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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과 일하고 싶나요?

우리는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같은 지향점을 갖고 일한다

by 숨니



숨니가 오웬에게

“어떤 리더와 함께 일하고 싶나요?”



오웬, 흑백요리사 봤어요?

(*이 글은 작년 10월 작성된 글 인 점 감안해서 읽어주세요)


매 회 기획력이 놀라웠지만 저는 유독 6-7화 팀전을 재미있게 봤어요. 필드에서 내로라하는 클래스의 셰프들이 팀을 꾸려 경합한다니, 어쩜 이런 생각을 했을까요? 대결의 방식도 재밌었지만 리더의 스타일을 살펴볼 수 있어 흥미로웠는데요 ‘어떤 리더가 팀원들에게 좋은 리더일까?’ 고민이 되더라고요.


제 눈에 띈 이상적인 리더십은 아래 두 셰프에요.

승리를 위해 본인이 그린 그림을 믿고 과감하게 밀고 가는 최현석 셰프

의견을 포용하고 조율하면서 나아가는 트리플스타 셰프


즉흥적으로 꾸려진 팀을 이끄는 두 셰프의 노련한 리더십도 놀라웠지만 연륜 있는 팀원들이 보여준 팔로워십 덕분에 리더가 더욱 빛나 보이더라고요. 최현석 셰프의 의사 결정에 에드워드리 셰프가 끝까지 고집을 부렸다면, 트리플스타 셰프의 업무 배분에 이모카세, 급식대가 셰프가 수용하지 않았다면, 과연 이길 수 있었을까요? 리더는 팀원들이 있어야 존재하고 좋은 리더십은 결국 팔로워십을 만드는 리더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보는 내내 저런 리더와 함께 일하는 팀원들의 생각이 궁금했어요. 흑백팀전을 우리 업에 대입해서 상상해 볼까요? 제한된 시간에 의견을 조율해서 최선의 아웃풋을 내야 한다는 면에서 중요한 비딩 제안을 앞둔 2차 아이디어 미팅 정도가 좋겠네요!


최현석 셰프의 리더십은 본인의 탄탄한 경험을 바탕으로 빠른 판단력을 가지고 가장 전략적인 방안을 제시해요. 그리고, 확신을 가지고 밀고 나가죠. 다만, 프로젝트 성격에 따라 리더의 경험치보다 트렌드를 빨리 읽는 막내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효과적일 때도 있는데, 그 원석을 놓치기 쉬운 리더십은 아닐까요? 특히나 저희 일은 어쩌면 요리보다 더 정답이 없는 일인데 리더의 그림대로 따라가야 하니 팀을 수동적으로 만들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트리플 스타의 리더십은 팀원 모두의 효능감을 높이죠. 그래서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합니다. 다만, 이렇게 모두의 의견을 수용하는 게 좋은 리더십인가?에 대한 회의감도 있어요. 의견을 수용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비효율이 만들어지고 무한 야근 굴레를 만들지는 않을까? 압도적 승리보다는 모두가 행복한, 안전한 방향으로 가는 리더십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역시 모든 건 완벽할 수 없고 양면이 있는 법이죠?


오웬은 두 리더 중 어떤 리더와 일하고 싶나요? 으레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좋은 리더의 정의 말고, 오늘 미팅룸 옆자리에서 같이 치열하게 이야기를 나누는데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샘솟게 하는 리더십이 궁금해요. 챌린지, 동기부여 하지 않더라도 자발적인 팔로우십을 만드는 리더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나요? 저를(ㅋㅋㅋ) 평가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니, 아주 솔직하게 이야기해 줄래요?




오웬의 답장

"지금 저에게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닌데요?"



야근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숨니의 질문을 다시금 읽어보고 있어요.


질문을 읽다 보니 불과 일주일 전까지 대한민국을 들뜨게 만들었던 흑백요리사가 생생하게 떠오름과 동시에 팀전 속 몇몇의 컷들이 제 머릿속을 스쳐가네요. 모든 팀원의 의견을 경청하고 수용해 '협업'을 이끌어낸 트리플 스타, 그리고 본인의 풍부한 경험에서 기인한 직관과 순발력으로 팀원을 '이끌어'간 최현석 셰프까지. 숨니가 건네준 어떤 리더와 함께 하고 싶냐는 질문에 평소 산만한 사고를 즐겨하는 저는 생뚱맞게도 '요리하는 돌아이'님이 떠올랐어요.



