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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nZ May 05. 2021

그런 선택에는 그럴 용기가

지켜내는 것과 도전하는 것

촬영을 도와주기 위해 스튜디오에서 반나절을 보낸 적이 있다. 그곳은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생방은 아니었지만,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큰일이 날 것 같아 절로 고개가 움츠러들었다.


촬영 시작과 함께 PD 촬영감독 간의 기싸움도 시작되었다. 인이어 속에서 그들의 예민한 말들이 생생히 들려왔다. 게스트도 쉽지 않았다. 모 대학의 교수라는 그녀는 촬영이 시작될 때까지 자신이 몇 곡의 노래를 부를 것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매 곡을 부를 때마다 옷과 신발을 바꿔 신는 디테일도 놓치지 않는다. 말 그대로 눈과 귀가 혼란한 시간이었다. 계획에 없던 텀이 생기며 녹화시간은 늘어졌고 예민해진 PD와 촬영감독 간의 기싸움도 더욱 거세졌다.


"PD는 항상 싸울 수밖에 없어."


문득, 촬영 전  PD님이 스치듯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래도 사람 기분을 안 나쁘게 하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프로그램을 끌어갈 줄 알아야 해. 그러니 PD를 하고 싶으면 사람을 많이 만나야지. 그래야 대하는 법을 아니까."


고집이 있고 주장을 잘 피력하면서도 상대를 대하는 기술이 뛰어난 사람. PD는 전형적인 리더 기질이 필요한 직업이었다. 상대의 의견을 순응하는 것이 더 편하고 인간관계를 즐기는 것도 아닌 나와는 정반대의 상이기도 했다. PD가 목표였던 적은 없었지만, 씁쓸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근데 사실 누가 다 그런 사람일 수 있겠어. 나는 그냥 '하는 거'에 의미를 둬.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하는 게 중요한 거 아니겠어? 좋아하는 거니까."


"좋아하는 거니까."라니. 너무 정석이라 닭살이 돋을 것 같은 말이었다. 반면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PD님의 눈빛은 누구보다 진중했다. 세월의 경험인지 본래의 성정인지 모를 확신이 느껴지는 눈이었다.

 

잘하는 것보다 하는 것에 의미를 둔다는 것. 결과가 끔찍해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좋아하는 거니까 '잘해야 한다'라고 생각했다. 좋아하니까 실패하면 더 슬프지 않을까. 그렇지만, 그의 말마따나 좋아하는 걸 어떻게 다 잘할 수 있을까. 되려 잘하겠다는 마음이 좋아하는 것을 상처입히는 가장 큰 독이 될 수도 있음을 처음 생각하게 되었다. 욕심을 내려놓고 과정을 즐기는 것, 그래서 도전에는 용기가 필요한 것일지 모른다.


도전할 용기가 있다고 해서 대단한 것도, 없다고 해서 부족한 것도 아니다. 그저 '그런' 선택에는 '그럴'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후회의 앙금이 없도록 도전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지금의 현실을 충실하게 지켜나가는 사람도 있겠다. 그러니 지금 내게 도전의 용기를 묻는다면  지금은 주어진 하루를 열심히 사는 것이 좋다고 말할 것같다. 오늘을 사는 것이 버텨내는 것이 되지 않도록 지키는 것도, 내겐 용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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