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부여와 보상. 그리고 즐거운 회의에 대한 이야기
숨니가 오웬에게
오웬은 요즘 일이 즐거운가요?
얼마 전 점심 티타임에서 제가 했던 질문이에요. 저 스스로에게도 질문해 봤어요. 원래의 저라면 즐거운 일 중 어떤 걸 이야기하지? 고민했을 텐데, ‘일이 그냥 잘 굴러가면 되지 꼭 즐거워야 해?’하고 반문부터 불쑥 나오는 걸 보면 요즘은 일이 즐겁지 않은가 봐요.
오늘은 ‘동기부여’ 대한 이야기를 해볼게요.
모든 대행사의 일이 그렇듯 프로젝트가 우리의 열심과는 무관하게 흘러가는 경우도 많고, 팀으로 함께 일해서 좋지만 어떨 때는 모두가 내 맘 같지 않을 때도 있잖아요. 야근이 지속될 땐 일찍 퇴근해서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는 친구들의 SNS 피드를 보고 나는 언제까지 이래야 하나 싶기도 하고요. 오웬도 그럴 때가 있나요?
팀장은 팀 구성원을 살피는 사람이에요. (팀케어의 시작은 눈치 보기라고 생각해요) 기분을 살핀다기보다 생각을 업으로 하는 저희는 개개인이 얼마나 밀도 있고 애정을 갖고 임하는지가 곧 결과물 퀄리티를 좌우하니 팀이 몰입도 있게 일할 수 있게 환경을 만드는 것도 중요한 역할이죠. 저는 제 경험을 토대로 몰입의 가장 큰 동인을 첫 번째 효능감, 두 번째 즐거움이라고 생각해 왔어요.
요즘은 이 또한 내 기준이지는 않나? 하는 생각을 해요. 말은 좋지만 동기부여라는 게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과 의지의 영역이니까요. 어떤 사람은 무조건적인 칭찬에 효능감을 느끼기도 하고, 개선 피드백에는 내용에 상관없이 좌절하죠. 어떤 사람에게 일은 일상을 침범하지 않을 정도의 일이 적당하고, 나아짐보다 완료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수 있고, 반대로 나를 몰아세우고 이겨냈을 때 성취를 느끼는 사람도 있고요.
동기부여라는 게 환경이 만들어 줄 수 있는 걸까요? 아니면 오로지 개인의 의지에 달린 걸까요? 후자라면 어떻게 내적 동기부여를 하나요? 전자라면 팀장이 동기부여를 위해 도울 수 있는 게 있나요? 만약 환경이 동기부여를 해줄 수 있을 때 (회사든, 상사든) 오웬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동기부여는 어떤 거예요? 아마 많은 리더들이 고민하는 부분이라 생각하는데, 관련해서 동기들과 혹은 회사 친구들과 나눈 이야기가 있다면 같이 이야기해 주세요! 팁을 얻어 저도 열정의 불씨를 다시 살려볼게요!
오웬의 답장
숨니, 오늘도 좋은 고민거리 감사해요.
프로열정러 숨니께서 '일이야 굴러가면 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니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팀장님이라는 위치에 계시니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에 더해 팀원들의 만족이라는 관점까지 더해지니 숨니의 일상에는 좀처럼 여백이 느껴지지 않네요.
저는 며칠 전 숨니와 같이 글을 써보자는 이야기를 나눈 뒤 그날 밤 설렘 반 기대 반의 마음으로 친한 친구에게 저희의 프로젝트를 간략하게 설명해 줬어요. 어린아이처럼 신나게 설명하는 저의 표정과 달리 친구의 표정은 궁금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던 설명을 멈추고 친구에게 “왜? 흥미롭지 않아?”라고 질문을 건넸었죠.
그 물음에 친구는 "그 프로젝트를 통해서 넌 무엇을 얻을 수 있어?"라고 답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상치 못한 반응에 당황해하며 "올해가 가기 전에 내 생각을 기록으로 남겨서 회사에 종속된 결과물이 아닌 내가 온전히 소유할 수 있는 작업물을 남기고 싶어서?"라고 해명 아닌 해명을 했었죠. 그래도 무언가 해소되지 않는다는 친구의 표정에 제가 반문을 했습니다.
내가 이 프로젝트로
월 100만 원씩 받아오면 어떨 거 같아?
그러자 친구는 무언가 명쾌해졌다는 표정으로 "아 그럼 당연히 해야지"라고 답했습니다. 이 짧은 대화엔 결코 정답은 없는 거 같아요. 각자가 일에 대한 동기는 어떻게 얻는지 관점이 다를 뿐이고, 또 효능감을 느끼는 이유조차 다른 것이죠. 참 재밌지 않나요? 가만 생각해 보면 이런 관점의 차이는 동기들과의 점심식사 간 나누는 대화에서도 숱하게 찾아볼 수 있어요. 한 친구는 스스로를 ‘코덕(코스메틱 덕후)’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화장품 카테고리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코스메틱 브랜드 캠페인을 진행하게 된 것만으로도 강력한 동기를 얻기도 했었고요, 한 친구는 처음으로 메인 AE 역할을 맡게 되어 '성장'에 대한 기대감으로 동기를 얻기도 했어요. 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쉽지 않을 거라 입모아 말하는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는 것을 목표로 동기를 얻는 친구도 있었죠.
세 친구들의 '동기부여' 모두 '이게 요즘 애들의 동기부여야!'라고 단정 지을 순 없을 것 같아요. 다만, 동기부여의 원천이 효능감, 즐거움 등 보편적인 단어로 떨어지기보다는 꽤나 상세한 상황과 명확한 보상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결국 그들에게 동기부여는 노력이라는 인풋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명확해지는 순간에 불꽃이 터지기 시작하는 것이죠. 최근 제가 재밌게 읽고 있는 송길영 박사님의 <시대예보: 호명사회>라는 책이 있는데, 읽어 보셨나요?
