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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캘리 Jan 03. 2021

나의 아킬레스 건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고백하건대 어린 시절, '복수'는 나의 힘이었다.


보란 듯이 잘 살아서 모습이 '다르다'이유만으나를 따돌리고, 겉모습만 보고 얕보는 사람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 주겠다는 일념으로 버텼다. 칠삭둥이로 태어나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뇌성마비로 인해 걸음걸이마저 온전하지 못했을 때. 하루에도 수백 번씩 나의 잘못이 무엇일까 고민하며 알지도 못하는 전생을 탓했다. 대체 전생에 나는 어떤 잘못을 했길래 태어나자마자 불리한 출발점에 서야 했을까.


나의 아킬레스 건은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아킬레우스처럼 가린다고 감출 수도 없는 것이었다. 어릴 때는 나도 감추면 되는 줄 알았다. 그래서 내게 있는 수술 자국을 기를 쓰고 가렸다. 뒤꿈치 쪽에 인대가 뭉쳐 제대로 서지도 못하고 까치발을 걷자, 인대를 펴주기 위해서 한 수술이었다. 아킬레스 건으로부터 종아리까지 흉터가 남을 만큼 큰 수술이었는데, 그 자국감추 아무도 모를 라고 착각했다. 때문에 한여름에도 반바지는커녕 목이 짧은 양말을 신지 않았다. 나의 약점을 꼭꼭 숨기는 것으로나마 위안을 삼았다. 내 마음의 위안과는 다르게 그 무엇으로도 감출 수 없던 나의 아킬레스 건은 여실히 드러났지만….      





  당최 '괜찮은 척'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숨바꼭질하는 내내 제대로 숨기도 전에 꼼짝없이 들키고 마는, 술래가 숙명인 삶 같았다. 오랜 고민에도 나의 핸디캡은 어떤 잘못 때문인지 답을 내리지 못했다. '그냥 같이 다니기 불편해서 싫다'는 말로 친구들이 하나둘 떠나갈 때는 '외로움'이 또 다른 나의 이름인 것처럼 받아들였다. 차라리 이유 없이 그냥 싫다는 말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사는 동안에는 무슨 수를 써도 절대 벗어날 수 없는 나의 가시를 가만히 끌어안았다. 장미에게 가시는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라는데 나에게 찌를 때마다 처음 같은 고통이었다. 아프다고 없앨 수도 떼어낼 수도 없는 눈엣가시 같은 것.


내 걸음은 같은 시간을 걸어도 친구들보다 곱절의 시간이 들었다. 친구들은 만 없으면 단숨에 닿을 거리였다. 눈치 없이 저는 다리와 몇 발자국 못 가 넘어지기를 반복하는 걸음에, 나란히 걷던 친구들과의 보폭이 더욱 멀어졌다. 안 봤으면 모를까 눈앞의 목적지를 두고 느긋하게 기다려주는 이들은 없었다. 더구나 인생은 곳곳마다 피니시 라인이 그려진 시합과 경주의 연속이었으므로 뒷걸음질 쳐 나를 일으켜줄 리 만무했다. 내가 아무리 금세 털고 일어나 다시 걷는 악바리라고 해도, 한 번도 넘어지지 않고 바로 걷는 이들을 따라잡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작부터 밀린 싸움은 이길 확률이 희박한 코너에 몰린 형국이었다.


  개중에 제일 고통은 나를 따돌리는 주동자가 나의 불행을 다른 친구들 앞에서 자랑처럼 보이는 일이었다. 남들과는 다른 내 걸음걸이를 따라 하며 놀림거리로 삼고, 혹시라도 내 편에 서는 아이들이 있으면 그들까지 함께 따돌다. 자기와 '다르다'는 이유로 시작된 따돌림은 결코 '같아질 수 없다는' 경계선을 긋고, 곁에 아무도 둘 수 없도록 만들어 결국 완벽한 혼자가 되고 나서야 끝났다.



억울해? 억울하면 다시 태어나든지,
아니면 너도 복수해.



