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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캘리 Sep 23. 2020

일회용, 아껴 쓰세요

말 줄여버린 마음: 빈 말의 의미




일회용, 아껴 쓰세요

/ 담쟁이캘리




참 이상하지


단 한 번밖에 쓸 수 없어
제 몫을 다 하면 버려지고 마는
일회용이라면 아껴야 마땅한데
세상은 온통 일회용 투성이야


단 한 번밖에 쓸 수 없어도
내 눈길 머무는 곳곳마다 항상
일회용이라는 이름이 넘쳐나네
세상은 온통 일회용 투성이야


기한은 단 한 번뿐인데
모자람 없이 누렸으니, 겁 없이
소비한 시간들이 일상의 풍경을
오염되게 한다는 말은 어쩜 당연해


참 신기하지


단 한 번밖에 쓸 수 없어
제 몫을 다 하면 버려지고 마니
아껴 쓰라는 말 무심히 흘렸는데
내 일이 되니 후회 투성이야


단 한 번밖에 쓸 수 없어도
내 발길 지나는 곳곳마다 항상
청춘이라는 이름이 넘쳐나고
세상은 온통 봄철 투성이라


기한은 단 한 번뿐이니
모자람 없이 누리자고, 겁 없이
소비한 시간들 벌써 한가득인데
별안간 남은 일상이 소중한 거야


참 이상하고
참 신기한 일이지


계절도 모르고 무턱대고 보낸
더는 순환하지 않는 지난봄들이
한 번 쓰고 나면 버려지고 마는
일회용이었음을 깨닫고 나니


단 한 번밖에 쓸 수 없는
남은 날들, 아낄 수밖에 없는 거야




아까운 줄도 모르고 흥청망청 써대고 나서야, 낭비가 습관이었음을 깨닫는 순간이 있다. 겁 없이 소비하고 나서야 그 모든 것들이 과소비였음을 깨치게 되는 때가 있다. 아껴 써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심코 흘러버린 시간들이 별안간 절로 그리워지는 시기가 있다.

산다는 것은 닻을 올린 줄도 모르고 항해하는 생의 망망대해 속에서 쏜살같이 흘러간 시간들을 거듭거듭 반추하면서 남은 날들은 아끼며 살겠다고 다짐하기를 반복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누구나 일회용인 삶인데도, 모두가 무심하게 망각을 반복하고 딱 그만큼의 후회를 그림자처럼 달고 산다. 그리고는 또다시 다짐하겠지. 내 남은 날들은 후회 없이 꼭 아끼며 살겠노라고….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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