이 책에서는 현대 사회를 시뮬레이션 과잉 사회로 명명하고 있어요. 되게 그럴싸한 정의 아닌가요? 흔히 게임에서 많이 쓰이는 단어인 시뮬레이션, 가상의 공간에서 실제로 우리가 하기 힘든 일을 미리 해보고 그 결과도 알아보는 것이죠. 현대인들은 어떤 일, 나아가 단순한 선택을 하는 순간에도 시뮬레이션 과정을 거친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명확한 보상이 보이지 않으면 행동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 챕터의 골자였어요.
앞서 말한 제 주변인의 동기부여와 비슷한 구석이 많지 않나요? 돌이켜 생각해 보니 제가 숨니와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도 손에 잡히는 '책' 이라는 명확한 결과물이 있어 시작한 것 아닐까요?
숨니도 저와 비슷한 시대에 성장을 해왔던 사람으로서 공감하시겠지만 회사라는 조직에 구성원이 되기 전 우리의 삶은 능동보단 수동에 꽤나 가까웠던 거 같아요. 공부를 하는 이유도 순수하게 학문을 탐구하고 싶은 마음보다 직면한 시험에 '대응'하고 '점수'라는 평가지표에서 상위의 스코어를 달성하기 위함이었죠. 그렇기에 우리의 동기부여는 늘 명확했던 거 같습니다. 평균 80점, 평균 1등급 등 노력을 통한 결과물이 숫자로 치환됐던 삶을 살았기 때문에 명확한 보상에서 기인한 동기부여가 아닌 때 묻지 않은 열정에서 오는 순수한 동기부여를 기대하는 것이 오히려 어불성설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결국 성인이 되고 직장인이 되어서도 그 관성을 바꾸지를 못했습니다. 어떤 프로젝트를 마주하게 되면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난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시뮬레이션을 시작하고, 이를 통해 보상이 확실히 그려지면 동기부여의 불꽃이 튀기 시작하는 것이죠. 반대로 시뮬레이션을 통해 보상이 그려지지 않는다면 주인의식보다 관찰자의 시선으로 프로젝트를 대하게 되는 것이고요. 숨니 제 이야기가 너무 인간미가 없이 느껴지지 않나요? 네, 저도 틀림없이 인간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어릴 적부터 경쟁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시골에서 유년기를 보냈어요. 그래서 옆에 친구보다 킥보드를 더 빨리 타고 달릴 필요도 없었고, 유치원도 면에 하나만 있어 똑같이 배우고 똑같이 혼나는 삶을 살아왔어요. 그렇기에 저는 오히려 인간의 유대에서 대부분의 동기부여를 받는 사람으로 커왔기 때문에 처음에는 '보상'을 원하는 주변인의 사고가 쉽게 받아 드려지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입사 2년 차가 된 요즘은 주변 동료들의 마음이 어떤 생각에서 출발하는 것인지 깨닫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도 결국 구성원과의 유대를 통해 '관계 속 인정'이라는 명확한 보상을 바라보고 달려온 것이지 않나? 싶기도 해요.
숨니, 작년 이맘때 진행했던 의류 브랜드 캠페인을 처음 저희 팀에 배정하실 때 대표님께서 "숨니야 000 대표님께서 예전 캠페인을 너무 잘해줘서 숨니가 꼭 이 브랜드를 맡아주면 좋겠대"라고 말씀 주셨던 거 기억나시나요? 저는 그때 숨니의 환하고 뿌듯한 표정을 잊을 수 없어요. 그 한마디가 어쩌면 숨니의 노력에 대한 명확한 보상이 아니었을까요? 어느 하나로 답을 내릴 순 없지만 '내가 느끼는 명확한 보상'이 요즘 세대의 가장 확실한 동기부여가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그것이 극단적으로 돈에 대한 이야기일지라도요.
오늘도 서투른 이야기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숨니의 답장
오웬 답지 않은? 냉정한 답장이라 정신이 번쩍 들어요!
노력을 투자하는 것에 대한 명확한 보상.
그 보상이 어떤 건지, 그래서 동기부여가 되는지는 오로지 나의 기준.
오히려 명쾌한데요?
저에게는 누군가의 인정, 효능감이 큰 동기부여인데 누군가에게는 그게 큰 중요한 요소가 아닐 수 있겠네요. 명확한, 공정한 보상이 중요해지는데 각기 다른 지향점을 가지고 일하니 참 어렵네요. 관계, 성장, 보람, 즐거움 등 사사로운 가치를은 이제 보상에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일까요?
오웬의 답장
숨니, 답장에 답장을 보내요
저는 숨니와 제가 몸담고 있는 조직이 좋은 이유는 세상이 변하고 세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을 가치인 ‘배려’와 ‘존중’을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하는 조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그런 면에서 숨니와 제가 비슷한 가치를 공유하고 있기에 이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게 되었고요.
답변을 쓰고 조금은 찝찝? 하기도 하고 씁쓸한 마음에 다시 송길영 박사님의 <시대예보:호명사회>를 펼쳐보았어요. 시뮬레이션이 과잉되면 ‘현타’와 ‘번아웃’이 온다고 하더군요. 뿐만 아니라 이런 상태가 반복되면 극한의 수동적인 사람으로 변할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즉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 이유는 우리의 삶은 획일화된 시뮬레이션으로 예측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변수를 안고 있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팀원이 지치지 않고 오래도록 함께하기 위해서는 보상 그 이상의 가치를 알려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어쩌면 그 가치의 아름다움을 모르기에 당장의 보상을 원하는 거 아닐까요?