 비아냥거리는 말을 들으며 습관처럼 복수를 다짐했다. 어떻게든 꼭 되갚아 줄 날이 오기를 바랐다. 복수라는 것은 당한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해를 돌려줘야 하는 것인데, 어느 날 갑자기 기적이 일어나 몸이 지 않는 한 되갚아준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저 나의 겉모습만 보고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에게 '보란 듯이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야 말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복수라고 생각했다. 그 무렵, 우연히 스에서 미국의 앞을 못 보는 어떤 아나운서가 점자를 읽어가며 방송하는 모습보았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장애를 뛰어넘어 꿈을 이뤄낸 불굴의 의지를 극찬했다. 국경을 넘어 한국에서까지 떠들썩하게 그 모습을 보도하는 보고, 만천하에 '보란 듯이 잘 사는 것'을 내보이기 위해 무턱대고 아나운서의 꿈을 꿨다. 그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는….   







내 베스트 프렌드야, 인사해.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내 열일곱 인생만에, 4년 만에 나를 따돌렸던 친구를 다시 마주했다. 그것도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의 친구로. 얼굴만 봐도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움찔하던 나와는 달리, 그녀는 너무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악몽에 시달리고 있건만 그녀는 이미 다 잊은 듯했다. 나를 보고 웃으며 악수를 먼저 건넸으니…. 곁에 선 친구가 굳은 표정을 보고 이유를 물었을 때에야 '너의 절친이 학창 시절 악몽의 주인공 하나'라고 답했다.


그녀는 그제야 '오랜만에 만나서 악수부터 청하는 것은 좀 아닌가?' 라며 손을 거뒀고 그때는 내가 철이 없어 큰 실수를 범했다며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자신도 뒤늦게 그때의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했다면서 다행히 하나님께 용서받고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 순간 마치 영화 <밀양>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배역을 연기하던 전도연의 마음이 이랬을까. 정작 사과받아야 할 사람은 나인데, 누가 누구를 대신 용서했다는 건지. 말도 안 되는 소리에 그 말을 끊었다.



"하나님은 너만 믿는 거 아니고 나도 믿어. 근데 하나님이 용서한 건 그 당시 너의 철없음에 대해서겠지. 네가 잘못한 사람에 대한 용서는 그 사람한테 받는 거야."     



나의 말을 끝으로 그녀는 다시 나에게 정식으로 사과했고, 나는 웃으며 그녀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여전히 악몽을 꾸지만 더는 과거에 발목 잡히고 싶지 않았고, 사과를 받는 것으로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되는 악몽을 끊고 싶었다. 물론 그녀에게 사과를 받고 돌아서며 내가 너 보란 듯이 아나운서가 되고 나서 만났다면 더 멋지게 복수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예고도 없이 불쑥 재회한 탓에 당한 만큼 온전히 갚아주지도 못한 채 나의 오랜 복수 계획은 싱겁게 끝났다.

 




왜 아나운서가 되고 싶어?
네가 좋아하고 잘하는 건 글쓰기잖아.


  

복수의 대상이 신기루처럼 사라진 어느 날, 장래희망 항목에 습관처럼 '아나운서'라고 쓰던 내 모습을 지켜보던 친구가 물었다. 갑작스러운 친구의 물음에 말문이 막혔다. 되어야 하는 이유는 있어도 '되고 싶은' 이유는 없었다. 누르면 나오는 자판기처럼 답만 정해두고 한 번도 깊이 들여다본 적 없는 꿈이었다. 나를 얕보던 사람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 주는 데는 텔레비전만 켜면 나오는 아나운서만 한 것이 없겠다는 이유가 전부였다. 복수하고 난 후의 삶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보란 듯이' 잘 살고 말 거라는 막연한 꿈이었다.


친구는 일본어 선생님이 되어 '역사왜곡'을 바로잡겠다는 신념으로 만화 <원피스>를 보면서 홀로 일본어를 깨쳤고 <테니스 왕자>를 보면서 언어를 공부하다 체육에 흥미를 붙여 후한 점수를 받기도 했다. 이외에도 일본 만화의 소재와 연관 지어 거의 모든 시험과목을 섭렵했다. 다른 아이들이 그 모습을 신기하게 쳐다보며 물을 때, 친구'좋아서 하다 보니 그저 운이 따르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그에 비해서 나는 스스로 전혀 즐기지 못하는 꿈을 꾸고 있었다.


