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오류를 덜어내고 정답만 남긴다는 것.
어릴 적 내 별명은 '보고 또 보고'였다. 텔레비전 앞에 앉아 드라마 대사를 달달 외울 때까지 몇 번이고 보고 또 보기를 반복한다고 해서 아빠가 지어준 별명이었다. 배우라는 직업이 있는 줄도 모르던 내 눈에 드라마는 텔레비전 안과 밖을 자유자재로 드나드는 사람들끼리 모여 사는 세상 같았다. 드라마에 유난히 자주 나오는 배우들은 쌍둥이거나, 시공간을 넘나드는 능력이 있는 거라고 믿었다. 정해진 시간, 정해진 채널에서 나오는 것 역시 그 세계와 교신하는 시간이 따로 있기 때문이라고 이해했다.
병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려면 시청을 원하는 시간만큼 동전을 넣어야 했다. 비용을 지불해야만 볼 수 있었던 탓에,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기 위해 일정의 대가를 치르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청할 때의 마음가짐도 자못 경건했다. 전망대에서 있는 망원경으로 저 너머의 세상을 보듯이, 화면 속 이야기를 가만히 보고 들었다. 작가가 지어낸 이야기인 줄은 전혀 몰랐으니 아빠가 지어준 별명대로 '보고 또 보고' 하는 일이 지루할 리 없었다. 그렇게 자연스레 드라마 마니아가 된 어느 날, 어떤 대사 하나가 불쑥 마음을 두드렸다.
네가 힘든 건
네가 너무 무거워서 그래.
의미를 알아차리기도 전에 말소리가 마음을 울렸다. 마음에 먼저 와닿은 그 소리가 자꾸 말을 거는 듯했다. 마음에 깊은 발자국을 새긴 저 말은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았다. 남들은 적당히 무거운가. 그렇다면 그 무게를 덜어내는 방법은 무엇일까. 찰나에 떠오른 오만가지 생각이 뒤엉켜 풀지 못한 채로 남았다. 그리고 요즘, 내내 손대지 못했던 매듭을 뒤늦게 풀어가는 기분이다.
나는 스스로를 마법에 걸린 공주라고 생각했다. 심술궂은 마녀 같은 어떤 존재의 농간으로 뇌성마비라는 아킬레스건이 생겨 나를 괴롭게 만든 거라고 말이다. 여느 드라마에 나오는 신데렐라 스토리같이 나 또한 누군가 삶을 구원해 줄 거라고 믿었다. 근거도 없는, 그릇된 믿음은 끝없는 불평불만에 휩싸이게 했다. 익명의 존재로 인해 내 몸이 손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이 감정은 툭하면 나를 긴장하게 했다. 그 누구에게도 진실로 상냥할 수 없었다. 마법이 풀리기를 바라며 구원을 기다리는 동안 마음은 완전히 몸속에 갇혀 지냈다.
오로지 몸만 지각했기 때문에 숱한 오류를 범했다. 아킬레스건이 있는 외형에 치중하면 그 누구와 견주어도 오답투성일 수밖에 없었다. 나를 몸으로만 본다면,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은 정답일 수 없었고 그것을 지켜보는 마음은 언제나 지옥이었다. 그러니 어찌 몸과 마음이 무겁지 않을 수 있으랴. 불현듯 내 마음을 두드린 드라마 대사대로 '내가 힘든 것은 내가 너무 무거워서'였다. 기약 없는 구원을 바라던 일이 오히려 나의 삶을 무겁게 한 셈이다.
평생 구원을 기다리는 데 온 시간을 썼지만 아무 소득이 없었다. 되려 구해줄 사람을 기다리는 마음은 나를 연약하고 의존적인 사람으로 만들었다. 바람이 이는 대로 이리저리 흔들리는 갈대처럼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엉거주춤한 마음이 안쓰러웠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데, 나를 돕기는커녕 증오하는 일에 갖은 에너지를 쏟았던 날을 돌아보았다. 아무 말 없는 세상을 향해 원성을 퍼붓던 시간들을 되짚어보다, 출구 없는 불행을 직접 끝내야겠다는 생각에 세상을 용서하기로 결정했다.