꺼낼 때마다 머쓱해지지만 군대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가 없네요^^; 저는 해병대를 나왔는데, 해병대에서는 조금은 독특한 훈련인 ‘이함 훈련'이라는 것을 합니다. 배가 침몰하는 것을 대비해 갑판(배의 평평한 바닥)의 높이에서 뛰어내리는 훈련으로 7m 높이에서 차례로 다이빙을 해야 하는 것이죠.
이때 참 재밌는 상황이 펼쳐집니다. 악으로 깡으로 모든 훈련을 버텨낸 친구들이 ‘고소공포증’이라는 단순한 이유로 시체인지 사람인지 헷갈릴 정도로 창백한 얼굴이 되어 온몸을 떨게 됩니다. 한두 명도 아니고 다수가 이렇게 떨어 버리면 훈련 시간은 순식간에 2~3시간은 기본으로 지체되죠. 그래서 훈련을 빨리 지속하기 위해서 교관들은 7m 아래에서 유혹을 하기 시작합니다.
2803번 훈련병!! 지금 뛰어내리면 초코파이 준다!!! 알겠나!!!
그럼에도 2803번 훈련병은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압도적인 공포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러한 압도적 공포를 이겨내는 건 의외의 것입니다. 바로 뒤에서 함께 떨고 있는 동기의 손이요. 미친 듯이 떠는 손을 조금은 덜 떠는 손이 잡아줬을 때 신기하게도 훈련병 입술의 혈색이 돌아옵니다. 너무 신기하지 않나요? 훈련병에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초코파이보다 동기의 따뜻한 손이 마음을 안정시켜 준다는 것이요. 원하는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상황이 반복 될 때 팀원들은 ‘현타’나 ‘번아웃’을 겪게 될 텐데 그 순간 이들을 다시 빛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유일한 것은 팀장, 팀원, 동료들의 사랑이자 따뜻한 손이 아닐까요? (이걸 경험해 본 저는 그 힘을 너무x100 믿어요)
제 나름의 결론은 명확한 보상을 통한 동기부여는 이제 바뀌지 않는 대세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보상 그 이상의 가치 (팀워크라던지 협업의 아름다움 등)를 일깨워주는 것이 팀원이 그리고 팀이 건강하게 성장하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숨니가 오웬에게
지난주에 클라이언트한테 메시지 한 통을 받았어요.
팀이 잘 챙겨 주셔서 캠페인이 무탈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감사 인사였죠. 제작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문제들로 번번이 불편한 통화를 했던 터라 그 감사 메시지 하나로 그 간의 고생이 씻기는 느낌이었어요. 광고비를 더 쓴다는 것도 아니고, 추가 프로젝트로 이어진 것도 아닌데 감사 인사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충만한 기분이었어요.
오웬은 언제 ‘보상받았다’는 충만함을 느끼나요?
최근에 선배와 티타임을 하다 ‘우리 업*은 멘탈케어 비즈니스’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광고 대행사) 업무 강도가 워낙 쎄다 보니 계속 열심히 하고 싶은 동력을 만들어줘야 하는 비즈니스 같다고요. 그런데 그 보상이라는 건 각자마다 달라서 그걸 찾는 게 참 어렵다고요. 너무 공감이 되더라고요. 더욱이 우리 일은 답이 없으니, 아웃풋의 끝도 스스로가 정할 수 있잖아요. 어떻게 하면 120%를 쏟을 마음이 들도록 동기부여를 할 수 있을까요?
직장 생활 고생에는 금융 치료만 한 게 없다고 하지만 그게 보상의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연봉은 1년에 한 번 오르고, 그걸 보면서 버티기에는 매일이 녹록지 않으니까요. 그렇다고 "고생한 거 다 알아" 라는 말로는 왠지 보상받지 못한 기분이 들어요. ‘다 알면 뭐요?’라는 반문만 남죠. 노력에는 공정한 평가와 보상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시대 흐름에 200% 동의해요. 주니어 친구들이 기대하는 월급 외 보상은 어떤 게 있나요? 어떤 ‘보상 도파민’이 주입되어야 지속하는 힘을 만드는지 궁금해요!
오웬의 답장
어려웠던 프로젝트가 잘 풀려가고 있다니 너무 다행이네요!
저도 그 프로젝트의 어려움을 동기를 통해 전해 들었던 터라 저까지 기분이 좋아요 :)
저희가 이전 글에서도 ‘보상’에 대해 꽤나 깊이 있게 이야기를 나누었던 거 같은데요, 보상이라는 것은 직장인과는 뗄 수 없는 존재인 거 같아요. 뿐만 아니라 직장인에게 속성과 맞닿아 있는 금전적 보상의 영역을 벗어나 구성원 각자가 기대하고 바라는 보상을 예측하고 나아가 개인의 성향과 특성까지 고려해 그에 맞는 적확한 보상을 준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금전적 보상은 결국 한정되어 있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지속적으로 팀원들에게 동기부여를 하고 끝을 알 수 없는 곳까지 무한히 팀원들을 끌고 가야 하는 팀장님이나, 다수의 팀장님을 끌고 가야 할 그 이상의 포지션에 있는 분까지 모두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는 거 같고요.
오늘은 ‘요즘 주니어’를 대변하기보다 ‘요즘 주니어’ 중 한 명으로 글을 써 내려가 볼게요.
숨니 혹시 제 입사 면접 이야기를 들으신 적 있으신가요? 대표님과의 2차 면접에서 뜬금없이 눈물을 흘렸고, 대표님이 그 모습을 캡처한 후 멤버들에게 공유해 일파만파 퍼졌었죠. 모두가 그 사진을 보고 저의 주접에 웃음이 터졌지만 아마 제가 그날 왜 눈물을 흘렸는지는 모를 거예요. 저는 늘 스스로를 믿지 못했고 칭찬을 받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삶을 살아왔어요. 그랬기에 취업을 준비하는 모든 과정은 회사를 준비하는 것보다 스스로를 의심하고 질문을 던지는 시간에 가까웠어요. 그렇게 맞이한 대표님 면접도 당연히 자신감보다 주눅이 든 상태로 임하게 되었죠.
