 눈을 지그시 감고 인생 전체를 돌아보게 되었다.

(2022년 어느 여름날 자신의 원룸 안에서 한 남자가)



  2022년 어느 여름날 주말 오후

한 남자는 감기몸살에 걸려 약을 먹고 자신의 원룸 창문 구석에 위치한 매트리스에 누워 잠시 낮잠을 자고 있던 도중 썩어서 가운데가 움푹 파인 상태로 절반도 남아 있지 않은 그의 어금니 안쪽 살을 누군가 송곳으로 있는 힘껏 후벼 파는 것 같은 극심한 통증을 느끼고 놀란 나머지 급하게 벌떡 일어나서 화장실로 달려가 세면대를 붙잡고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일주일 전, 그는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져 머리를 크게 다쳤다는 소식을 연락을 받고 곧바로 서울 센트럴 터미널로 달려가 광주광역시로 향하는 야간 버스를 타고 그의 아버지가 누워있는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당장 내일의 삶도 보장할 수 없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있는 환자들이 가득한 응급실 한쪽 구석에 산소 호흡기를 달고 산 송장 마냥 누워있는 아버지를 한 남자는 한참 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의 아버지는 의식은 있었지만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 아들인 한 남자조차도 말이다.


 그래도 생명에는 지장 없을 거라는 의사의 말에 마음을 조금이나마 추스를 수 있었지만 수술하고 깨어나면 인지능력과 기억이 상실되어 정상적인 생활을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듯했다. 그리고 다음날 출근을 해야 했던 한 남자는 그의 어머니와 점심을 함께하고 다시 서울행 버스를 타기 위해 터미널로 발걸음을 돌렸다. 너무 놀라 하얗게 질린 얼굴에 두 눈은 벌겋게 충혈되고 눈가엔 눈물이 가득 고여 있는 그의 어머니의 슬픈 얼굴과 앞으로 정상적인 정신으로 살아가지 못할 수도 있을 아버지의 현 상황을 뒤로 한채 터미널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그 무엇보다 그의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던 건 아버지의 안위에 대한 걱정을 하면서도 24시간 그의 곁을 지키며 간호하는 일과 집안 형편에 크게 부담으로 다가오는 병원비(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로 보험 처리가 안 되는 그의 아버지였다.) 등 이 모든 짐을 그의 어머니 혼자사 짊어지고 있음에도,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터미널로 가기 전 그는 어머니에게 “병원비는 어떻게 할 거야? 부담스러운 비용이면 나도 어떻게 마련해서 보태볼게”라고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누구보다 한 남자의 현 상황과 처지를 알고 있었기에 “어떻게든 자신이 해결할 수 있으니 걱정 말고 네 일이나 열심히 하라”라고 말했던 그의 어머니였다.

 

 잠을 한숨도 못 자고 내려왔던 터라 피곤에 절어 컨디션이 무척 좋지 않았던 그는 아버지의 불안한 미래에 대한 걱정과 나이 서른이 넘고도 위독한 아버지를 위해 조금이라도 금전적 보탬을 해줄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 자괴감을 느꼈고 그 밖에 여러 부정적인 감정에 신경을 너무 썼던 이유에서인지 그는 다음날 심한 몸살에 걸리고 말았다. 몸살감기쯤이야 타이레놀 먹으며 버티다 보면 며칠 지나고 없어지기 때문에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그 였지만 하필 그 시기에 오랫동안 잠잠하던 치통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아버지 일 때문에 신경이 예민한 상태였는데 몸살감기에 치통까지 스멀스멀 올라오자 그의 신경은 매우 날카로워졌다. 2시간마다 타이레놀을 2알씩 먹어가며 회사생활을 이어가고 있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하고 작은 일에도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항상 2~3일 지나면 없어지던 치통도 이번에는 끈질기게 그를 괴롭혔다. 그리고 이번 치통은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고통이었다.

평소에는 신경을 조금씩 건드는 수준의 작은 통증이었지만 갑자기 썩은 어금니 안쪽 살을 송곳으로 후벼 파는듯한 통증이 하루에 1~2번씩 찾아왔다.


 10년 전 즈음, 그는 어금니 2개에 충치가 생겨 치과치료를 한번 받으러 갔는데, 일반적으로 신경치료는 2~3번 이상 치료를 받아야 한다. 당시 그는 첫 번째 신경 치료에서 어금니를 수직으로 구멍을 내고 세균과 염증 그리고 신경조직을 제거한 후 임시 충전재로 수직으로 뚫린 구멍을 막았다. 그리고 2~3번 더 방문해서 치료를 마무리해야 했는데 첫 번째 치료만 받은 채,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군대를 가고, 아프리카를 가고, 호주를 가고 한국 와서도 치료를 미루고 미루다가 그 상태로 10년을 방치해버린 것이다. 어금니 하나는 아프리카 시절 너무 아파서 뽑아버렸고, 지금 남은 어금니 하나가 말썽을 부리기 시작한 것이다.


