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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캘리 Feb 02. 2024

빈자리에 꽃이 내려앉았다

기도의 노래


  살면서 예기치 않은 불행을 마주할 때면 행복에도 총량이 있는 듯했다. 스스로 타고난 행복의 그릇이 작아서 불행은 잦고 행복은 뜸한 거라고 생각했다. 이른둥이로 뇌성마비를 앓아 안락사당할 위기를 넘긴 것도, 출생신고도 미루고 인큐베이터에 들어간 지 한 달 만에 기력을 회복한 것도, 평생 걷지 못할 거라던 말을 뒤엎고 여섯 살 무렵 걷게 된 것 모두 불운한 탄생의 보상으로 얻은 행복이라고 믿었다. 불행의 총량을 소진하면 행복의 그릇이 채워질 거라는 믿음으로 아킬레스건이 초래한 불운을 잠자코 견뎠다.



  누군가는 이 모든 것이 기적이라고 했지만, 나는 그저 잃은 것을 돌려받는 거라고 생각했다. 불완전하게나마 걷기 시작했을 때는 본래 타고난 모습을 되찾는 중인 줄 알았다. 시간이 흐르면 낫게 될 거라고 믿었으니, 장애를 문제로 여기지 않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원하는 행복은 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에야 잠잠했던 마음이 소란해졌다.



  만약 열 달 온전히 채우고 태어났더라면, 뇌성마비를 앓지 않았더라면, 미숙아가 아닌 완숙한 상태로 태어났더라면…. 수없는 만약이라는 말로 현실로부터 도망쳤다. 도대체 왜 이런 시련을 겪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서 서른이 되도록 다시 태어나게 해 달라고 빌었다. 예기치 않게 마음이 도랑에 빠지는 날이면, 딱 한 번만 건강한 몸을 경험하기를 소원하며 목놓아 울었다. 겉보기에는 누구보다 간절했지만 밑바탕에는 스스로에 대한 증오가 있었다.






  나는 미숙아로 태어난 것이 싫었다. 장애로 인해 결코 완생에 도달할 수 없는 숙명을 타고난 거라고 믿었고 보통의 삶을 경험할 수 없는 나 자신이 미웠다. 장애를 전염병 대하듯 기피하는 사람들 속에서 애써 밝고 씩씩하기 위해 노력했다. 스스로 쓸모를 증명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에 매일 시험대에 오르는 듯했다.



  몇 해 전 퇴근 10분 전, 경영악화를 이유로 별안간 회사에서 잘렸을 때도 가장 힘들었던 것은 하등 쓸모없어 보이는 나 자신에 대한 증오였다. 존재의 이유를 육체에서 찾았고 거울에 비치는 모습에 목매듯 살았다. 성실히 지켜온 회사원의 신분이 하루아침에 사라졌고, 나를 설명할 말이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안간힘 써서 지키던 것들이 신기루처럼 사라졌을 때. 대체 무엇을 위해 성실했는지 알 수 없는 허탈감에 오래 절필했던 펜을 잡았다. 바깥 것에 영향받지 않고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내면을 가꾸기를 다짐하며 오래 유기하듯 했던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지난날을 돌아보며 진실로 스스로를 애틋하게 보기 시작했을 때,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비혼으로 살겠다고 선언한 지 반년쯤  지났을 무렵, 일 년의 여유를 두고 결혼 준비를 시작했다. 난생처음 하는 것 투성인데도 물 흐르듯 순조로웠다. 조금씩 마음의 안정을 찾았고 어쩌면 타고난 행복의 그릇이 생각보다 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던 어느 날 갑자기, 보이스피싱으로 전 재산을 잃었다. 결혼식을 석 달 앞두고 벌어진 일이었다. 그때도 나는 제일 먼저 하등 쓸모없는 스스로를 탓하며 벼랑 끝으로 몰았다.





  하지만 마음이라는 것이 아예 눈 가리고 귀 닫고 있었다면 모를까, 한 번 보고 듣기 시작하니 만신창이가 된 속이 훤히 보여서 함부로 대할 수가 없었다. 짱짱하던 마음은 볼품없이 구겨졌고 며칠 밤낮으로 악몽에 시달려 먹지도 자지도 못하는 날이 이어졌다. 자책하는 날을 거듭할수록 숨 쉬기조차 버거웠다. 어떻게든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에, 남편에게 주말만이라도 어디로든 떠나자고 말했다. 그때만큼은 증오가 아닌 제발 살려 달라고 간곡히 기도하는 마음이었다.


