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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캘리 Feb 24. 2024

길치는 돌아가는 법을 모른다

하물며 불행 앞에서도


   까막눈이던 마음이 눈을 뜨고 나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더 이상 나의 장애를 족쇄로 여기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사는 동안 길을 잃고 헤맬 때마다 내 선택은 무조건 직진이었다. 어찌할 바를 몰라도 잠자코 서 있을 시간이 없었다. 돌아보면 이제껏 단 한 번도 온전히, 편안하게 멈춰 쉬어 본 적 없었다. 아마도 그것은 생애 처음 길을 잃은 순간이 남들처럼 평탄하지 못했던 탄생으로 인해 생긴 장애 때문이리라.



  나의 첫 방황은 열두 살 무렵 아빠가 찍은 홈 비디오 속의 나를 마주하면서 시작됐다. 남들보다 이르게 태어나 난산을 겪고 출생신고도 하지 못한 채 한 달간 인큐베이터에 들어가 있다가 나왔을 때도, 어느 날부터 갑자기 까치발로 걸음을 걸어 네다섯 살 즈음 아킬레스건에 뭉친 근육을 푸는 수술을 했을 때도, 온종일 병실에 갇혀 집에도 못 가고 휠체어를 타거나, 엄마 등 위에 업히지 않고는 움직이지 못하는 신세였을 때조차 나에게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나는 그저 위험천만한 탄생 과정에서 살 가망이 없다며 안락사를 권했음에도 무사히 태어났고 혹여나 잘못될까 출생신고도 미루고 인큐베이터에 들어간 지 한 달 만에 상태가 호전되고, 의사 선생님은 평생 걷지 못할 거라고 했지만 기나긴 재활훈련 끝에 땅에 발을 딛고 섰을 때. 시간의 힘을 맹신했다. 비록 탄생만 빠르고 다른 것은 느리지만 시간이 흐르면 몸도 제 구실을 잘하게 될 거라고 믿었다.





  매일 아침 엄마가 나를 앉혀두고 너는 다리가 조금 불편할 뿐이니 아이들이 놀리는 말을 마음에 담지 말라고 당부할 때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했다. 그들도 머리가 크고 어른이 되면 다 이해할 거라는 말에, 나의 장애는 어른이 되면 자연히 벗게 될 허물 같은 것으로 여겼다. 그래서 스스로 장애가 있다고 생각한 적 없었다.



  그러던 중 열두 살 인생에 처음 길을 잃었다. 유난히 화창했던 어느 봄날, 나는 가족동반으로 떠난 곳에서 친구들과 함께 달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빠는 그런 내 모습을 담겠다고 멀리서 줌 아웃을 했고 생애 처음 전신을 마주했다. 걷는 모습, 뛰는 모습, 돌부리도 없었는데 넘어지고 또다시 일어나 달리는 모습들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해맑게 웃는 나를 두고 볼 수가 없어서 자리를 떴고 아빠는 그 후로 홈 비디오를 찍지 않았다.



  그날 생애 처음 익숙한 곳에서 길을 잃었다. 왜 그동안 골목길에 모여 놀이를 할 때마다 깍두기 신세일 수밖에 없었는지, 반 친구들이 ‘너는 우리랑 다르다’며 하나둘씩 멀어지던 이유를 몸소 이해했다. 그 후로 방황은 지속되었다. 혹시 양쪽 종아리까지 이어진 수술자국을 가리면 그들과 같아지지 않을까 싶어 한여름에도 오빠의 스포츠 양말을 꺼내 신었고 봄, 가을, 겨울이면 내복을 껴입어 가렸다. 장애가 있는지도 모르고 용감하던 마음은 간 데 없이 나를 감추기 바빴다. 역설적이게도 감추면 감출수록 마음은 볼품없이 작아졌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축 늘어진 마음에 아이들이 놀리는 말들을 담아두기 시작했고 켜켜이 쌓인 말들이 실재가 되면서 일상에 어둠이 드리웠다.





