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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캘리 Dec 30. 2020

해 넘는 하루

말 줄여버린 마음: 빈 말의 의미




해 넘는 하루

/ 담쟁이캘리




한낮에 장렬하는 태양을 보며
온 세상 샅샅이, 부침 없이 이글대고
기어코 눈도 못 마주칠 만큼 눈 부시길래



나 그늘에 숨어드는 일 잦아도
너는 제 자리 지킬 줄 알았건만
초저녁, 서쪽 비탈진 산등성이 아래
붉은 혈 내비치며 꼴딱 스러졌다



아침에 스며드는 태양을 보며
온 세상 곳곳을, 지침 없이 기웃대고
기어코 낯도 못 가릴 만큼 다 비추길래



나 한사코 마다해도 너 가만히
지금 그 자리 지킬 줄 알았건만
하룻밤, 고작 어둠에 하릴없이 지고
붉은 혈 물들이며 까딱 넘어졌다





시간의 값을 '나이'로 정산하는 하루가 있다.

내일 하루가 지나면 해가 바뀐다. 코로나 19라고 쓰고 '코로나 20'이라 읽어야 할 것 같은 한 해도 저문다. 연말이 이렇게 고요하고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있다니. 하마터면 연말인지도 모르는 채로 가는 해 뒤꽁무니만 멀뚱히 바라볼 뻔했다.

하룻밤만 자면 해가 바뀌고 나이를 먹는다니 불현듯 '하루'의 값이 지나치게 크다 싶다가도, 일 년치 시간을 할부로 쓰던 값을 내일 밤에야 정산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지난 시간의 대가를 '나이'로 지불하는 하루라니.

어쩐지 매일 눈 뜨면 거저 주어지는 하루가 너무 후하다 싶었는데, 역시 세상에 대가를 치르지 않고 얻는 것은 없는 모양이다.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 중 어떤 하루는 '한 살 더 먹는' 하루라니 얄궂게 느껴지기도 한다. 누군가 말했다. '삶은 너무나도 아름답고 동시에 정말 허무하다'라고. 아마 그것은 제 아무리 찬란한 생도 매 연말마다 지불하는 유한한 '젊음'의 값이 다할 때, 기어코 마주하고 마는 끝이 있기 때문일 테지.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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