나에게 왜 이러한 시련을 주었냐는 화를 그쳤고 스스로 손해 보았다 생각하는 그릇된 믿음으로, 피해의식에 젖은 마음부터 볕에 널어 말렸다. 사는 내내 그늘진 반지하 같던 마음에, 처음 선물한 환한 빛이었다. 울음을 머금은 듯 평생 눅눅하던 마음이 따스한 볕 아래서 보송하게 말랐다. 물기 없이 보드라운 마음을 마주하고서 알았다. 평생 몸과 마음의 지옥을 끝낼 구원을 찾아 헤맸는데 이제와 보니 오랜 시간 그 빛을 찾아다닌 이유는 다만, 내 눈을 가리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세상을 용서하고 나니
그것은 전과 다르게 보였다.
날씨가 흐리고 개듯, 세상 일에도 기후변화가 있고 그저 드디어 날이 갠 줄로만 알았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빛을 마주하고 보니 이것 하나는 확실히 깨달았다. 결국 모든 생각과 감정은 마음에서 태어난다는 것. 미뤘던 용서 과제를 해결하자, 몸이 전부라고 지각하던 내 눈에 마음의 집이 보였다. 그곳에 볕이 잘 들어야 생각과 감정에 곰팡이가 슬지 않고 건강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동안 몸을 전 재산으로 여겨 마치 집을 도둑맞은 듯 몸과 마음이 천근만근이었음을 알았다.
나의 시선으로 무엇을 볼 것인지 그 선택권은 나에게 있었다. 마음에 증오가 자리하고 있던 지난 시간 동안 마치 세상이 죽음으로 기운 듯 두려움에 떨었다. 몸이 성한 정도에 따라 가치를 매기는 이들에게 쫓기기라도 하듯 익명의 손아귀에 붙잡힐까, 줄곧 타고난 몸에 매여 살았다. 마음을 어둠으로부터 옮겨 볕이 잘 드는 곳에 두자 마음의 지옥에서 벗어났다. 눈을 가리고 있던 홑겹의 막이 걷히듯 겉모습이 중요하다고 속이는 소리로부터 벗어나 내면의 평화를 찾았다.
스스로를 오류라고 정의하던 지난날들과 작별했고 타고난 몸의 모양이 어떠하든지, 건강한 마음에서 방사되는 빛이 나의 생각을 안전한 곳으로 이끈다는 믿음이 생겼다. 남들과 다르게 생긴 몸의 오류를 벗지 못하면 결코 가벼울 수 없다는 그릇된 생각에서 자유로워지고 나니, 더 이상 마음이 무겁지 않다. 기나긴 방황 끝에 바르게 지각할 수 있게 된 지금은 자비심과 사랑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힘도 생겼다. 세상에 대하여 진실로 상냥할 수 있는, 전에 없던 마음이 솟으니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자유를 만끽하는 듯했다.
나만 아는, 혼자만의 숙제를 어떻게 풀었는지 기록하는 이유는 지난 시절 드라마 대사가 불현듯 내 마음을 두드렸듯, 내 글도 누군가의 마음에 가 닿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별안간 마음을 울린 대사가, 기어이 다른 마음의 길을 낼 수 있도록 도왔으니 받은 대로 흘려보내기 위함이다. 내 인생이 그랬듯, 당신도 나처럼 꽁꽁 감춰둔 용서 과제 하나를 풀고 나면, 분명 당신은 그것을 다르게 보게 될 거라고 말이다. 정답 없는 오류인 줄 알았던 나에게도 정답으로 남길 만한 건재한 마음이 있었으니 부디, 당신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게 되기를.
오류를 덜어내고 정답만 남겨
당신도 즐거이 가벼워질 수 있기를.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