흑백요리사를 보는 내내 안절부절못하는 제스처와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불안이를 연상케 하는 눈빛까지 참 저와 비슷한 구석이 많아 참 정감이 가는 캐릭터였어요. 왜 이렇게 정감이 가고 나를 대입하는 지경에 이르렀는지 고민하던 찰나 숨니의 질문이 오히려 저에게 해답이 된 거 같아요.


숨니도 처음이 있었겠지만 비교적 처음에 더 맞닿아 있는 저는 올해로 입사 2년 차, 아직은 풋내 나는 새내기에 가깝죠. 통상 저희가 속한 회사에서 겪는 6개월의 인턴 기간은 아무것도 모르는 채 고개만 끄덕 거리는 백지의 시간이라면 이후의 1년은 정보가 태풍처럼 들이닥치는 정보 재난 사태에 가까웠어요. 그렇게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나니 업에 대해 대단히 전문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뭘 안다고 하기엔 애매~하고 자기 의심의 굴레에 빠지는 2년 차가 되어 있더라고요.


2년 차인 저는 미팅룸에 들어가는 순간 더 이상 오웬이 아닌 요리하는 돌아이가 되어 팀원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러곤 저의 기획서를 보는 리더, 그리고 팀원분들의 눈빛을 보며 "저 눈빛은 심드렁한 눈빛일까?" "드디어 내 기획서의 '킥'을 알아보신 걸까?" 내쉬는 숨소리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장황하게도 썼네?"라고 생각하시지 않을까 하는 불안과 초조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죠.


그러다가 "오웬 내용도 좋은 거 같은데 붙여볼까?"라는 말씀이 들려오는 순간 저는 더 깊이 늪에 빨려 들어갑니다. 분명 확신이 없었던 내용을 수용해 준다는 건 "나의 초조한 마음을 헤아려 주기 위한 배려일까?" 아님 "노력에 대한 일종의 보상일까?" 의도 없는 순수한 이야기에 스스로 살을 덧붙여 망상의 단계로 넘어가는 저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반대로 리더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팀 의견은 좋았는데, 우린 이런 방향으로 가야 해"라고 말했다면 "나는 이 일에 정말 재능이 없는 걸까?" "그럼 내가 팀에 필요하나?"라는 극단적인 결론에 이르기도 했을 겁니다. 이야기에 도움이 될까 해서 흑백요리사 첫 팀전 미션이 끝난 후 인기를 끌었던 밈을 하나 가지고 와봤어요.


ㅇㅇ 20분이라고 몇 번을 물어봐


요리하는 돌아이님이 나폴리 맛피아 님에게 '리소토 쿠킹 안 들어가도 돼요?'라고 무한정 묻는 장면이죠. 이 장면은 요리하는 돌아이님의 반복되는 질문과 나폴리 맛피아 님의 변함없는 답변이 웃음 포인트였는데요, 저는 이 장면에서 회의실에 초조하게 앉아있는 저를 보았습니다.


요리하는 돌아이님의 저 반복되는 질문은 표면적으로 나폴리 맛피아님을 향하고 있었겠지만, 스스로에 대한 불안에서 기인한 일종의 넋두리로 보이더라고요. 저는 저 장면을 보는 순간 모든 팀원들과 리더는 왜 요리하는 돌아이님의 불안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까? 나폴리 맛피아님의 '돼요' 한마디로 모든 것이 정리되는 것일까? 그럼 저기서 요리하는 돌아이님의 역할은 불안&초조 담당일까?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리더가 와서 "나폴리 맛피아님이 나폴리 유학시절 100인분은 거뜬하게 하셨다고 하시니 리소토 쿠킹은 맡겨보고 요리하는 돌아이님은 빈틈없는 어시스트를 부탁해요"라는 짧은 한마디만 해줬다면 요리하는 돌아이님이 불안에 떨 시간을 팀에 더 쓸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숨니, 올해로 2년 차에 접어든 제가 모든 2년 차를 대표할 수는 없겠지만 저연차의 멤버들은 프로젝트의 성과보단 스스로를 향한 불안과 초조에 맞서 싸우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런지 모든 이의 의견을 수용해 팀워크를 이끄는 리더십이냐, 경험과 직관을 바탕으로 한 리더십이냐는 어쩌면 저에겐 당장의 중요한 사안이 아닌 거 같더라고요.


