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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nZ Apr 07. 2021

인생 이모작

워크숍 후반전

워크숍을 진행한 곳은 퇴직한 촬영감독님이 인생 이모작을 시작하며 차린 카페였다. 200평은 거뜬히 넘을 것 같은 드넓은 부지에 자리한 고급 카페는 감독님이 젊은 시절 흘리신 땀의 결실이었다. 자유롭고 행복한 50대를 보내고 있는 그를 보자니, 팀장님들은 생각이 많아지신 모양이다. 회의가 시작되기 전 30여분의 시간 동안 그들은 <우리도 과연?>이라는 주제로 사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요즘은 인생 이모작 시대니까. 원하는게 있다면 지금이라도 새로 시작할 수 있죠."

"그렇긴 한데. 젊었을 때는 돈이 걱정이더니 이 나이 되니까 도전해도 되나 싶고."

"하긴 여기서도 10년이 넘었으니."


젊을 때는 가진 게 없어 걱정이고 나이가 드니 시작이 두려워 걱정이라는 것이다. 스무 살 이상 차이나는 팀장님들의 이야기였지만, 나도 어쩐지 그런 고민이 일부 이해가 될 것 같았다. 고작 23년 인생이라지만, 아무 보장 없는 도전을 시작할 자신은 없었다. 특히 뒤에 짊어져야 할 가족이 있다면, 그 부담이 배가 되는 건 당연한 이야기겠지.


그들의 이야기는 '하긴 해야 하는데~'로 명확한 결론이 나지 않은 채 끝이 났다. 어쩌면 그건 용기에 관한 문제였을지도 모르겠다. 열정이 있지만 확신은 없는 무언가를 도전하는 것도, 만족스럽진 않지만 안정적인 무언가를 내려놓고 새로움을 도모하는 것 모두 용기가 필요한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내 아버지는 굉장히 용기 있는 사람이다. 그는 의사로서의 일모작을 끝내고 신학대학원에 들어가 올해 목사 안수를 받았으며, 얼마 전부터는 IT회사의 상무로 들어가 회사생활을 시작했다. 이른바 이모작, 삼모작의 시작인 것이다. 이렇게 그는 아직도 마음속에 젊은 열정을 품고 산다.


반면 육체의 전성기를 살고 있는 내 마음은 아버지와 감독님의 그것보다 폭삭 늙은 것 같다. 나는 열정보다는 겁이 많았고, 그래서 성실함이라는 무기를 택했다. 남자친구는 항상 내가 '성과가 없어도 열심히 하는 것'이 대단하다 했지만, 사실 거기에는 어떠한 야망이나 대의도 없었다. 다만 시작했으니 포기할 수 없었을 뿐이다. 그간의 노력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인정하는 것 같아서, 그 방향이 틀렸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브레이크를 걸 용기가 없었다. 그래, 적어도 나의 성실함은 상황을 직시할 용기가 없는 소심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나는 감독님을 보던 팀장님들의 눈빛에서 부러움, 그리고 약간의 씁쓸함을 읽었다. 사실 내 눈빛도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아직 일모작의 씨 뿌리기도 못 끝낸 인생이지만, 오늘까지의 삶이 만족스러웠는지조차 자문해 보지 못했다.


어쩌면 감독님이 차린 카페가 주던 웅장함은 땀의 무게가 아닌 용기의 위엄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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