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3.6.9 일태기의 법칙
어른들이 하는 말 틀린 게 없다더니
9년 차 일태기도 비켜가는 법이 없습니다.
지극히 평균적인 인간에 속하는 저는 이 3년 차, 6년 차에 한번 온다는 그 시기를 정면으로 맞았어요. 3년 차엔 능력 없는 내가 이 일을 하는 게 맞나 하는 자아비판, 6년 차에는 몰아치는 일에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현실 비판으로 한바탕 성장통을 치렀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니 세상을 다 짊어진 것 마냥 힘겨워한 제가 귀엽기만 합니다. 다행히도(?) 그 당시 도망가지 않는 선택을 했고 다음 챕터인 9년 차 일태기를 직빵으로 맞게 되었으니 이 또한 견뎌낸 자에게 주는 보상이라면 보상이겠지요?
3, 6년 차의 일태기를 지나는 저는 인사이드 아웃에 나오는 불안이 그 자체였어요. 환경과 생각에 잡아 먹혀 버린 통제 불가 상태. 그런데 9년 차 일태기는 사뭇 다른 느낌입니다. 사람이 이렇게 차분해질 수 있다니! 코 앞에 문제를 해결하는 게 더 이상 의미 없는 일이라는 걸 알아버려서일까요. 오랜 연인과 결혼이든 이별이든 다음 스텝으로 넘어 가기 전에는 격정적인 싸움은 없고 차분한 대화만 오간다던데 이런 상태를 말하는 걸까요? 분명한 한 가지는 저에게 이번 챕터는 ‘나 자신’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이라는 겁니다. 누군가 해결해 주는 게 아닌 내가 내 손으로 넘어야 하는 시기죠.
일의 의미
저는 첫 직장에서 인턴부터 팀장까지 9년을 일했습니다. 이직이 빈번한 시대에 한 직장에서 긴 시간을 보냈으니 이 말을 들으면 신기해하거나, 대단하다고 하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사실 좋게 말하면 끈기, 안 좋게 말하면 안주하는 사람으로 볼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정말로 안주하는 사람이었으면 그 안주라도 누렸을 텐데 저는 그런 깜냥은 안되더군요. 이제 좀 적응이 될라치면 그다음 의미를 찾았고, 역할이 바뀌면 그에 맞는 새로운 성취를 찾아 헤매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월급’ 그 자체만으로도 일의 의미를 찾으며 사는데 저는 왜 그게 잘 안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삶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 마음을 가장 많이 쓰고 있는 곳에서의 의미를 찾지 못하면 왠지 잘못살고 있는 기분이었죠. (전생에 ‘배짱이’였는지 현생에는 꼭 의미 있는 일을 하라고 벌을 받나 봅니다.)
9년 차,
생각보다 긴 일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환경 탓인가 싶어 이직을 하자니 가고 싶은 곳이 없고, 마음 붙여서 다시 힘을 내보자니 마치 자전거 타는 법을 까먹고 발을 헛디디는 사람처럼 어딘가 불편한 느낌입니다. 이 시기를 그냥 흘러가는대로 보내면 두고 두고 후회할 것 같아서 메모장을 열었습니다. 뭐라도 적다 보면 지금의 고민이, 그렇게 찾던 일의 의미가 선명해지지 않을까 하고요. 그럼 이 방황을 끝낼 수 있지 않을까요? 이번 일태기는 그것에 대한 답을 찾는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라고 생각합니다.
3,6,9 법칙에는 다음 숫자가 없습니다. 아마도 9년 정도 일하면 답을 찾았다는 거 아닐까요? 이 길을 걸었던 수많은 직장인 선배님들의 경험 아래 암묵적으로 나온 결과 값이라고 믿어 봅니다. 그 답이 월급 많이 주면 나머지는 ‘아무 의미 없음’을 깨닫는 것 일지라도요. 언제가 끝이 될진 모르겠지만 차근히 기록해 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