  길을 잃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헤매는 중에도 아무에게도 길을 물을 수가 없었다. 나 혼자만 틀린 그림 같고 이상한 나라에서 온 외계인처럼 느껴져서, 어쩌면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탄생부터 잘못된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빨리 세상에 태어나려고 욕심을 내며 순리를 거스른 탓에 장애를 얻었고, 그 벌로 지옥을 살고 있는 거라고 말이다.



  눈 감았다 뜨면 이 모든 것이 꿈이었으면 싶었다. 내가 밖을 나설 때마다 걸음을 멈추고 동물원 원숭이 구경하듯 하던 사람들과 똑바로 걸으라며 지팡이를 휘두르며 혼내던 이름 모를 할머니, 하굣길에 집으로 가는 길  무리 지어 따라오며 다리병신이라고 놀리던 아이들과 불쌍한 사람한테 그러는 거 아니라는 훈계로 순식간에 나를 가엽게 만들던 어른들까지. 아무리 애써도 세상이 말하는 정답이 될 수가 없어서 갖은 설움을 토해내듯 세상을 원망했다.   



  그렇다고 나아진 것은 없었다. 다만 무언가 탓할 대상이 생겼다는 사실이 잠시나마 위안이었다. 하늘에 대고 삿대질을 해 봐도 달라질 것이 없어서 결국 예외 없이 지쳤다. 그래도 보란 듯이 힘을 내어 살았다. 쉴 틈 없이 불행이 찾아올 때는 그저 세상이 못 살게 구는 것 같아서 어떻게든 이겨내 잘 살고 싶었다.





  뜻대로 어떻게든 살아내기는 했지만, 잘 지내지는 못했다. 내 삶의 원천은 복수심이었고 그것은 마음을 서서히 망가뜨렸다. 그간의 설움을 갚으려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삶을 영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몸이 아프면 마음이 괴로운 것은 당연하고 마음의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몸부터 나아야 한다고 믿었다. 겉으로는 잘 삶을 살아내는 듯했지만, 내면의 그릇된  믿음은 되려 말랑말랑한 마음을 버석하게 만들었고 작은 일에도 부스러지기 쉬운 나약한 사람이 되게 했다.



  시간이 흐르면 누구나 누추하고 볼품없이 스러질 몸이건만. 어떻게든 그 몸을 다시 세우겠다고 금방 스러질 모래성에 힘을 주며 살았다. 열두 살 무렵부터 서른 살 때까지 생일 케이크에 꽂힌 촛불을 끄며 다시 태어나게 해 달라고 빌었으니 십여 년간의 끝을 모르고 이어진 긴 방황이 이제야 마침표를 찍은 셈이다.





  길치는 돌아가는 법을 모른다. 그래서 몸과 마음을 고단하게 했다. 익숙한 곳에서 길을 잃었을 때. 잘 가고 있다고 믿었는데 갑자기 길을 잃었다는 사실이 너무도 황망해서 그저 걷는 것 말고는 별도리가 없었다. 잠자코 멈춰 있자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 자신을 용납할 수 없어서, 걷고 또 걸었다.



  만일 더 일찍 걸음을 멈추고 내가 선 자리와 가야 할 곳을 점검했다면 나의 방황은 이토록 길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타고난 장애는 다만 몸이 입은 옷에 불과하고 내 마음은 몸이 입고 있는 옷이 무엇이든 그것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존재라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방황의 시간을 지금보다 단축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지나온 고통의 시간을 후회하지 않는다. 지난 교훈의 시간들 덕분에 남들에게 장애로 읽히던 몸의 옷이 언젠가는 사라지고 말 허상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몸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지각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바른 마음은 낡거나 쇠하지 않고 날마다 새로워지는 실재라는 것을 깨달았으니 바르게 교정된 마음의 힘이 가야 할 방향을 보여주고 목적지로 이끌게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제 나는 몸이라는 허상의 감옥에서
해방된 자유의 마음이므로.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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