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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캘리 Oct 30. 2020

생활의 발견

말 줄여버린 마음: 빈 말의 의미




생활의 발견 

/ 담쟁이캘리




오래도록 텅 빈 우편함 채운
우편물이 반가워 열어보니
이번 달 수도세 청구서가 들었다


먹구름 드리운 날이면 어김없이
수도꼭지 틀어두고 홀로 욕조에 앉아
오랜 울음 우는 탓에 지불하는 값이 늘었다


전하는 이야기마다 넘쳐흘러
발 없이도 천 리를 가고 마는 말 대신
따뜻한 물줄기에 기대어 온종일
갖은 일들에 절은 몸 씻어내는 일이 늘었다


어느 하나 달라질 것 없는 하루마다
무얼 기다리는지도 모르는 채로 무턱대고
의미 없는 기도를 하는 시간이 늘었다


해 아래 새로운 것 하나 없다며
무작정 재미 찾느라 보낸 스물네 시간
정처 없이 흘러 어디까지 가 버렸는지


아낌없이 쓴 하루는 매 밤마다
헐거워진 수도꼭지처럼 뚝뚝 흘러
이제와 잠가봐도 하수구 밑 흘러간
시간 다시 주워 담을 도리가 없다


오래도록 텅 빈 욕조 채운
따뜻한 물이 반가워 가 보니
이번 달 수없이 흘러 보낸 눈물이었다


먹구름 드리운 날마다 어김없이
수도꼭지 틀어두고 홀로 욕조에 앉아
오랜 울음 울던 옛 버릇 그치고도


여전히 지난 시간에 대해 지불할 값이 늘었다





세상 모든 일에는 저마다 지불해야 할 제 값이 있다. 누군가에게 겨우 꺼내놓은 속내가 발 없이도 천  리를 거뜬히 가버릴  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다던 상대의 빈 말은 소문이 되어 돌아올 때. 서둘러 단속해 봐도 이미 흘러 간 말과 시간은 다시 주워 담을 도리가 없다.

살면서 겪는 일마다 수업료를 치를 때가 있다. 때문에 기쁨이든 슬픔이든 모든 감정에는 무게가 있다. 산다는 것은 갖은 역경과 고비를 지나 저마다의 생활을 꾸리는 것이므로 세월 위에 생기는 모든 주름은 숭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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