대표님의 첫 질문은 “5분 동안 자유롭게 자기소개를 해주세요”였어요. 간단한 질문만 있을 거라는 안내와 달리 갑자기 들어온 자유로운 자기소개에 말문이 턱 막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사실 1차 면접과 똑같이 자기소개를 하면 되는 것인데 왜 말문이 막혔을까 싶지만 이미 머리는 백지가 되고 준비했던 자기소개도 기억이 나지 않아 솔직하게 면접 자리에 오게 된 과정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렇게 아무 말도 없이 제 어설픈 자기소개를 들은 후 대표님이 첫 마디를 떼셨어요.
어떤 분인지 궁금했고
그간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어요
너무 고생 많으셨어요
이 한마디는 설사 으레 건넨 말일지라도 제 지난날의 노력과 이 자리에 오기까지 긴 서사를 온전히 이해한 한마디로 느껴졌어요. 뿐만 아니라 그간 스스로를 괴롭혔던 자기 의심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어깨에 날개를 달아준 계기이자 최고의 보상이었고요. 적어도 저에게 ‘칭찬’은 금전적 보상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지만 칭찬을 칭찬으로 듣지 못하는 성격 탓에 보편적인 칭찬에 크게 동기를 얻지 못합니다. 하지만 저에게 가장 큰 동기를 주는 것은 마치 제 노력의 과정을 훔쳐본 듯한 칭찬입니다.
저의 최애 드라마 No.1 미생. 숨니도 보셨나요? Ep 13에서 정말 칭찬에 인색한 오과장이 크리스마스 카드를 장그레에게 건네는 장면이 나와요. 이후 옥상에서 펼쳐본 카드에는 짧지만 강력한 한 마디가 적혀있죠.
저는 짧은 저 한 줄이 계약직 장그레의 인생을 바꿔줄 한 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위의 댓글과 같이 평생 바둑만 보고 살았고 바둑을 포기한 후 '열심히 하지 않아 세상에 버려진 것이라고' 생각했던 장그레의 지난 후회의 시간, 계약직으로 정규직들 사이에서 살아남고자 했던 노력의 시간을 온전히 보듬어주는 칭찬이라 생각이 되었거든요. 노력에는 공정한 평가와 보상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시대 흐름에 저도 일말의 의심 없이 동의합니다. 하지만 올해도 제가 낙오하지 않고 연말까지 열심히 달려올 수 있었던 이유는 금전적 보상보단 노력의 과정을 훔쳐본 듯한 칭찬 한마디가 아니었을까요? 끝으로 제가 하반기를 지치지 않고 달려올 수 있도록 해 준 한마디를 소개해 드리며 글을 마무리할게요.
오웬, 주말 늦게까지 고민했겠구나.
고생 많았어
늘 섬세하게 팀원을 바라보는 팀장님이 제가 준비해 온 문서를 보시고는 건네신 말씀이었죠. 그 한마디를 들은 저는 '주말의 고민이 쓸모없는 방황, 헛된 시간이 결코 아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모든 피로가 한방에 풀리는 듯했습니다. 정말 최고의 보상 아닌가요?
오웬이 숨니에게
숨니에게 누군가가 이 업이 왜 좋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답을 하시나요?
저는 '관성적으로 업을 대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답을 해요. 굉장히 이분법적인 생각일 수도 있지만 우린 주어진 과제를 꼭꼭 씹어보고 음미도 해보고 나름대로 재해석을 해보는 직업이잖아요? 그래서 다른 직업들이랑 참 다르다는 생각을 했어요. (특히 '브리프 챌린지'라는 단어를 들을 때면 이 업을 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표현하기 가장 좋은 단어라고 생각해요) 그러던 중 이런 우매한 우월감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제 머리를 아주 강하게 내리치는 옛날 뉴스 기사의 한 토막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드라마는 예술이 아니라
한 시간짜리 엔터테인먼트이기 때문에
남의 돈으로 예술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
신데렐라 드라마를 쓴다
김은숙 작가님이 드라마를 쓸 때의 마음가짐이라고 하더라고요. 이 철 지난 기사를 보고 저는 곧바로 업무용 PC를 켠 후 2년 간 쌓아온 문서들을 쭉 훑어보았습니다. 그간의 제가 쓴 기획서, 카피 등을 다시금 곱씹어보니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클라이언트의 입맛에 맞는 전략과 크리에이티브를 한다면 나는 이 일을 왜... 해야 할까?'라는 궁극적인 질문과 함께 반대로 서비스의 주체를 무시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는 것이 올바른 행동일까?'라는 생각이 상충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간 이 업이 자아실현과 직업적 특성의 애매한 경계에 있기에 매력적인 일이라고 생각해 왔어요. 그러나 판매하는 제품을 더 잘 팔리게 만드는 광고의 본질을 잊은 채 오로지 제 욕심만 채우기 위해 달려온 지난 2년이 공허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예시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작년 이 맘 때 숨니와 함께 했었던 브랜드 캠페인이 생각이 나네요. 비슷한 카테고리 브랜드만 반복해서 진행했던 터라 팀원들 모두 새로운 브랜드, 그것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브랜드 캠페인을 맡게 된다는 소식에 굉장히 들떠있었죠. 그래서 저희는 기존에 본 적 없는 아주 도발적이고 색다른 영상을 위해 너 나 할 거 없이 몰입해 제안을 준비했었던 거 같아요. 그렇게 제안했던 크리에이티브는 힙합씬에서 새로운 획을 긋고 있는 힙합크루와, 청춘에게 잔잔하지만 울림 있는 메시지를 던져 매번 화제가 되는 중년 엔터테이너와의 아주 이색적인 조합으로 풀리는 크리에이티브였습니다. 그러나 이 안을 받아본 클라이언트는 난색을 표했었습니다. 너무 독창적이고 이색적인 조합이기에 현 브랜드 상황과 맞지 않다고요. 더불어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메가 셀럽으로 모델을 변경해 줄 것을 요청했죠.
