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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캘리 Oct 18. 2023

쓸 만한 행복

넘어지지 않게 중심을 잡는다는 것


   처음부터 작가를 꿈꾼 것은 아니었다. 글쓰기를 즐겼지만 그 시작은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도피였고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아킬레스건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방황할 때마다 살고자 글을 썼다. 일평생 부족하거나 모자란 채로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대한 반발심으로 글 속에 숨어, 결핍을 타고난 육체를 외면하는 것으로 숨을 텄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남들과 같을 수 없고 타고난 몸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에 마음도 몸과 함께 절었다. 외발자전거를 탄 듯 불안정한 마음은 자주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온몸 곳곳 깨지고 부러지는 상처가 나고 아물기를 반복하면서 제대로 일어나는 법을 익혔고, 남들에게는 있지만 내게는 없는 부족한 삶을 살면서 충만함의 행복을 깨쳤다.      



  역설적이지만 스스로 부족하게 타고난 숙명을 받아들이면서 진짜 작가를 꿈꾸기 시작했다. 지금은 이것이 내 약점일지 몰라도 언젠가는 특별한 쓸모가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글을 썼다. 불안정하게 흔들리던 마음은 여전했지만, 기록하는 일을 멈추지 않고 지속하는 뚝심으로 서서히 중심을 잡아갔다.      


  마음이 제자리를 찾으면서 어지러이 빙빙 도는 것 같던 풍경들이 바로 보였다. 확실한 결핍이자 불행으로 읽히던 아킬레스건조차 선물로 느껴졌다. 내 글 대부분은 일상 속 ‘발견’에서 왔기 때문이었다. 핸디캡으로 타고난 느린 걸음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남들은 10컷 남짓하게 보는 풍경을, 50컷 정도로 섬세히 담아낼 수 있는 특별한 렌즈 역할을 했다.      



  쓰라린 상처의 기억부터 사소해서 귀한 줄 몰랐던 행복의 순간까지 빈 문서 위에 공들여 앉히며 중심을 잃고 정신없이 흔들리던 내 삶도 쓸 만한 행복이 있음을 알았다. 고구마 몇 개는 집어삼킨 듯이 풀리는 것 하나 없이 답답하고 꽉 막힌 기억도 잘 소화시키고 난 뒤에는 그저 다 같은 거름으로 변했다. 그 숱한 우울한 날들이 지금 딛고 선 오늘을 별스럽게 비췄다.


   무수히 흔들려도 마음이 중심을 잃지 않으면 그 너머로 무궁무진한 것들을 볼 수 있음을 깨달은 뒤로는 글 쓰는 자리에 앉기 전에 먼저 마음을 들여다본다. 혹 미처 발견하지 못한 사각지대 없는지, 마음속을 샅샅이 살피며 빈 문서에 앉힐 말들을 고른다. 작가의 글은 결코 삶을 비켜 갈 수 없으므로. 우선 잘 살아내는 것으로 글을 쓰기 위한 준비운동을 한다.     



  더불어 몸은 더 이상 아킬레스건을 벗어날 수 없는 족쇄가 아닌, 나의 영혼이 깃드는 집이라는 것을 깨닫고  부침 없이 건강한 생각과 마음으로 글을 쓰며 오래도록 작가를 꿈꾸기 위해 필라테스도 시작했다. 마음과 함께 몸의 중심을 잡는 힘을 기르면서, 그동안 핸디캡을 이유로 당연히 할 수 없다고 제한했던 몸도 근육을 키워 꿈꿀 자유를 선물하기 위함이다.      


  마음의 요양을 핑계로 무턱대고 떠난 곳에서 첩첩산중 근육처럼 굴곡진 능선을 보고 결심했다. 저 산이 오랜 세월 변화무쌍한 날씨에도 사시사철 제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근육처럼 단단히 다져진 굴곡 덕분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나 역시 사는 동안 마음과 몸의 근육을 키우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첩첩이 쌓인 산처럼  글 쓰는 제자리를 지키는 동안 자연히 내 쓸 만한 행복들이 첩첩이 쌓여 갈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일평생 길 잃은 아이처럼 나의 쓸모를 찾아 바깥으로 돌았는데, 이제 보니 그것은 일상 곳곳에 원석으로 놓여 있었다. 마음에 따라 다른 색으로 보이는. 스스로 가장 아름다운 각도를 찾아, 하등 쓸모 없다는 마음을 완전히 걷어내야 빛나는 보석이 되듯이.


  결국 끝없이 흔들려도 너끈한 몸과 마음의 근육을 길러야, 일상 속 쓸만 한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



스스로 중심을 잡아야
왜곡없이 바로 볼 수 있으므로.






스스로, 너에게

/ 담쟁이캘리




하루에도 몇 번씩 너를 그린 적 있다
때때로 너는 각기 다른 모습으로
내 안을 가득 채웠다



마음속에 자리한 너는
생각만으로 황홀한 일탈 같아서
너를 그리다 자주 꿈을 꿨고
발 딛고 선 현실의 무게를 견디며



너와 함께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어진 날도 많았다



허나 너에게 나는 언제나
떠난 적 없는, 말뿐인 사람이었다



종종걸음으로 나를 찾아와
같이 가자 채근하는 너를 두고
갖은 핑계를 붙여 미뤄두었다



마음은 수없이 너를 따랐지만
선 자리에서 쉬이 발을 뗄 수 없어
잠잠히 되돌려 보낸 너를 후회했다



불쑥 찾아와 힘없이 꺼지는
그 뒷모습이 매일 밤 내 눈 안에서
저물지 않아, 너에게 말했다



떠나자



머릿속에서 수없이 되감아져
밤새 가시지 않는 말들과
어깨를 짓누르는 잦은 불면에서 벗어나
발길 닿는 대로, 우리 맘껏 흘러가자



마음으로는 이미 흘렀으나
발걸음 떼지 못해 못내 아쉽던
그곳으로 지금, 떠나자




* 스스로, 너에게(自, you)
 : 자유를 의인화하여 스스로에게 하는 말로 지은 시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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