 

  때마침 시어머니에게 밥 먹으러 오라는 연락을 받고 살기 위해 집을 나섰다. 그녀는 침묵의 포옹으로 나를 반겼고 일주일 만에 아무것도 묻지 않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 평온한 밥상을 마주했다. 허기진 마음을 채우듯 마음이 든든해지고 겨우 고른 숨을 시작하던 찰나, 어머니가 던진 말이 오랜 기도의 응답 같이 다가왔다.  



세상은 원래 속임수야.



  이 말을 듣기 전까지만 해도 운 나쁘게 무서운 속임수에 속아 보이스피싱을 당했고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무능함 때문에 불행을 겪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세상은 원래 속임수라는 말에, 오랜 고통의 시간들이 단숨에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저 정체를 알 수 없는 목소리에 속아 전재산을 잃을 수밖에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일 뿐. 내 잘못이 아니었다. 그들이 하는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확인하려고 하면 할수록 완전히 속게 만드는 치밀한 수법에 속지 않을 수 없었다. 작정하고 속이는데 당해 낼 재간이 있나.





  지나온 나의 삶도 보이스피싱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 말뜻이 완전히 이해되던 순간, 사는 동안 온몸으로 불행을 뒤집어쓴 듯했던 이유를 알았다. 나의 불행은 타고난 장애도, 하등 쓸모없다고 믿었던 존재의 무능 때문도 아니었다. 다만, 세상의 거짓말에 속아서 스스로를 증오했고 행복의 그릇이 작아 불운으로 가득 찬 삶을 산다고 믿어, 진실의 눈을 가린 것일 뿐. 나의 눈을 가리던 덮개를 벗고 보니 본래 나는 잘못한 것도, 오답이었던 적도 없었다.



  나이 서른이 될 때까지 다시 태어나 새로운 육체의 옷을 입지 않고는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기구한 삶인 줄 알았다. 역설적이게도 입이 마르도록 원하는 행복을 읊조릴 때는 거꾸로 가는 듯하던 것들이 나에게로 향하던 미움, 분노, 증오의 감정들을 거두고 나자 제자리를 찾는 듯했다. 존재의 쓸모를 증명하려고 애쓰던 힘도 쇠하고 진실로 살고 싶다는 마음 한 자락만 남았을 때에야, 본래 타고난 나의 모습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지 비로소 볼 수 있게 되었다.



  바라던 대로 이루어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편안한 마음을 마주하고서 알았다. 그동안 스스로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는지, 그것이 언제일지 소원하는 것들을 바라고 묻기만 했다. 남들과 다르게 나에게 없는 것만 보기 바빴고, 나 자신을 바로 보게 해 달라고 기도한 적 없었다. 단 한 번이라도 본래 내가 가진 것을 보여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마음이었다면 아마도 나의 과거는 지금과 많이 달랐을 것이다.



  줄곧 태생이 결핍을 타고난 빈 가지인 줄 알고 살았다. 생애 중요한 사실을 깨치고 나니 사는 내내 비었다고 생각한 자리 위로 연고처럼 하이얀 눈꽃이 내려앉은 듯했다. 그저 시리고 차가운 얼음인 줄 알았건만. 텅 비었다 생각한 자리 위로 살포시, 상처로 인한 모든 고통과 설움을 화이트아웃으로 만드는 아름다운 꽃이 한아름 피었다.




상처받았다는 생각에 속은
마음을 보듬는 무결한 눈꽃이.








빈자리에 꽃이 내려앉았다

/ 담쟁이캘리




헐벗은 나무 한 그루

처연한 겨울바람에, 텅 빈 손

삐죽삐죽 하늘로 뻗었다



후미진 응달에서도

부단히 뿌리를 내려, 타고난

제 자리 지키고 서 있다



좌우로 뻗은 가지 속

화살은 모두 자기를 겨누고

휑하니 빈자리 서러워



터놓지 못할 구슬픔

이는 바람에 실어 보내고

빈 가지 곧게 뻗어냈다



숨죽인 기도의 노래

하늘을 울렸나, 저 하이얀

연고처럼 나리는 눈꽃이



외로운 빈자리 위로

시리도록 아름다운 꽃이

반가운 벗처럼 내려앉았다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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