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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캘리 Nov 26. 2022

알면 사랑한다

나는 나를 얼마나 알고 있나


  열일곱, 학창 시절 우리 반 교훈은 '알면 사랑한다'였다. 당시 담임 선생님은 학생 주임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솔선수범하여 타의 모범이 되는 것과 원만한 교우관계를 강조했다. 특히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마음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살면서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들은 모두 상대방을 알지 못해서 생긴 오해에서 시작되는 것이라며, 누구든지 그 대상을 온전히 알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스물이라는 나이에 조금 더 가까워졌다는 생각으로 마냥 설레던 열일곱에 마주한 교훈의 첫인상은 황홀 그 자체였다. 마음을 다해 알고자 한다면 모르고 지나칠 존재가 없을 듯했고 저 말대로라면 세상에 사랑하지 않을 사람이 없어 보였다. 그런 마음이라면 모두와 친구가 되고 사랑하게 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기억하기로  이때만큼 친구를 사귀기 어려운 시절이 또 없었다. 교훈처럼 사랑이 넘칠 거라고 생각한 반 분위기는 정반대로 흘렀다.





  문제는 담임 선생님이 나를 교훈의 본보기로 삼으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칠삭둥이 미숙아로 태어나 뇌성마비를 앓은 탓에 선천적으로 다리가 불편했던 것이 마음이 쓰였던 것일까. 남들과 다르게 거동이 불편한 나를 모두가 돌봐야 한다는 생각에 '반드시 알고 사랑해야 할 대상'으로 삼은 듯했다. 그것도 당사자인 나만 모르게, 반 아이들을 모아 두고 사이좋게 지내도록 훈육했다. 정작 당사자인 나는 이 사실을 학년 말이 돼서야 알았다.



 나만 모르는 비밀이 드러났던 그날의 기억은 아주 생생하다. 야간 자율 학습을 마치고 집에 갈 채비를 하느라 분주한 종례시간, 나는 고개를 숙여 서랍에 넣어둔 책을 가방에 옮겨 담고 있었다. 담임은 그런 나를 미처 발견하지 못했는지 '알면 사랑한다'는 교훈을 힘주어 말하나에 대하여 언급하기 시작했다. 불편한 몸으로 학교생활을 하는 것이 얼마나 안쓰러우냐며 너희는 같은 반 친구니까 당연히 친절을 베풀어야 한다며 가방도 들어주고 부축해주라시켰다. 또 아무리 친도 내가 불편할 수 있는 장난은 삼가도록 주의를 주기도 했다.



  당최 영문을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듣는 내내 어리둥절했다. 이런 훈계는 집에서도 받아본 적 없었다. 엄마가 말씀하시길 '너는 다리가 조금 불편하고 느릴 뿐, 두 발로 걸을 수 있으니 충분히 행복한 사람'이라고 했다. 행여나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는다면 그것은 자기와 다른 모습이 낯설어서라고 했다. 그들도 머리가 크고 어른이 되면 모두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이니 그들에게 네 모습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시간을 주라고 덧붙였다.



  그래서 아이들이 온전히 나를 이해할 때까지 그들이 먼저 배려해주기를 바라지 말라고 가르쳤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할 수 있도록 자립심을 키워야 한다고 했다. 대신 정말 힘들 때에는 선생님에게 직접 도움을 청하도록 훈육했다. 정작 내가 도움을 요청한 적도 없는 일이건만 반 아이들 모아 두고 훈육하는 낯선 광경에 마치 일곱 살 어린아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놀란 내가 고개를 들기 무섭게 뒤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은 당사자 있는 데서 말씀하시네요.
누구는 알아서 편의를 봐주는 사람도 있고 좋겠네."


그 한마디에 지금껏 내가 없을 때 어떤 말들이 오갔을지 더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알면 사랑한다'는 교훈이 훈화가 아닌 훈계로 쓰일 줄이야. 상대방을 이해하고 알기 위해 노력하면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능동적인 의미로 받아들였건만. 여러 날 동안 반 아이들에게 나를 알고 사랑하도록 주입식 교육을 했다고 생각하니 두 눈이 저절로 질끈 감겼다.



 나도 거울 속 내가
싫었던 날이 무수히 많다.