그런 피드백을 들은 전 마음속으로 “아 이러면.. 그냥 흘러가는 그림이 될 텐데…”, “우리가 제안한 조합이 진짜 트렌디한 조합인데”, “대표님이 나이가 많으셔서 모르시는 거야..”라는 불만 가득한 말만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광고업을 계속 이어 나가면서 이런 힙한 브랜드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라는 조바심에 더더욱 저희 제안을 포기하고 클라이언트의 의견을 수용하고 싶지 않았어요.
시간이 지나고 되돌아보니 저는 늘 클라이언트의 요청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우리만의 방식, 우리만의 시선을 담아내 클라이언트가 상상도 못 한 그 이상의 결과물을 안겨주고 싶다는 욕심이 매우 강했던 거 같아요. 과제 수행을 넘어 모두가 생각지도 못한 크리에이티브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모여 결과물을 만드는 게 제 업의 지향점이거든요. 그러나 당시 저희 크리에이티브는 클라이언트가 기대하고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의 범주를 넘어버린 크리에이티브였죠. 이후에 절충안을 찾는 과정이 있었고, 최종적으로는 정리된 안에 클라이언트는 매우 흡족해했어요. 캠페인 결과도 좋았고요. 그럼에도 제 마음속에는 여전히 큰 아쉬움이 남아요. '우리가 처음에 제안했던 안으로 갔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일반 소비자들은 물론이고 광고인들 사이에서, 또 흔히 ‘뭘 좀 안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좀 더 회자되는 캠페인이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만일 업이 자아실현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면 제 커리어가 끝날 때쯤 과거를 돌이켜보며 지금 이 업을 선택 한 것, 노력을 쏟는 이 시간들이 제 스스로에게 만족스러웠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혹은 업과 자아실현. 이 두 가지는 공존할 수 없는 것일까요? 아니면, 이것도 결국 연차가 해결해 주는 것일까요? 일이 과제 수행을 넘어서 자아실현의 수단이 될 때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저에게 숨니의 냉철한 답변이 너무 나도 필요한 시점입니다.
숨니의 답장
오늘 질문을 받고 왠지 웃음이 났어요. 진지한 고민인데 미안해요!
저는 오웬과 정반대 관점을 가지고 같은 고민을 했었거든요
클라이언트가 대행사를 왜 쓸까?
참신한 아이디어 기대하고 쓰는 거 아냐?
아니면 직접 했겠지!
저는 ‘어떻게 저런 아이디어를 생각했지? 미쳤다’라는 댓글이 달리는 히뜩한 아이디어가 이 업에서 요구하는 일(=예산을 투자하는 이유)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아니면 브랜드에서 직접했겠지!) 어디서 광고일 한다고 하면 ‘참신한 아이디어 좀 내봐’ 그러잖아요. 광고인의 제1 덕목은 참신함이라고 생각했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 광고회사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저는 그 덕목과는 거리가 좀 먼 사람이었어요.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미팅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관점으로 아이디어를 펼치는 사람을 보면 매번 주눅이 들었어요. 왜 내 생각 회로는 논리적인가, 브리프에 꼭 맞는 아이디어만 내는가, 세상을 놀라게 할 아이디어는 다시 태어나야 낼 수 있는 것인가 하고 자괴감에 빠지는 일이 허다했죠. 아이디어를 까는(*준비한 아이디어를 발표하는) 전체 미팅에 들어가면 준비한 제 아이디어가 부끄러워서 목소리가 기어 들어갔어요. 미팅에서 나오면 분해서 속이 쓰렸죠.
1, 2년 차 때 자괴감에 허우적 되다가, 3년 차 정도 되니 반발심이 생기더라고요. 제가 그런 아이디어를 낼 능력이 없으니 일종의 자기 합리화의 단계로 넘어갔달까요. 비싼 돈 주고 광고 만드는데 매출이 중요하지, 어워드 위닝이 중요한가? 상 타려고 광고하나? 조회수는 잘 나왔지만 그래서 제품이 안 팔렸다는데 이 광고는 과연 성공했다고 할 수 있나? 저 글로벌 케이스는 어차피 국내에서 현실적으로 할 수 없는 크리에이티브 아닌가? 자기 돈 아니라고 이렇게 무책임해도 되나? 선배들 붙잡고 분통을 터트리며 이런 이야기를 엄청 했어요. 제가 생각하는 이 업의 '정답안'은 반대편에 있지만 그때는 어린 마음에 제 능력도 이 업계에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것 같아요.
서로 생각하는 정답이 다르니 본질적인 질문부터 해볼까요?
광고업에서 좋은 크리에이티브의 정답을 뭘까요?
제 답장을 읽고 오웬은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네요!
한창 자괴감에 빠져 있을 때 선배 한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우리 예술하는 거 아니잖아.
