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하다.
엄마와 함께 할 때마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지만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다는 생각이 든지는 몇 달 되지 않았다. 평소에 글로 남기는 것이 습관이 되질 않아 실천으로까지 이어지지 않고 있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면 다음을 다짐하고 그러다 다시 엄마를 만나면 또 잊어버리고.. 그러다 다시 집에 오면 글로 남기지 못한 것에 후회가 또 생기고 다시 또 그다음 번을 다짐 하기를 몇 번이나 했는지 세기에는 열 손가락이 모자라다. -집은 나의 집을 말한다. 엄마와 나는 별거한 지 22년 째다.-오늘은 그 몇 번인지 모를 후회와 다짐의 결과로 첫 기록을 남기는 날이다.
2020년 8월 7일...
왜 갑자기 엄마와의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글로 남기려고 했는지 나조차도 의아하다. 엄마와 난 참 지금의 관계를 유지하기까지 오래고 오랜 시간이 걸렸다. 너무 늦게 가까워진 것이 조금 속상하지만 더 늦지 않은 것에 감사한 마음을 가져본다.
첫 기록이라 그런지 신경이 참 많이도 쓰여서 이것저것 고민하다 커버 색을 의미 있게 엄마가 좋아하는 색으로 하고 싶어서 색깔을 물어보고 샘플로 색을 보여주었다. 거창한 의미 부여와 다르게 엄마는 무덤덤하게 골랐고 빨리 고르지 못하고 망설이는 엄마 모습에 나는 그 새를 못 참고 엄마한테 빨리 고르다고 다그쳤다. 엄마와 위한 기록이었는데 첫 단추부터 엄마의 선택을 기다려주지 못하고 엄마의 감정선을 따라가지 못하고... 오히려 더디게 선택한다고 내 감정을 우선시하는 지극히 나를 위한 글쓰기가 되어 버렸다. 의미 퇴색... 거기에 나중에 이 기록을 ‘갑작스러운 선물’,’깜찍한, 발칙한 기록’으로 짠~! 하고 보여줄 생각이었는데 색깔 샘플 보여주다가 “엄마와의 일상 첫 번째 기록”이라는 제목을 보여주는 꼴이 되어버렸다. 그 글자를 안 보이게, 못 읽게 하고 싶어서 색깔을 빨리 고르라고 다그치는 나도 바보다. 돋보기 쓰고 보는 엄마가 한글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그 큰 글 제목이 안보이길 바라다니... 모지리...
참 사소한 거 하나지만 난 참 좋은 딸은 못되나 보다. 첫 기록부터 자책하고 왜 이럴까 싶지만 아마 기록을 점점 남길수록 좋지 못한 딸인 나의 민낯을 만나게 될 거 같은 불안감이 생긴다.
마주하다.
9시 뉴스를 배경 음악 삼아 엄마와 마주하고 있다. 엄마는 오래된 수첩을 정리하고 있고, 난 책을 펴놓고 글을 쓰고 있다. 엄마는 수첩의 내용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새로운 수첩으로 옮겨 적고 그러면서 오래된 추억과 기억을 되새기고 있다. 내 친구의 전화번호, 계좌 번호까지 메모가 되어 있다. 내 옛 남자 친구의 전화번호와 그 이름 위로 두줄이 낙인처럼 그어져 있는 것에 대해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이 침묵하는 것은 뭘까?? 푸훗! 알 거 같은데 글로 옮기려니 적당한 문구가 생각나지 않는다.
한쪽에 다 써가는 치약을 손쉽게 짤 수 있는 도구로 옷이 입혀진 치약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원래 저 치약은 할머니가 쓰시던 치약이고 엄마는 새 치약을 꺼낸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엄마의 새 치약은 할머니 전용 욕실로, 할머니의 다 써가는 치약은 저렇게 옷을 입힌 것처럼 둔갑시켜 엄마 전용 욕실로 이사 예정이다. 무심결에 할머니가 더 편하신 쪽으로 맘을 썼는데... 엄마도 당연히 그렇게 하는 걸 서운해 하진 않을 거 같긴 하지만 맘 한구석에는 조금은 섭섭한 마음이 들었을까 봐 조금 걸린다. 이래서 키운 정이 더 무섭다고 하는 건가.
엄마와의 일상을 조금 더 친근하게 기록하고 싶어 존댓말보다는 버릇없이 보이겠지만 편하게 쓰기로 했다. 앞으로 얼마나 자주, 얼마나 오래 이 기록을 남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엄마와 사소한 것부터 일상을 차근차근 남기고 싶다.
지금 엄마가 오래된 수첩을 들여다보며 그때 그 순간을 기억하고 옛 얘기를 꺼내 보듯이 우리가 함께 하는 지금 이 순간도 나중에 이 글을 보면서 같이 꺼내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두 번째 기록을 약속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