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기

말 줄여버린 마음: 빈 말의 의미

by 담쟁이캘리




체기

/ 담쟁이캘리




맛있게 익은 면을 호호 불어
입에 넣기도 전에


먹은 것도 없이 체했다
너에게서 온 뜻밖의 연락 때문이었다


감정도 체할 때가 있나 보다
보내야 할 때 보내지 못하고
제 때 애도하지 못해
불쑥 찾아든 네가 역류했다


네 연락 한 통에
평온하던 감정이 어느 날 갑자기 솟구쳐
일상이 엉망진창 돼 버렸다


만약 우리가 헤어지지 않았더라면
만약 우리가 여전히 연인이라면


무의미한 가정으로
되돌아온 너의 연락에
지난 감정이 다시 체했다


면은 꼬들꼬들할 때 먹어야
제 맛인데, 입에 넣지도 못하고
퉁퉁 불어 볼품없게 변했다


식탁에 앉아 가만히
너를, 곱씹었다


행여 네가 불쑥 역류할까
지난 너를 꼭꼭 씹어 보냈다




마음도 체할 때가 있다. 제대로 소화시키지도 못 하면서 무턱대고 욱여넣어 불쑥 역류할 때가 있다. 저마다의 주어진 시간 동안 충분히 곱씹고 잘 삼켜야만 불현듯 휘몰아치는 감정에 체하지 않는다. 애도(哀悼)에도 골든타임이 있다. 슬퍼해야 할 때, 아파해야 할 때 건강한 울음을 울며 제 때 애도할 수 있어야 행복의 배를 불릴 수 있다.

지난 시간들과 건강하게 이별해야 훗날 맛있게 차려질 '-라면'이라는 수많은 가정의 이야기들을 행복으로 그릴 수 있다.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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