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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캘리 Dec 11. 2020

정리

말 줄여버린 마음: 빈 말의 의미




정리

/ 담쟁이캘리




뜨겁고도 길었던 한 계절이 끝났다


생애 많은 계절을 지나왔지만
올여름은 양 볼이 쉬이 달아오를 만큼 뜨거웠고
한낮 치솟는 열기에 수없이 땀에 젖었다
 

초여름, 간만에 마주한 따스함에 그저 설렜고
장렬하던 태양에 살이 타는 줄도 모르고 좋았다


초록의 절정에 이르렀을 때
잔바람에도 웃음 질만큼 여름과 맞닿아
우리의 낮은 저물지 않았고 밤은 자주 늦잠을 잤다
마치 우리의 계절에 밤은 없는 것처럼

 
긴 긴 낮에 취해 시간을 흘려보내는 동안
밤의 그림자는 조금씩 낮을 삼켰고
온도에 따라 그 여름의 빛깔도 달라졌다
그토록 뜨겁던 한낮의 태양은
변덕스러운 소나기와 무자비한 장맛비를 퍼부으며
권태롭게 변해갔고 하루하루 식어갔다
 

뜨겁고도 길었던 한 계절이 끝났다


처음 하는 배웅도 아니건만
여름의 끝자락마다 부는
서늘한 바람은 여전히 낯설다

 
식어버린 낮의 기온만큼
긴 긴 밤이 헤매는 걸음 수만큼
일교차가 벌어져 옷깃을 스치는
찬바람만 남았다


긴소매를 덮으며 오랜 여름과 작별을 고했고
생애 가장 뜨겁고도 길었던
이 계절도 막을 내렸다





새벽녘, 창밖에서 들리던 빗길을 지나는 자동차 소리가 그쳤다. 비는 그쳤지만 땅은 여전히 젖었다. 땅에는 여전히 비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비가 그쳐도 그 땅이 말라 단단해지기까지는 시간이 드는 일이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알고 가는 이의 발걸음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말하던 어느 시인의 물음을 곱씹으며 누구에게나 호시절이 있고, 삶은 계절처럼 순환한다는 사실을 깨쳤다. 만개하는 때가 있으면 지고 마는 날이 있는 것은 자연의 당연한 이치니 낙화한다고 하여 너무 오래 슬퍼할 것 없다는 위로임을 알았다.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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