우리가 하는 일은 명확한 목표가 있고
브랜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소비자가 듣고 싶은 이야기로 바꿔주는 일이지
처음에는 저 말이 ‘보고 싶은 광고를 만드는 것’으로만 들렸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그것 만큼 중요한 역할들이 보였어요. 우선 브랜드가 목표하는 바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브랜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정리할 수 있겠죠? 그다음에는 수많은 이야기 중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선별해 내는 사람이 필요하고요. 그리고 이 이야기를 들어줄 준비가 된 사람이 누구일지를 찾는 사람도 필요하고, 그 사람들이 뭘 좋아하는지 잘 아는 사람이 있다면 듣게 할 확률이 올라가겠죠? 이렇게 필요한 역할을 세세하게 나누다 보니 ‘A와 B중 어떤 게 좋은 크리에이티브인가’하는 좁은 관점에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아이디어는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방향으로 시야가 완전히 바뀌었어요
그럼 사람들이 보기만 하면 마냥 좋은 광고일까요?
식당에 가서 어떤 음식을 시켰는데 물컹거리는 식감이 싫어 당근을 빼달라는 손님에게 당근이 제철이라 아주 맛있다고, 이 고기는 당근과 같이 먹어야 진가를 알 수 있다고 이야기한들 당근을 못 먹는 손님 입장에서는 그 말이 들릴까요? 그 사람이 산 건 내가 필요한 한 끼 식사지, 셰프의 주관이 담긴 요리가 아닌걸요.
클라이언트와 대행사는 파트너예요. 평가는 클라이언트가 아닌 시장이 하고요. 같은 목표를 보고 저희는 좀 더 소비자 사이드에서, 클라이언트는 브랜드 사이드에서 고민하는 거죠. 그래서 우리보다 이 제품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한 사람의 관점, 여러 마케팅 플랜 중 이번 캠페인이 해줘야 하는 역할을 잘 아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는 아이디어를 사 줄 사람의 '입맛 맞추기'가 아닌 캠페인 목표에 더 가깝게 가기 위함이고, 클라이언트가 바잉 하는 아이디어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고 생각해요.
5년 전, 제가 대리 시절 했던 캠페인 이야기를 해 드릴게요.
그 때 제 팀장님은 위에서 언급 한 ‘저는 다시 태어나야 낼 수 있는 아이디어를 내는 분’이셨죠. 제안 자체가 순탄치 않았고, 고객사도 담당자도 까다로워서 굉장히 어려웠던 프로젝트로 기억해요. 몇 번의 재제안으로 팀은 지쳐갔고, 늦게까지 아이데이션을 하다 이제는 정말 밑바닥까지 파봤다 싶을 무렵 팀장님이 반포기 상태로 “(마음에 안들지만)그냥 가자”라고 하신 아이디어가 있었어요. 불행하게도(?!) 클라이언트는 그 아이디어를 샀고 저희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노력을 위안 삼으며 실행했죠.
그런데요. 그 캠페인이 라이브 하자마자 엄청난 뷰와 댓글 수를 기록하면서 속된 말로 터진 거예요. 캠페인 목적이 소비자와 가까워지기 위한 목적의 캠페인이었는데, 인게이지는 물론, 해당 분기 매출은 우상향 했고, 상도 여러 개 받았죠. 사실 세상에 나오기 전에 저희 마음속에는 버린 아이디어였는데, 결과론적으로는 저희 팀에게는 정말 큰 성취를 안겨준 캠페인이었어요. 브랜드 잘한다, 기획자 상 줘라 하는 댓글들, 내돈내산 제품을 사서 직접 컨텐츠를 찍어 올리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이래서 내가 광고하지 라는 생각이 들 만큼 너무 기뻤죠. 그 팀장님과 캠페인을 추억하며 그날 포기한 우리에게, 우리의 안목을 믿지 않은 클라이언트에게 고맙다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어요.
내 마음에 드는 아이디어가 팔리지 않으면
자아실현이 안 되는 걸까?
저는 다양한 창작자들이 모이는 일러스트 페어 같은 전시를 자주 가는데, 거기 가면 ‘왜 저 부스에 사람들이 북적일까?’ 하는 부스들이 있어요. 저는 매력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 진가를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는 거예요. 우리는 대중을 대상으로 크리에이티브를 만들잖아요. 내가 좋다고 확신했던 아이디어가 남에게는 어렵거나, 취향에 맞지 않을 수 있죠. 반대로 내가 별로라고 생각했던 아이디어가 남에게는 엄청난 영감을 주는 아이디어 될 수도 있고요.
아이디어에는 정답이 없다는 말이 있잖아요. (이 업에서 정답은 결과론적인 것이고, 과정은 최선을 다 할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저라면, 제 아이디어에 확신이 있다면 디렉터가 혹은 클라이언트가 크리에이티브를 사지 않았다고 실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클라이언트가 혹 할만한 크리에이티브로, 도전적이지만 결과가 기대되는 크리에이티브로 한번 더 만들어보는데 걸어볼 것 같아요.
선배에게 들었던 우리 업의 정의를 다시 떠올려볼게요. ‘명확한 목표가 있고, 브랜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소비자가 듣고 싶은 이야기로 바꿔주는 일’. 이 말은 취향의 영역이 아닌 설득의 영역이라는 말이기도 해요. 이 아이디어가 너무 도전적일 수 있지만 이 브랜드가 돋보이려면 꼭 필요한 방법일 수 있고, 클라이언트가 선뜻 사기 어렵다면 살 수 있는 요소들을 보강하면 되죠. 설득의 근거들을 모으고, 혹 할만한 것들을 보여줘야죠. 이 목표에 가려면 이게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게 해야죠. 모두가 반대했는데 내가 믿고 끝까지 설득해서 팔리잖아요? 그 기쁨이야말로 한 3년 가는 연료가 될 거예요 더욱이, 이 과정을 팀과 함께 치열하게 토론하면서 함께 만들어간다면 우리의 성취라 기쁨은 배가 될 것 같고요.
