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onZ Mar 29. 2021

인사, 그게 뭐라고.

요즘 것도 요즘 것인 자신이 우스울 때가 있다

나는 늘 회사에서 큰 사고를 칠까 노심초사했다. 정작 실수와 사고는 걱정여부에 상관없이 일어나곤 했지만, 그래도 걱정을 멈출 수는 없었다. 한순간의 실수로 회사에 막대한 피해를 줄 수도 있을 것이라는 걱정이 한낱 헛된 것임을 깨달은 건 입사 두 달 차에 들어서였다. 사회는 걸음마를 시작하는 초년생에게 감당하지 못할 책임을 전가하지 않았다. 큰 책임을 지는 것도 그만한 가치의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조금 늦게 깨달았다.


오히려 내게 사회가 원하는 것은 정말 기본적인 것들이었다. 밝은 인사. 싹싹한 자세. 어른들을 향한 예의. 얼마나 기본 중의 기본인가. 그러나 마냥 쉬운 것은 아니었다. 스스로를 낮추는 것에 거부감이 없던, 남 행복한게 나 행복한 것이라 생각하는 자타공인 착한 사람인 내가 인사예절에 완전히 실패한 두 달을 보내고 만 것이다.


인사를 하기 싫은 것이 아니었다. 그저 습관이 되어 있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인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고서는 고개를 꼿꼿이 들고 다니던 나였다. 내가 인사를 해야 하는 상황은 누군가 선의를 베풀었을 때, 상대의 시선이 나를 향해 있을 때, 의도치 않게 폐를 끼쳤을 때, 음식을 주문하거나 새로운 공간에 들어갈 때 등이었고, 인사 반경이 이것을 넘는 상황은 드물었다. 불편한 자리는 스스로 피했으니 큰 문제도 없었다. 그렇게 20년이 넘는 세월을 예의 바른 아이로 살았던 것이다.


그러나 사회생활은 달랐다. 피할 수 없는 일들이 더욱 많았다. 언제 어디서든 판단할 준비가 되어있는 불편한 관계에 먼저 다가서 인사를 건네야 했다. 몸이 배배 꼬이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초반에는 눈을 피하고 등을 돌리고 슬쩍 고개를 숙이는 등 존재를 숨기기 위한 발버둥을 치기도 했다. 한 순간이라도, 어떤 형태로든 내 존재가 그들의 머리에 남는 것이 싫었다. 존재가 인식된다는 건 인상이 남는다는 것이고, 인상이 남는다는 건 대상을 판단하는 또 하나의 근거가 생긴다는 것과 같으니 인사를 피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평가되기 싫은 소심한 방어였다.


인사 하나 제대로 못하면서 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하는 나를 보며 새삼 내가 얼마나 상처 받기 싫어하는 사람인지, 지금껏 얼마나 많은 상황을 피하며 살아왔는지 느끼게 되었다. 내 짧은 인생 매뉴얼에는 '불편함'이라는 변수에 대한 지침이 없었다. 그러나 후회한들 어쩌랴. 사회는 자꾸 나를 불편한 관계에 매어놓는다. 그런 사회에 스스로 발을 들여놓았다면, 이제는 내가 바뀌는 수밖에. 유치원 때부터 배웠던 인사예절이었는데, 이렇게 쩔쩔매고 있는 자신이라니. 헛웃음이 나왔다. 인사, 그게 뭐라고.


생각보다 세상은 대단한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는 유치원에서 배웠던 것을 가장 열심히 갈고닦을 필요가 있었다. 세상이 흔히 말하는 '요즘 것'인 나는, 어른들이 생각하는 가장 쉬운 일들을 해내기 위해 오늘도 고군분투한다. 당연한 것들이기 때문에 더 익숙해지려 노력한다.

 

그러니 주변에 어른을 대하는 게 서투른 신입이 있다면, 조금만 더 넓은 마음으로 기다려 주길 바란다. 요즘 것들도 요즘 것들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고민한다. 요즘 것들도 요즘 것들인 자신이 우스울 때가 있다.

이전 06화 명함 같은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