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면에 예기치 못한 행복이 있다
몇 년 전 이맘때 빙판길에 넘어져 크게 다친 적 있다. 불행히도 계단 위로 넘어져 갈비뼈에 금이 갔다. 통증은 이루 말할 수 없어 숨조차 쉬기 힘들었는데, 정형외과 진료를 보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종종 의사들이 뼈에 금이 갔다는 표현을 쓰지만 실상은 모두 부러진 것이라는 사실이다. 뼈가 본래 자리에서 어긋나지 않게 부러졌을 때 금이 갔다고 하는 것일 뿐 금이 갔다고 덜 아플 것도, 부러졌다고 더 아플 것도 없이 아픈 것은 똑같으니 그저 아파하는 게 답이라고 말했다.
사람은 신기한 구석이 있어서 어떤 불행을 겪고 난 후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눌 때 지나온 불행을 경쟁하듯 말할 때가 있다. 당신은 그래도 나보다 낫다며 자기 고통을 훈장처럼 말하고는 하는데, 누가 더 아픈지 재거나 따질 것 없이 그냥 아픈 건 다 똑같다는 말에 뜻밖에 위로를 받았다.
의사 선생님은 그래도 갈비뼈가 다른 곳보다 더 아픈 건 맞다고 했다. 여느 뼈들과 다르게 석고 붕대를 감을 수도 없으니 정 힘들면 진통제를 처방해 주겠다고 말했다. 그 외에는 어긋난 뼈가 붙을 때까지 다만 고통을 견딜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자칫 무심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순리란다.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뼈가 알아서 붙는다니 얼마나 대견하냐며, 대신 크게 숨 쉬거나 웃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했다.
고통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숨을 참는 것인데, 그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뼈가 붙을 때까지 고통이 덜하기를 빈다고 했다. 무려 전치 3주의 진단을 받고서, 갈비뼈가 이리 쉽게 부러질지 몰랐다며 헛웃음만 지었다. 그때, 그가 나를 바라보며 멈췄던 말을 이었다.
갈비뼈가 부드러운 이유는
심장이 뛰어야 하기 때문이에요.
그는 쉬지 않고 뛰는 심장을 보호하기 위해 유연한 갈비뼈들이 그 주위를 감싸고 있는 거라고 했다. 우리가 숨을 쉬어서 갈비뼈가 움직이는 게 아니라 갈비뼈가 움직이기 때문에 숨 쉴 수 있는 거라고 말이다. 그의 말이 아니었다면 연약한 뼈를 탓하며 그대로 진료실을 나섰을 것이 분명했다.
그 부드럽고 연약한 것이 무엇을 위하여 약하게 타고난 줄도 모르고, 무턱대고 고통을 마주할 뻔했다. 갈비뼈가 부드러운 것은 약점이 아니라, 그것이 지켜야 할 것을 온전히 지켜내기에 딱 알맞은 성질일 뿐이었다.
연약하고 부드러운 것으로 소중한 것을 지킨다니. 과연 이보다 더 매력적인 역설이 또 있으랴. 하필 계단 위로 넘어져 불운을 만났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부지불식간에 감사로 변했다. 다친 몸을 고치러 가서 깨달음을 얻었으니 이 정도 수업료면 아주 저렴하다, 싶었다.
그동안 내 삶에 깃든 모든 불행은 육체의 연약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믿었다. 남들처럼 바로 걷지 못하는 엉거주춤한 걸음걸이를 닮아, 삶도 기우뚱하게 기울어 불행으로 가 닿는 줄 알았다. 오래도록 몸을 사랑하지 못했고 적과 동침하듯 습관처럼 칼을 겨눴다. 약하게 타고난 것을, 용서받지 못할 잘못 대하듯 탓하며 살았다. 타고난 생김새를 잘못이라고 여겼으니 마음이 자유로울 리 만무했다.
