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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캘리 Oct 28. 2020

너에게 부치는 편지

말 줄여버린 마음 : 빈 말의 의미




너에게 부치는 편지

/ 담쟁이캘리




안녕, 오랜만이네

불쑥 찾아와서 조금 놀랐어

한동안 소식이 없어 날 잊은 줄 알았거든



나는 항상 뜨거워

이따금 부는 바람을 헤아릴 수 없었어

선선한 네 숨이 얼굴 가득 맺힌 땀

식혀주는 줄도 모르고

차갑다고 이글거렸으니 말이야



잦은 눈 맞춤에 두 볼 붉히는 건 여전하네

수줍은 볼 감추려 바스락대던 모습 눈에 선해

내가 뜨거워질수록 넌 점점 말라갔고

자주 앉아 쉬던 곳에는 빈 가지만 남았지



하루하루 네가 멀어지는 게 아쉬워

심통 난 늦잠에도 아무것도 모르는

너는 항상 잰걸음을 걷는다



나는 잘 지냈어, 아니 사실 오래 기다렸어

다시 만나면 우리 사이, 바람 들만큼 선선해져

네가 조금 더 오래 쉬어 가기를 기도했지



겨울 밤하늘 흩뿌려진 별만큼 너를 헤아리고

머물던 자리 위로 쌓인 눈 녹이고

봄볕에 여린 싹 틔우며 시간을 건넜어



네 선선한 바람, 더욱 빛내 주고파

긴 긴 낮 부지런히 뜨거운 여름을 살았어



아무 말 못 하고 하루하루 멀어지는 널

마음에 담으려 여느 때보다 한껏 비춰 봐

찰나여서 소중한 나의 가을아

부디 곁에 오래오래 머물러줘





언젠가 가수 양희은 씨가 한 프로그램에서 이런 말을 했다. '모든 관계는 바람이 들만큼 선선해야 한다'라고. 예전에는 뜨겁든지 차갑든지 확실한 것이 좋았다. 딱 잘라지는 마음이나 관계가 없는 줄 알면서도 정확한 것이 좋았다. 한데 때가 되면 어김없이 제 자리를 지켜 돌아와, 낮에는 뜨겁고 저녁에는 선선한 바람을 부는 가을이라는 계절의 얼굴을 생각하다 관계의 의미를 깨쳤다. 관계는 단순히 물리적인 거리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꼭 붙어 앉은 모양이 아니라도 돈독한 관계일 수 있었다. '말없이 제 자리를 지켜 뭉근한 온기로 채운 마음'이 더 애틋할 수 있음을 알았다.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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