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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캘리 Mar 30. 2022

방구석 위인전

고요히 쌓이는 것들에 대하여






글을 쓰고 싶어서 펜을 들었는데 결국 아무것도 채우지 못했다. 쓰는 자리에 앉기 전에는 하고 싶은 말들이 샘솟듯 떠올랐는데, 정작 자리에 앉으니 하려던 모든 말들이 먼지처럼 내려앉는다.



종이 여백을 채우려니 너무 자잘하다는 것이 이유고, 아랑곳 않고 쓰자니 딱히 눈에 띄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 꼭 먼지를 닮았다. 마음속 꺼내지 못한 말들은 늘 기척도 소리도 없이 와서 잠자코 쌓여, 손으로 쓸어보거나 가려진 어느 곳을 들춰봐야 보이는 것이 꼭 먼지 같다.



  티끌처럼 작을 때는 아무것도 못 보다가 켜켜이 쌓여 '자리'를 이룬 뒤에야, 그 흔적을 발견하고 먼지를 자각하는 모양은 글을 쓰는 일과 닮았다. 주의 깊게 보지 않고는 볼 수 없는 것. 민감하지 않으면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것. 멈추지 않으면 쉬이 지나쳐버리고 마는 것.



하려던 말이 '자리'를 이루지 못해, 쓰려던 글이 앉을자리가 없어서 무엇도 앉히기 어려울듯하다. 잠자코 마음속 쌓이기 시작한 먼지가 쌓일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마음 먼지

/ 담쟁이캘리




밤새 기척도 없이

하이얀 것이 소복이 쌓였다



기척도 없이 고요히

나린 것이 어둔 마음 위에

층층이 쌓여 눈길 머무는 곳마다



아른아른, 저 하이얀 것이

자꾸 눈에 밟힌다



저기 저 하이얀 것이

차곡차곡 쌓이길 기다리다



먼지는 꾸준히 움직인 삶의

가장 자잘한 흔적이니



훗날 훔치게 될 먼지는

어떤 모양일지 고대하게 된다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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