19년도(제가 4년차 때네요)에 쓴 제 일기예요. 매번 부정적인 첫마디로 미팅의 분위기를 좌우하던 클라이언트를 설득한 순간이었어요. 그저 요청 사항을 반영한 게 아닌 정말 이 캠페인이 잘되었으면 마음으로 팀 모두가 확신을 가지고 설득에 설득을 거듭한 제안이었죠.
사실 주니어 때는 결과물을 통해서 성취를 얻기 쉽지 않다고 생각해요. 캠페인은 사이클이 3개월 정도로 돌아가고, 시장 반응이 직접적으로 보이는 캠페인을 하는 기회도 많지는 않아요. 그리고, 여러 사람들이 함께 만들다 보니 팀의 결과물이지 내 결과물처럼 안 느껴지기도 하고요. 그래서, 작게는 미팅에서 팀장과 사수를 설득해 보는 것에서부터 내 성취(=자아실현)를 찾아보면 좋겠어요. 처음에는 절레절레하던 동료들이 오웬에게 설득되어 ‘너무 좋은데?’라고 이야기해주는 날 꼭 자랑해 주세요!
숨니가 오웬에게
즐거운 주말 보내고 있나요?
지난주는 제안 준비로 야근을 많이 한 주였겠네요!
‘야근’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다 지난주 회사에서의 제 하루를 돌아봤어요. 퇴근할 때 ‘와 오늘 정말 바빴다!’ 하는 날 있잖아요. 아직 일을 시작하지 않은 느낌인데 미팅룸에서 자리에 돌아오니 벌써 5시(*저희 회사는 퇴근이 5시입니다)가 되어 있는 그런 날. 그런 날들은 유독 회의가 많은 날이더라고요.
오늘은 ‘회의’에 대해 이야기해 볼게요.
야근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꼭 언급되는 게 ‘회의’와 ‘보고’죠. 무의미한 회의와 보고만 줄여도 퇴근시간을 당길 수 있다는 기사들이 심심찮게 보여요. 애초에 모두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고 ‘이 회의하지 맙시다’, ‘옳소! 옳소!’ 이야기했으면 이런 불만이 없었을 텐데, 아마 미팅룸에 모인 누군가는 의미 있다고 생각하고, 누군가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해서 그런 거겠죠? 선뜻 이 회의의 무용성을 단정 지을 수 없으니 속시원히 터놓고 이야기하기 어려운 주제가 분명하네요.
저는 회의에 대한 고민을 팀원일 땐 하진 않았어요. 팀원일 때는 회의가 있다고 하면, ‘회의’ 자체에 대한 생각보다 ‘아젠다’만 신경 써서 이런 고민이 없었죠. 주제에 대한 고민들을 들고 가서, 리더가 이끄는 대로 참여하면 됐으니. 옆에서 오늘 회의에 대한 내용을 정리하는 정도가 제 일이었어요. 내가 들고 간 내용이 한 번이라도 언급되면 그저 제 몫을 다한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리더가 되고 나니 회의를 주관하기 전에 ‘이거 꼭 필요한 회의인가?’, ‘다들 바쁜데 유관부서랑 내가 정리하는 게 효율적인 거 아냐?’, ‘다 들어올 필요가 있어?’ 하는 고민이 더해졌어요. 회의가 길어지면 모두가 ‘이 불필요한 논쟁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거지? 빨리 끝내자’라는 눈으로 저를 보는 것 같았어요. 아직 이렇다 할 아이디어가 안 나왔는데 끝낼 수도 없고, 팀원들 눈치는 보이고 누구보다 이 미팅룸을 벗어나고 싶은 건 저 인걸요?
그래서, 웬만하면 아이디어 미팅이 아니고서 의사 결정을 위한 미팅들은 최대한 효율적으로 움직여보기도 했어요. 제가 찾은 방법이었죠. 그런데 그렇게 하다 보니 막내들은 미팅에서 빠지게 되는 일이 잦더라고요. 면담에서 중요한 미팅에 매번 같이 못 가는 팀원이 서운함을 내비치기도 했고요. 그 마음이 이해가 되더라고요. 효율과 비효율을 떠나 미팅에서 이야기를 어떻게 의견 조율을 하는지, 어떻게 의사 결정을 하는지 보는 것만으로도 큰 배움이 될 텐데, 효율이 나중에 더 큰 비효율을 만드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되더라고요.
오늘 질문에 대한 답은 오웬이 저와 아이디어 미팅을 함께 했던 날을 떠올리며 답해주세요! 밤이 깊어 가는 것도 모르게 단어 하나를 두고 감도가 다르다며 치열하게 논쟁했던, 카피 한 줄을 띄워두고 한참을 이야기했던 그 미팅이요. 그 미팅은 우리에게 의미가 있었을까요? 혹은 오웬 자신에게는 어떤 의미를 주었나요? 오웬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회의가 궁금해요. 미팅이 끝나고 문 열고 나오는데 ‘아, 오늘 회의 참 좋았다, 즐거웠다’ 하는 그런 회의요! 좋은 회의라고 치면 GPT에 검색해도 술술 나오는데 그런 정해진 답 말고, 우리 업, 특히 문화적 특수성이 있는 우리 회사에서 경험한 좋은 회의의 관점을 듣고 싶어요.
오웬의 답장
숨니 이 질문을 듣자마자 똑 단발을 하신 저희의 디렉터 한 분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습니다. 인턴으로 입사한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았을 때 일이에요. 디렉터님은 11명의 본부원을 모두 불러 모으셔서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떼셨죠.
직급불문 발언 기회의 균등함
발언량의 동등함을 가져가는 것
이것이 올해 우리 본부의 목표입니다
그때 제 심장은 덜컹 내려앉았습니다. 안 그래도 발언의 양이 적어서 피드백을 받았던 터라 저에겐 아주 강력한 챌린지로 느껴졌거든요. 그래서 스스로 미팅 KPI를 만들었어요. 리더급 의사결정을 위한 미팅이 아닌 한 모든 미팅에서 3번의 발언을 채우고 미팅룸을 나오겠다고요. 이런 마음을 가지게 된 이유는 디렉터님께서 본부의 목표를 이야기하신 뒤 덧붙인 말씀 때문입니다.