 당시 나는 취미로 빈 공책에 소설을 연재해 반 아이들에게 돌려 읽게 했는데, 반에서 읽기 시작한 친구들의 입소문을 타고 여기저기서 돌려 읽으면서 어느새 전 학년으로 퍼져 다음 회 연재를 기다리던 친구들이 있었다. 친구는 글쓰기를 단순히 취미로 두기에 아깝다면서 꿈을 권유했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이 같은 것이야말로 복이라면서, 누군가에게 보란 듯이 잘 사는 것도 좋지만 네가 즐거운 일을 꿈으로 키워보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다.  친구의 물음을 곱씹다가 무언가 한참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돌이켜 보면 그동안 너무 보란 듯이 살았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사는 삶이 아닌데, 복수는 나의 힘이라고 믿고 두 발에 힘 꽉 주느라 넘어지면 안 되는 사람처럼 아등바등 살았다. 애쓰지 않아도 습관처럼 미워지고 틈만 나면 불행을 빌던 사람들도 내 마음은 아랑곳없이 잘만 산다. 심지어는 내게 잘못한 것도 새까맣게 잊고 산다.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 채 다 잊고 잘만 산다. 


내가 아무리 미워하고 불행을 기도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애꿎은 내 감정만 소모할 뿐. 미움과 분노는 꼬박꼬박 저축하듯 모아도 아무짝에 쓸모가 없었다. 미움, 다툼, 시기, 질투… 그 모든 것은 티끌 모아 티끌이다.


오랜 세월 그녀를 미워하느라 쌓아 올린 감정도 사과 한 번에 단 몇 분 만에 순식간에 무너졌다. 이 순간을 위해 몇 년을 내 마음을 지옥으로 만들었던 것일까. 그때 내가 느낀 허무함을 이루 말할 수 없다.


과연 누구를 위한 미움일까. 그의 불행에 보탬이 되지도, 나의 삶에 건강한 원동력이 되지도 못하는 마음을 보며 생각했다. 보란 듯이 잘 해내겠다고 다짐할 것이 아니라 '나의 이름'을 스스로 증명해내는 삶을 꿈꿨어야 했다. 비록 잘난 것 하나 없어 세상 사람들이 알지도 못하는 들꽃처럼 핀 생일지라도, 내 나름대로 잘 살아내는 것으로 나의 이름을 세상에 내 보이기로 다짐하는 삶이어야 했다. 걸음이 느리면 느린 대로 걸음이 엉켜 넘어지면 넘어지는 대로, 생긴 대로 살 수 있는 삶이어야 너무 어렵지도 무겁지도 않게 살았을 텐데 그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생각해 보면 누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는 삶이었다.

나의 '아킬레스 건'이 감출 수 없는 것이라사실만 빼면 약점은 누구에게나 하나쯤 있는 것이었다. 다만, 내 것은 무엇으로도 가릴 수 없고 괜찮은 척할 수 없다는 이유로 먼 길을 돌아왔다. 비록 내가 칠삭둥이 '미숙아'의 꼬리표를 붙이고 태어난 삶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지만, 세상 모든 사람들 역시 미숙하고 서툴 수밖에 없는 단 한 번뿐인 삶이거늘. 넘어지거나 뒤처지는 일을 너무도 겁냈다.


  가만 생각해 보니 다 괜찮다. 넘어지지 않고 오는 하루는 없다. 하물며 한낮 장렬하는 태양도 완전히 넘어져야 다음 날을 기약하고 온다.


넘어지는 것, 까짓 거 아무것도 아니다.        







보통의 삶

/ 담쟁이캘리




돌 틈 사이 이름 없는

들꽃 같은 삶이 피었다



비바람에도 줄기차게 고개를 들고

내리쬐는 햇볕에도 앙다물고

입도 벙긋한 적 없던 봉우리가



그 이름 모를 녀석이 어느 날

웃는 낯을 하고 활짝 피었다



돌 틈 사이 예쁘게 핀 너는

노을 끝자락에 걸린 검은 그림자에도



아랑곳없이 이는 바람에 몸 맡기고

좌우로 흔들리더니 기어코

만개하여 흐드러진 것 보니



산다는 것은, 아마도

수없는 매일을 살아냄으로

스스로의 이름을 증명하는 일이리라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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