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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캘리 Oct 07. 2020

허공 열차

말 줄여버린 마음: 빈 말의 의미




허공 열차

/ 담쟁이캘리




요란 법석한 꿈과 희망의 나라를
둘러싸고 있는 건 요정도, 공주도 아닌
수심 깊고 잠잠한 호수였네



한껏 들뜬 마음에 당장이라도
하늘 구름이라도 지르밟게 해 줄 것처럼
신나게 허공 위를 달리던 열차는
고작 2분 남짓한 짜릿함만 남길 뿐



달나라 별나라라도 보내줄 것처럼
온갖 꿈과 환상에 부풀어
아낌없이 지불했던 자유로 가는
입장권은 겨우 하루 반나절짜리



빠른 속도로 하늘을 가르고
속 안에 가득 찬 비명 소리에
주변이 떠나갈 것처럼 소란스러워도
그저 앉은자리에서 제자리걸음



분명 제 값을 지불하고
자유 이용권 끊었는데
왜 뭐 하나 달라지는 게 없나
열차를 타고 몇 번이고 하늘을 갈라도
남는 건 나를 꽁꽁 감싼 벨트뿐이네



수없는 허공을 달려도
왜 내겐 채워지지 않는 공허뿐인가
잠잠한 호수에 돌 던져보다,
일순 깨달은 마음이 나직이 말하네



아뿔싸, 여기는
꿈과 희망의 나라라는 걸
잠시 잊었노라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을 때가 있었다. 쉼이 필요하다는 이유를 들어 떠났던 여행은 돌이켜 보면 대부분 도망이었고 도피였다. 닥쳐온 현실을 마주할 용기가 없거나 부정하고 싶은 마음에, 무작정 떠났던 순간들이 있었다. 여행이라 쓰고 '도망'으로 읽히던 시간들은 들뜬 마음도 잠시, 금세 걷잡을 수 없는 공허에 휩싸였다. 무작정 떠나기는 했으나 '도망'에 불과했으므로 현실은 미뤄둔 숙제처럼 남아, 결국 밀린 숙제 하듯 마주해야만 했다.

'나 자신'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직무유기의 대가는 이유 모를 허기로 나타나 하루에도 몇 번이고 굶주린 마음이 되었다. 마음이 허공 열차를 타고 앉은자리에서 제자리걸음 할 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나 자신에 대한 애틋한 시선이자 괜찮다고 다독이는 너그러운 마음이었다. 실은 모두 서툰 사람들이니 애써 도망치지 않아도 된다고. 발 딛고 선 현실 속에서 오직  나만의 즐거움을 찾고 '그만하면 참 행복한 사람'이라고 내게 말해주는, 나를 아낌없이 사랑해주는 꾸준함이었다.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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