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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캘리 Jan 20. 2021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말

말 줄여버린 마음: 빈 말의 의미



서른, 잔치는 끝난 걸까요


저요, 어쩌면 서른이라는 나이에 많은 기점을 세워둔 건지 모르겠어요. 어릴 적 내가 생각한 어른의 시작점이 딱 그즈음이었거든요. 최영미 시인은 서른을 잔치가 끝난 나이라고 했고,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속 삼순이는 심장이 딱딱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울던 노처녀의 나이였어요. 그때 내 나이, 미성년의 끝무렵에 닿았을 때라 짐작할 수조차 없이 멀게만 느껴지더라고요. 돌이켜 보면 현실의 벽에 부딪힐 때 '서른이 되면 적어도 지금보다 더 노련해지겠지'라고 생각하며 억지로 현실 속 문제를 작게 만들었던 적도 있는 것 같아요.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니 그때가 되면 나는 어제보다 덜 실수하는 사람이 되어 그 정도 문제쯤은 가벼이 넘길 수 있는 여유가 생길 거라고 생각했어요.




마음이 말랑말랑 했으면 좋겠어요


저요, 막상 직접 서른이 되어 보고 그 나이를 지나 보니 왜 서른을 잔치가 끝난 나이라고 하는지, 왜 심장이 딱딱해지기를 바라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마치 지난 시절이 어제처럼 가깝게 느껴져서 굳이 내가 더 자란 것도, 잘한 것도 없는 것 같거든요. 나는 그냥 이적의 노래 가사처럼 고된 하루살이로 생을 살아내는 중이에요. 문득 지체 없이 흐르는 시간의 등에 떠밀려 '어른'이기를 강요당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육체적인 퇴화를 정신적으로 승화시키는 과정이 어른이 되어가는 일 같기도 해요. 각자 얻은 삶의 지혜가 나에게는 경험이 되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격언이 되기도 하는 뭐 그런 거 말이에요.




내일도, 아무것도 되지 않으면 어쩌죠


저요, 내일은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지 모르겠어요. 사실 누구나 다 마찬가지겠지만, 내일도 모레도 내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일까 봐 문득 무서울 때가 있어요. 그냥 먹고 자고 일하고 웃고 울고 그러다 하루아침에 나도 모르는 시한부의 인생을 끝낼 날이 온다면, 그때 내가 이생에 남기고 갔다고 할 만한 게 무언가 있기는 한 걸까. 가만 생각해 보니 살면서 지금까지 딱히 남겨놓은 것들이 없더라고요.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내가 살았다는 것 말고는. 그렇게 생각하니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지 궁금해지기도 했어요. 나도 나를 모르는 순간을 종종 마주하는데,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나의 모습도 제각각이라면 과연 진짜 나를 기억해주는 건 누구일까. 뭐 이런 쓸모없는 생각까지 하게 되더라고요.




다만,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할래요


저요, 아무래도 무턱대고 멋진 꿈만 꿔서 이렇게 뒤늦게 헤매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서른을 기점으로 세워두었던 그 모든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기로 했어요. 고민을 길게 한다고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또 고민을 안 한다고 해서 반드시 나쁜 결과가 오는 것도 아니더라고요. 그냥 생각하는 일을 나중으로 미루고 오늘을 살기로 결심했어요. 어제는 우울했으니 오늘은 어제보다 좀 더 웃어보자, 오늘은 조금 웃었으니 내일은 더 행복할 수 있는지 보자. 뭐 이런 식으로 그냥 주어진 하루살이에 집중하기로 했어요. 삼순이처럼 심장이 딱딱해지지도 못했고, 최영미 시인이 말하는 것처럼 잔치도 끝난 서른 이후의 보통의 삶이지만요. 그래도 내 전체 생 중에서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니까, 내게 주어진 오늘을 행복하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뭐든 쓰고 싶은 마음에 이 글을 쓰고 있어요. 지금은 내 일상에 쉼표가 되어주는 일이 이 것이거든요. 이제껏 살면서 세상에 남긴 것은 없어도, 오늘 이 글을 썼다는 흔적만은 남겠죠.

저요. 비록 내일 일은 잘 몰라도, 오늘은 이게 맞는 거 같아요.






멀어지다

/ 담쟁이캘리




흩날리는 바람에도
끄떡없던 날들이 힘없이
하강해 초라하게 바스러졌다



회자정리라고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야
아무리 당연한 수순이라지만
흘려보낸 마음의 청춘을
고작 네 글자로 정리할 수 있나



언제고 끓어 넘치는 마음으로
무한정 반복될 거라 착각한
청춘의 사계절을 보내는 동안



다 잘 될 거라며
무턱대고 욱여넣은 꽁밥으로
눈치 없이 등치만 키운 마음인데
고작 네 글자 안에
내 마음 접어 넣을 수 있나



바람 잘 날 없는 생이라도
쭉 뻗은 가지에 바짝 붙어서
버틴다면 매일이 단풍일 줄 알았건만



쉴 틈 없이 부는 잰 바람에
하릴없이 떨어지는 낙엽일 뿐
제 아무리 슬퍼도 어찌할 도리 없네



청춘과 어제 만났으니
헤어질 오늘은 당연한 이치



흩날리던 바람에
철없던 날들이 힘없이
하강해 초라하게 바스러진대도



마음만은 결코
청춘과 떨어진 적 없으니
저무는 석양 앞에서도 멀어진 적 없네



다가올 내일을 위해
오늘과 잠시, 멀어지는 것뿐
단지 그뿐이네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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