 갑자기 찾아온 극심한 통증으로 화장실로 달려갔던 그는 화장실 세면대를 꼭 붙잡고 고개를 푹 숙인 상태로 세면대를 바라보다 눈을 질끈 감고 통증이 사라지길 기도하고 있었다. 1분 정도 지나자 극심한 통증은 어느 정도 사그라들기 시작했고, 그는 고개를 들어 세면대 위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았다. 거울에 비친 그의 얼굴은 일그러져있었고, 통증을 참다가 벌겋게 충혈된 두 눈가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극심한 치통이 사그라들자, 그는 지친 얼굴로 화장실을 나와 원룸 구석에 있는 매트리스에 누워 평소 그가 좋아하는 한스짐머 플레이 리스트를 재생시키고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았다.


 마음이 한결 편해지긴 했지만 깨작깨작 신경을 건드는 작은 치통은 여전히 남아있었고, 또다시 찾아올지도 모를 극심한 치통 때문에 불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평일에는 회사 생활이라도 했다 치지만 몸살과 치통으로 황금 같은 주말에 아무것도 못하는 것에 짜증이 나기 시작한 한 남자는 또다시 마지막 2알이 남아있는 타이레놀을 모두 삼키고 누워있던 매트리스에서 일어나 노트북 앞에 앉았다.


 모든 걸 잃고 빈털터리가 된 채, 늦은 나이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한 남자는 주말에 뭐라도 해야 한다는 강박을 항상 느껴왔다. 집도 없고, 차도 없고, 새로운 직무로 전직해서 말단 사원부터 시작해야 했기 때문에 연봉도 이전처럼 그다지 높지 않았고, 사업할 때 땡겨쓴 신용대출까지 남아있던 터라 사실상 마이너스인 상태로 다시 시작해야 했던 그는 그가 열망하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주말에도 쉬지 않고 무언갈 만들어내야 마음이 편했다.


 몸살감기와 치통을 호소하면서 타이레놀 2개를 삼켜 약기운까지 남아있는 상태로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일단 노트북을 켜고 자신이 그토록 열망하고 원했던 꿈인 IT 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해 필요한 프로그래밍 언어를 공부하려고 코드와 함수를 분석해보려 했지만 도저히 집중을 할 수 없었고 유튜브 강의 영상이라도 보려고 켜 보았지만 집중이 안 되는 건 매한가지였다. 그렇게 앉아서 아무것도 머리에 넣지 못한 상태로 2시간을 흘려보낸 그에게 타이레놀 약빨이 떨어졌는데 또다시 치통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이미 오늘 극심한 치통이 찾아왔기 때문에 내일까지는 극심한 치통은 오지 않을 것이라는 걸 일주일 동안의 경험을 통해 알았지만 인내심을 조금씩 갉아먹는 작은 치통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그의 신경을 예민하게 만드는 주범이었다. 몸살감기와 작은 치통은 타이레놀이면 어느 정도 해결되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타이레놀을 꺼내기 위해 책상 서랍을 열었다. 하지만 아까 먹은 2개의 타이레놀이 마지막이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한 남자는 타이레놀을 사기 위해 근처 편의점으로 갔다.


 타이레놀을 사러 온 김에 캔커피와 저녁으로 먹을 편의점 도시락을 골라 편의점 직원에게 카드를 건네고 계산을 기다리고 있는데 편의점 직원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잔액부족이라고 뜨는데 혹시 다른 카드는 없으세요?”

사실, 기업은행 체크카드밖에 쓰지 않았던 그였지만 그 순간 너무 당황스럽고 민망해서 둘러 대며 말했다.

“어.. 나올 때 그 카드 하나만 가져왔는데.. 그러면 다른 거 빼고 타이레놀만 계산해주세요”

캔커피와 도시락을 빼고 타이레놀만 계산하기 위해 다시 카드결제를 시도한 직원이 말했다.

“또 잔액 부족이 뜨는데 어쩌죠?”

한 남자는 그 민망한 상황을 일단 모면하고 싶어서 다시 오겠다는 말만 남긴 채 도망치듯 편의점을 빠져나왔고 편의점 벤치에 앉아 기업은행 어플을 켜서 잔고 조회와 카드 사용내역을 확인했다.