미팅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람은
그 미팅에 앉아 있을 이유가 없어요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더라도요
그렇게 저만의 미팅 KPI를 채우기 위해 일명 <1미팅 3발언> 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냥 틀린 말이라도 내뱉으려 노력했고 흐름을 완전히 읽지 못한 발언에 얼굴이 토마토처럼 붉어질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틀린 말이라도 내뱉는 순간 거기서 가지를 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달리고 그 아이디어를 누군가가 이쁘게 포장하기도 하는 놀라운 과정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너무 신기하더라고요. 일개 신입인 내가 미팅에서 조금이라도 의견을 보탤 수 있다는 것이요. 사실 그전까지의 미팅은 제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어요. 리더들의 일이라고 느꼈죠. 오히려 거기서 내가 말을 얹으면 건방지다고 생각하시진 아닐까? 싶었거든요. 그 후로 발언에 대한 자신감이 조금씩 생기고, 또 미팅에서 의견을 이야기 하는 게 자연스러워지니 모든 미팅에 참관자의 마음이 아닌 참석자의 마음으로 임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온전히 저의 일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얼마 전에는 턱수염이 근사하신 디렉터님과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어요. 대화의 주제는 디렉터님이 지금의 아내분과 결혼한 이유였죠. 디렉터님은 지금의 아내분을 만나기 전까지는 배우자와의 대화가 테니스처럼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셨대요. 나의 엉뚱한 이야기까지 모조리 리시브해 줄 수 있는 그런 배우자요. 근데 지금의 아내분은 정말 좋은 포수(야구)라고 하시더라고요. 디렉터님의 장난스러운 질문부터 무거운 이야기까지 모든 이야기를 안정적으로 받아내고 들어주는 사람이라는 거죠. 거기에서 '안정감'이라 표현할 수 있는 포근하고도 깊이 있는 따뜻함은 처음 느껴 보셨대요. '회의'를 주제로 이야기하다 보니 문득 이 대화가 떠올랐어요.
좋은 미팅이 되려면
나는 좋은 테니스 파트너가 되어야 할까?
아니면 좋은 포수가 되어야 할까?
숨니가 말씀 주신 미팅을 돌이켜 보니 저는 숨니의 테니스 파트너였던 거 같아요. 발언이 익숙해지니 숨니의 의견에 되려 반문하는 궁극의 스킬을 써 보기도 했고, 숨니의 강한 스매싱에 허우적거리며 리시브를 시도하기도 했었죠. 미팅의 결과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저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어요. 제 생각을 다 쏟아내는 과정에서 생각의 정리가 이루어졌고, 숨니의 강스매싱에 생각지도 못한 인사이트를 얻기도 했었죠. 하지만, 만일 제가 좋은 포수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으면 숨니가 던진 의견에 "오 좋은 거 같은데요..?"만 반복하지 않았을까요? 그럼 미팅도 빨리 끝나고 정리도 빨리 되어 저희의 퇴근 시간은 더욱 앞당겨졌을지도 모르겠지만 좋은 미팅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숨니가 함께 첨부해 주신 기사를 쭉 읽어보니 “중간에 끼인 연차라 회의에서 의견을 내야 한다는 압박이 강하고, 회의에서 나온 내용을 바탕으로 실무도 주도해야 하다 보니 이에 대한 스트레스가 더 큰 것 같다”라는 인터뷰 내용이 있더라고요. 결국 이들도 랠리를 이어갈 테니스 파트너가 부재했던 거 아닐까요? 제가 생각하는 좋은 미팅은 의견이 불꽃 튀게 난무하는 미팅이에요. 의견의 랠리가 없으면 결국 리더도 멤버들도 아무도 효용성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미팅이 된다고 생각해요. 숨니가 장시간 미팅 이후 느꼈던 허무함도 결국 랠리의 부재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저희 업은 숫자를 다루는 일도, 물건을 찍어내는 일도 아닌 생각을 뱉어내는 일이잖아요. (정답이 없는 무언가에 계속 의견을 보태며 정답에 가까워지는 일) 그런 측면에서 저는 저희의 업이 세상에서 제일 비효율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최대한 이곳 저곳을 디뎌보며 얻는 시행착오, 발견들에서 생산성이 생기죠. 결국, 태생이 비효율인 일에 조금의 효율이라도 찾는 유일한 방법은 멤버들의 불꽃 튀는 발언 랠리에 있다고 생각되고요. 발언을 포수처럼 조용히 받아주는 건 결국 2차/3차/4차 미팅을 만들어내는 비효율의 원인이 되지 않을까요?
문득 똑 단발 디렉터님의 큰 그림이 한번 더 와닿네요. 발언 기회의 균등함, 발언의 동등함. 그것이 좋은 미팅의 시작이자 끝인 거 같아요. 늘 답변의 마지막은 숨니와의 에피소드로 끝나는 거 같아요. 팀 전체가 다른 브랜드 촬영으로 바빴던 날 숨니와 저 단 둘이서 미팅을 가야 하는 택시 안에서 한 대화인데 기억나시나요? '오웬이 무슨 말이라도 해줄 것 같아'라는 말을 들은 순간, 숨니의 든든한 랠리 파트너가 된 저는 미팅을 하기도 전에 좋은 미팅의 기억으로 남았어요.
숨니, 저랑 둘이 가도 괜찮으세요?
음... 몰라? 그런데
오웬이 가면 무슨 말이라도 해 줄 거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