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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캘리 Dec 02. 2020

달에게 배운다

말 줄여버린 마음: 빈 말의 의미




달에게 배운다

/ 담쟁이캘리




어느새 가까워 온 섣달 그믐날
돌이켜보니 열두 달 내리 어둠만 헤아리느라
일자(日字) 헤아릴 새 없는 날을 보냈다


매일 아침 새 마음 새 뜻으로
밤마다 우물가에 앉아 물을 길어내도
깊은 수심은 마를 틈 없이 차고 넘쳤다


습관처럼 다잡던 마음도
속절없이 늘어진 밤의 시간 앞에서
아침인지 밤인지, 갈피 잡을 새 없이 휘청였다


초하루부터 말일까지
동지섣달 끝 모르고 늘어진 밤
끝까지 곤두박질친 마음이
외딴 방 어둠 위로, 덩그러니 떴다


제 아무리 밝다 해도
두문불출 낯을 감추고 싶은
순간이 있는 거라고, 어둔 밤
홀로 선 너를 보다 알았다


말동무 하나 없이
매일 밝은 낯 보여야 하는
그 변치 않음이 가여워
무언의 눈길로 너를 달랬다


그림자라도 지면 짐작이나 할 텐데
늘 밝은 너는, 언제고 잠잠해
무심코 지나치고 말았노라고
어둔 길 위에 밤새 널 세워두고
맘 편히 잠든 나를 탓했다


둥글둥글한 너는 속도 없어
잠시 머문 내 눈길이 뭐 좋다고, 졸졸
강아지처럼 따라다니기 바쁜지


초승 날부터 그믐 때까지
변화무쌍한 하루를 보내고도
보름이면 밝은 낯으로, 짙은 어둠 속
초연하게 제 자리를 지키는 너를 보며
갖은 감정에도 주기가 있음을 알았다


제 아무리 어둡다 해도
휘영청 빛을 비추고야 마는
순간이 오는 거라고, 어둔 밤
홀로 뜬 달을 보며 배웠다



섣달 그믐날: 음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날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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