 잔고는 1,240원이 남아있었다. 분명 이번 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잔고가 10만 원 정도 남아있었고, 이번 주말만 버티면 다음 주가 월급날이니 그때까지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그였다. 적어도 7만 원 이상 남아있을 거라고 예상했던 그는 카드 내역을 확인했는데 하필이면 이번 주에 넷플릭스, 체크 교통카드, 실비보험이 빠져나간 것이다.


 일단 타이레놀은 살 돈은 모아보겠다는 생각에 스마트폰을 열어 카카오 뱅크, 카카오페이를 비롯해 이전에 사용하던 모든 계좌와 혹시라도 현금화할 수 있을지도 모를 네이버 포인트 같은 것들을 뒤져보고 하나로 모아보았지만 타이레놀 하나 살 금액도 안됐다. 그래서 그는 원룸에 다시 들어가서 옷장과 서랍을 모조리 뒤지기 시작했다. 타이레놀 하나 살 돈이 없어서 이 짓거리를 하고 있다는 사실도 화가 났지만 점점 몰려오는 통증에 조급한 마음이 더 컸던 그는 열심히 타이레놀 하나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 여기저기를 뒤지기 시작했다.


 평소 현금을 사용하지 않았던 그의 원룸에 현금이 많이 나올 리가 없었다. 대략 3400원 정도가 모였는데 이 돈으로 타이레놀을 살 수 없었다. 여기저기서 끌어 모은 온라인 잔고와 원룸 옷장과 서랍에서 긁어모은 현금을 합치면 살 수 있었는데 이걸 합칠 방법이 없었고 결국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마음먹었다.


 연락처에서 가장 친한 친구들 중 한 명을 검색하고 전화를 걸어 당장 카카오페이로 10만 원만 쏴달라고 말하려고 통화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그는 멈칫했다.

타이레놀 하나 살 돈이 없어서 친구한테 10만 원만 보내 달라고 도움을 요청하는 자신이 너무 싫었다.

신용대출과 월세, 교통비, 보험비, 식비 등 고정 지출비를 다 내고 나면 항상 월급까지 생활비가 부족했던 그였다. 그래서 매달마다 찾아오는 이벤트 마냥 친구들에게 10만 원씩 빌려서 월급날에 다시 되갚는 것을 반복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친한 친구들에게 이미 10만 원씩 다 빌린 상태였고 곧 월급날이 다가와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 사달이 난 것이고 타이레놀 하나 살 돈 없어서 또다시 돈을 빌리기 위해 친구들에게 연락하는 것이 너무 싫었다.


 친구들에게 염치가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더 이상 이런 비참한 모습을 친한 친구들에게 조차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의 친구들은 이미 그의 처지와 상황을 잘 알고, 누구보다 그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기꺼이 그가 필요하다면 100만 원이라도 이유를 묻지 않고 당장 쏴줄 친구들이었다.

하지만 한 남자는 스스로 자괴감에 빠지고 계속되는 통증에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지면서 판단력이 흐려져 쓸데없는 똥고집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갑자기 프리드리히 니체가 남긴 희대의 명언을 왜곡해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그는 감기몸살과 치통 따위로 죽는 일은 없을 테니 진통제와 타이레놀 없이 오기로 버텨보기로 마음먹었고 집에 돌아와서는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아 아까 공부하고 있었던 프로그래밍 언어의 함수 코드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아무리 새롭게 공부하는 프로그래밍 언어라고 할지라도 모든 프로그래밍 언어는 비슷한 구조와 큰 흐름은 비슷한 메커니즘으로 동작했기 때문에, 문법만 조금 다를 뿐 잠깐 집중해서 보면 어떤 언어든 이해하고 해석하는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학습능력과 집중력은 지구 아래의 내핵까지 떨어져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평소 한두 번 보면 이해했을 20줄도 안 되는 쉬운 함수 조차도 몇 번이고 읽고 또 읽어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오기가 생겨 계속 한 함수를 이해할 때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또 읽기를 반복했다.

계속되는 작은 치통은 그의 신경을 긁어대고 있었고 극심한 스트레스와 신경 과잉으로 편두통까지 오게 된 마당에 그 함수 코드가 뭐라고 그걸 이해해보겠다고 기를 쓰며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던 한 남자는 1번, 2번, 3번, 4번, 5번… 코드를 반복해서 읽어 내려갔고 그래도 머리에 안 들어오자, 6번째로 문제의 함수를 처음부터 읽기 위해 마우스 커서를 다시 올리고 읽어 내려가려던 그 순간, 속에서부터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하면서 썩은 동아줄과 같이 위태로웠던 그의 이성의 끈이 끊어지고 말았다.