연약하고 부드러운 것으로, 소중한 것을 지킨다는 말 한마디에 몸을 대하는 시선이 변하는 듯했다. 그 순간 비로소 알았다. 육체는 단순히 타고난 생김새가 아니라 마음이 꺼내 입는 옷이라는 것을. 마음이 남루할 때는 한껏 치장해도 누추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고 반대로 마음이 풍족할 때는 어떤 옷을 입어도 개의치 않으니, 몸은 마음 따라 입는 옷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여태껏 내가 마주한 불행은 전부 단면이었다. 무던히 견뎌온 불행의 시간을 맷집 삼아 살아가는 중인 줄만 알았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내게 온 불행은 모두 양면이었다. 뒷면을 들춰볼 여유가 없었을 뿐 완벽한 불행은 없었다. 섣부른 증오심이 눈을 가려, 연약한 것은 잘못이라는 뒤집힌 지각을 초래했을 뿐 불행 뒷면에는 저마다의 행복이 감춰져 있었다.
어른 손바닥만 한 작은 체구의 칠삭둥이로 태어나 축하 대신 살 가망이 없다는 말을 들어야 했고, 탄생과 동시에 달갑지 않은 핸디캡을 얻었다. 남들과 다른 모습에 존재 자체가 틀린 그림으로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로 인해 단 한 번도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은 내 사람들과 함께하며 결핍이 있어도 진정 감사할 수 있는 마음 밭이 생겼다. 타고난 육체의 약함은 삶의 밑거름이 되어 지난 시간들이 많은 이들을 위로하는 글로 치환되는 기적을 맛보았으니 의사 선생님말처럼 타고난 약함이 나의 마음 밭을 지켜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느닷없는 사고처럼 찾아온 불행 뒷면에 감춰진 행복을 발견하고 난 뒤에야, 불행의 단면만 보고 좌절했던 시간들이 바로 보였다. 이전에는 탄생부터 잘못 끼운 단추가 온 일상을 쥐고 흔드는 듯했고, 속도 모르고 아름답기만 한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이토록 힘든 지옥에 내던져 두고 어찌 그리도 맑을 수 있는지 마음에 화만 솟구쳤다. 복불복처럼 운 나쁘게 불행을 맞닥뜨렸다고 생각했는데, 되려 약하게 타고난 육체가 건강한 마음을 지켜내도록 도왔다고 생각하니 더 이상 탓할 것이 없었다.
갈비뼈가 생명을 주관하는 심장을 지키려 부드럽고 약하게 태어났듯이, 타고난 육체의 약함이 마음에 건강한 숨을 불어넣었다고 생각하니 속 안에 가득하던 화가 자취를 감췄다. 타고난 연약함으로 금이 간 뼈가 고통을 감내하며 자가치유 하듯이, 연약한 육체로 인해 균열이 일고 소화불량처럼 답답했던 나의 일상이 알아서 제자리를 찾아가는 모양을 보니 생애 완벽한 불행은 없었다. 마주친 당장은 불행으로 보일지라도 온전히 소화시키고 난 후에는 값진 자양분이 되어 새 숨을 불어넣는 예기치 않은 행복이, 불행의 뒷면에 있었다.
부드럽고 연약한 것으로 소중한 것을 지킨다는 그 매력적인 역설이 완벽하게 이해되는 순간, 덮어놓고 불행이라 단정 지었던 과거의 뒷면이 보였다. 설사 수많은 일들이 불행의 행태로 오더라도, 그것을 맞이하는 내 마음이 건강할 때는 삶의 해석도 달라진다. 불행이라 쓰고 행복이라고 읽을 수 있는 온전한 순간을 만나면. 마음에 건강한 숨을 불어넣어 이전에 없던 생기로 가득 찬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또한 불행의 뒷면을 보게 된다면 이내 그 마음이 생기로 가득 차게 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육체의 눈은 아는 만큼 보지만
마음의 눈은 믿는 만큼 보게 될 테니.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 하는 글쟁이 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