  나조차도 내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대부분인데, 이런 나를 사랑하도록 주입했다니. 그런 줄도 모르고 쉽사리 곁을 내주지 않는 아이들이 야속하다고 생각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선을 둔 듯한 적대적인 분위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나에게 묻지도 않고 이런 훈육을 감행한 선생님을  향해 서운한 감정이 솟구쳤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도 한두 번이지. 차라리 나를 비롯한 반 아이들에게 스스로 미워하고 사랑할 자유를 주는 편이 나았다. 그랬다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부대끼며 어울렸을 일이었다.



  내가 남들과 다르게 약한 신체를 가졌다고 해서 반드시 사랑하거나 친절을 베풀어야 할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비단 핸디캡이 아니라도 사람들의 생김새는 모두 다르고 누구나 약점을 가지고 있다. 다만 내 약점은 겉으로 드러나 감출 수 없다는 사실만 다를 뿐. 숨길 수 없어서 불리하게 작용할 때도 있지만, 오히려 약점이 겉으로 드러난다는 이유로 지금처럼 알아서 배려받을 때도 있다는 사실이 누군가에게는 질투할만한 명분이 되기도 한다.



  처음 내가 '알면 사랑한다'는 교훈을 듣고 황홀감을 느낀 이유는 저 말이 자기 마음속에 있는 사랑을 담는 그릇의 크기를 넓혀가는 과정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서 자기 마음속에 주어진 사랑의 그릇이 있는데, 주어진 그릇의 크기만큼 사랑하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마음을 쓰는 정도에 따라 그 그릇의 크기가 무궁무진해지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그런데 마음을 내기도 전에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도록 무작정 그릇부터 채운 꼴이니 그 그릇 안에 온전히 사랑이 담길 리 만무했다. 반 아이들과 멀어진 사이를 좁히기도 전에 새 학년이 되었고 모두 뿔뿔이 흩어져 친구가 되지 못한 채 헤어졌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적정선을 넘긴 것들은 그릇에 담기지 못하고 흘러넘치게 마련이다. 결국 넘치는 것은 모자라는 것보다 못하다는 뼈저린 교훈을 깨친 추억이 된 셈이다.          




과연 나는 상대를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후 여러 해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알면 사랑한다'는 교훈을 떠올리고는 한다. 어릴 때는 마음껏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기회마저 잃었슬픔을 이유로 기억했다면 이제는 누군가에게 서운한 감정이 들거나 어떠한 오해가 생겨 이상신호가 감지될 때. 나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그때의 교훈을 곱씹는다. 담임선생님의 선의로 시작된 훈계가 되려 반 아이들에게 악의를 품게 만들었듯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체하는 마음이 상대의 뜻을 앞지르지 않았는지, 과거의 경험을 거울삼아 찬찬히 짚어다.



  역설적이게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생기는 오해는 대부분 '내 생각이 맞다'라고 단정 지으면서부터 깊어진다. 단편만 보고 그것이 전부라고 착각할 때. 상대와 대화하지 않고 대충 넘겨짚는 것이 늘어날수록 사이는 걷잡을 수 없이 멀어진다. 내 생각의 옳고 그름을 가늠하기 위해서는 꼭 얼마의 시간을 두고 살펴봐야 하는데, 그 순간을 빨리 감기 하듯 넘기거나 신중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온전히 알고 사랑할 수 없다.



  '알면 사랑한다'는 말은 고작 두 음절, 여섯 글자지만 그 행간에 담긴 의미는 헤아릴 수 없이 깊다. 삶에서 마주하는 대부분의 갈등은 '상대방을 잘 안다'라고 착각하면서부터 더욱 난무한다는 점에서 누군가를 온전히 알고 이해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모순적이지만 바로 그런 어려움 때문에 그 누구라도 완전히 알면 사랑한다고 한 것이 아닐까.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상대를 수없이 떠올리고 그의 입장과 의중을 헤아리는 시간을 들인다는 것은 그를 알기 위해 나의 시간을 내야 하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나와 다른 누구를 잘 알고 너그러이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디로 뻗칠지 모르는 낯선 감정들까지 잘 추스르고 다독이는 과정  모두를 기꺼이 감내해야 하는 일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 비로소 완전히 알게 된 상대라면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돌아보니 알면 사랑한다는 말은 상대를 바로 알기 위해 나의 시간과 마음을 기꺼이 쏟는 일이었다. 지금 당신 앞에 이해해야 할 대상이 있다면 그를 위해 내어 줄 마음과 시간의 값부터 헤아려 보자.



시간과 마음 모두를 내어주고
알면, 사랑할 수밖에 없다.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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