 그는 갑자기 키보드 위에 올려진 자신의 손을 움켜쥐었고 곧바로 키보드를 사정없이 내려 찍기 시작했다.

키보드에 꽂혀있던 키캡들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가 주위로 널브러지기 시작했고 그렇게 5번 정도를 내려 찍고도 분이 안 풀렸는지 내려찍던 키보드를 집어 들고 노트북과 연결된 모니터를 향해 있는 힘껏 던져버렸다. 모니터가 뒤로 넘어가고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려보니 아직 프로그래밍 코드 화면이 떠있는 노트북이 보였다.

저 꼴 보기 싫은 화면을 띄우고 있는 노트북조차 박살 낼 기세로 주먹을 머리 위까지 들어 올리고 내려 찍으려는 순간, 그는 멈칫했다.


 노트북을 내려찍기 직전인 모습으로 얼음이 되어 미동도 하지 않은 채, 하마터면 운명을 다 할 뻔했던 노트북을 한참 동안 응시하고 있는데 그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한 남자는 지금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깨닫기 시작했고 조금씩 이성을 되찾기 시작했다. 사업 실패로 모든 걸 잃고 자신의 꿈을 포기한 채, 공장 노동자의 삶을 시작할 때부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보겠다는 다짐을 하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항상 내 옆을 지키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준 저 죄 없는 노트북을 단순 스스로에게 화가 난다고 해서 부숴버리려고 했던 것이다.


 저 노트북은 항상 그의 곁에서 그가 프로그래머로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하겠다는 결심 했을 때,  공장 기숙사에 있든 섬마을에 있든 어디에 있든 간에 개발 공부할 수 있게 해 주었고, 포트폴리오를 작성할 수 있도록 해주었으며, 자소서를 작성할 수 있도록 해주었고, 개발자로 취업하기 위해 서울 고시원에 들어가 취업준비를 하고 있을 적에도 고시원 월세와 생활비를 해결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노트북으로 문서 작성 아르바이트를 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보면 그가 부숴버리려 했던 저 노트북은 자신을 어둠 속에서 꺼내 준 조력자였고, 빈털터리가 되어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그에게 전부나 다름없었던 물건이었다.


 한 남자는 아무 죄 없는 노트북을 자신의 감정에 사로잡혀 박살 내려고 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고 무엇보다도 30년 넘게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방금 전 모습은 지금까지 보았던 자신의 모습이 아니었다.

자신에게는 폭력성이 전혀 없다고 자부했던 그 였지만 내면에 꼭꼭 숨어있던 폭력성을 처음 보게 된 것이다.

분노로 시작된 감정은 어느새 슬픔으로 바뀌어 가기 시작했고 그는 혼잣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길래 인생이 이렇게 비참해지기만 하는 걸까?.. 열심히 살아왔는데 결국 나에게 남은 건 고통과 비참함 뿐이구나..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정말 신기하게도 큰 슬픔에 잠겨있던 그 순간에 한 남자는 더 이상 치통과 편두통이 사라져 있었다.

아니, 그는 너무 큰 슬픔에 잠겨 그것에 집중한 나머지 치통과 편두통이 있었는지도 잊고 있었을 수도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고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지금까지 꿈을 향해 남보다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현실은 남보다 못한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은 자신의 삶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한 남자는 난장판이 된 책상을 치우지도 않은 채, 매트리스 위로 누웠다. 그러곤 유튜브에 들어가 평소 자신이 즐겨 듣던 flying이라는 제목의 11시간 짜리 명상음악을 재생시켜 놓고 눈을 지그시 감고 마음을 진정시키고 호흡을 가라앉히기 시작했다.


슬픔에 사로잡혀 인지하지 못했지만 그를 괴롭히던 감기몸살과 치통과 편두통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고 내면의 평온을 되찾기 시작했고 깊은 생각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곳엔 고통도, 슬픔도, 비참함도 없었으며 그저 고요하고 깊은 내면의 호수 속 자신만 있을 뿐이었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되었고 내면의 소리를 있는 그대로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나는 지금 인생을 잘 살고 있는 게 맞는 걸까?, 그게 아니라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한 남자는 왜 자신이 현재 고통과 슬픔을 느끼고 있는지 궁금했고, 자신이 지금까지 잘 살아온 것이 맞는지에 대한 답을 알고 싶었다.


그러려면 자신의 인생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지금까지 자신이 걸어온 인생을 돌아보고 그 안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한 남자는 평범했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았던, 현재 자신의 모습을 있게 한 그의 파란만장했던 30년 인생 전체를 회상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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