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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캘리 Nov 21. 2020

선택

말 줄여버린 마음: 빈 말의 의미




선택

/ 담쟁이캘리




너와 내가 만나는 지점은
언제나 갈림길이었다



서로 닮은 사소한 점들이 모여
방울이 되고 웅덩이를 이루었다면, 우리는
지금 바다를 항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너와 내가 걷는 걸음은
언제나 평행선이었다



서로 걷는 사소한 발걸음이 모여
길이 되고 신대륙을 이루었다면, 우리는
지금 사막을 지나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아침을 배웅하고 저녁을 맞는 일처럼
네가 물러나고, 밀려올 때를 알았더라면



예고 없이 만난 밀물과 썰물에 하릴없이 뭍으로
걸어 나오지 않을 수 있었다면 좋을 뻔했다



너와 내가 선 자리는
언제나 등 돌린 숲이었다



서로 닮은 나무들이 옹기종기 모여
그늘이 되고 숲을 이루기를 바랐건만
끝을 알 수 없는 모습으로, 늘 저 너머에 있는



너와 내가 만나는 지점은
언제나 갈림길이었다




미치지 않고는 미칠 수 없다는 말처럼 짧은 시간 안에 나는 너에게 미쳤고 깊은 밤 우리는 서로에게 닿았다. 잘 알지도 못 하는 너와 불현듯 첫눈을 보고 싶어 하던 마음속 소원을 이룬 새벽녘, 하얗게 덮은 눈길 위를 지나며 애쓰지 않아도 자연히 속말을 꺼낼 때가 올 거라며 잠시 너를 미뤄두었다. 두근대는 마음은 의심할 여지없는 꽃밭이라 조석 간만의 차처럼 썰물이 있으면 밀물도 있을 줄 알았건만 하려던 말들은 시기를 놓쳐 말 줄인 말로 스러지고, 휑하니 뭍만 드러나 있었다. 분명 마음속 서로가 넘실대던 순간이 있었으나 너와 내가 만나는 지점은 언제나 갈림길이었다.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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