결국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샘솟게 하는 리더는 불안과 초조에 휩싸인 내가 이 조직에서 왜 필요로 하는 사람인지 역할의 부여를 통해 조직 내에서 나의 필요성을 일깨워주는 리더이자 나의 사고와 발언에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무조건적 수용보단 명확한 피드백을, 독단 이전 발언의 기회(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나의 발언이 중요한 거 마냥 들어주는)를 주는 리더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그럼 저는 수용적 태도의 리더를 만나던 경험과 직관으로 팀을 이끄는 리더를 만나던 즐겁게 일할 수 있을 거 같거든요. 이렇게 쭉 적어 내려오다 보니 숨니는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숨니팀에 처음 합류했을 때가 생각이 나네요.



오웬, 우리 팀은 모든 일을 다 같이 한다기보다
각자 맡은 일의 책임자가 되는 구조야
그래서 판단도, 결정도, 책임도 스스로가 직접 고민해야 할 거야


숨니의 스쳐가는 듯한 말 두 마디는 정처 없이 이 팀 저 팀을 떠돌던 저의 초조함과 불안을 잠재우고 '아.. 잘하고 싶다'라는 꺼지지 않는 불씨를 피우게 되는 계기가 되었어요. 게다가 무의미한 야근은 사라지고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내가 책임자인데 자리를 뜨면 쓴다 말인가..? 엣헴) 오늘도 저는 모 제약 업체 비딩을 준비하며 크리에이티브 C안 책임자로 자신 있게 최선을 다한 하루였어요.







오웬이 숨니에게

“어떤 후배와 함께 일하고 싶나요?”



세상에 두 부류의 후배만 남았다고 생각해 보세요

'뭐든 쉽게 잘 하지만 수동적인 후배’ vs ‘늘 서툴지만 열심히 하는 후배’

숨니는 어떤 후배와 일을 하고 싶나요?



뭐든 쉽게 잘 하지만 수동적인 후배

전자는, 맡은 일은 정말 척척 해내요. 결과물이 대단히 탁월하진 않지만 늘 평균치로 해내는 후배예요. 그러나 그 이상의 노력을 기대하긴 어렵고 인풋 그대로 아웃풋이 나오는 수동적인 후배입니다.


늘 서툴지만 열심히 하는 후배

후자는, 뭔가 서툴지만 계속 고민하고 고민하는 후배, 그래서 업무의 속도나 효율이 크게 나진 않는 후배. 그럼에도 뭔가 해보려고 다방면으로 고민하는 흔히 답답하지만 그래도 “애는 열심히 하잖아~”의 표본이랄까요?



이런 질문을 하게 된 계기가 지난번 새로운 팀원이 들어오고 경직된 분위기를 풀어보려 팀장님 주관 하에 밸런스 게임을 한 적이 있어요! 그중 저 혼자 서툴러도 열심히 하는 후배가 좋다고 선택했어요. 그리고 그에 대한 토론을 이어가다 나왔던 의견으로 ‘열정은 개인의 의지치지 팀원이 굳이 응원해줘야 할 속성이 아니라는 것’이에요. (일로 만난 사이, 근데 왜 '응원'? → ㅇㅇ 너무 맞는 말)


그 이후에도 질문을 계속 곱씹고 곱씹어 봤는데요. 저는 여전히 서툴지만 열심히 하는 사람에 마음이 가더라고요. 이 이야기가 사실 좋게 보면 '야 그래도 열심히 하는 놈 떡 하나 더 주고 싶지~'라고 말할 수 있지만 요즘의 기조상 되게 옛날의 덕목인가? 싶기도 해요. 세상은 빨라지고, 그에 맞춰 등장한 다양한 업무툴 (AI부터 협업툴까지)들은 우리에게 더 빠른 결과물, 그리고 더 효율적인 업무를 바라는 거 같아요. 그러니 더욱더 수동적이더라도 맡은 바 딱딱 해내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이 오히려 조직에 더 필요한 사람이 아닌가? 이미 사회는 서툰 열정보다 보장된 능력을 원하고 인재의 성장보다 검증된 인재를 더 선호하고 있지는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아직 부사수를 받아보지 못해서 이런 천하태평한 소리를 하는 것일까요? 그래도 저는 여전히 서툴지만 마음을 모아 일하는 진실된 태도에 힘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도 언젠가 연차가 쌓이고 후배들이 생기면 이 작은 신념은 맥없이 무너질까요? 평생토록 변하고 싶지 않은 이 가치가 더 단단해질 수 있게 만들어주세요. 이번 답변은 숨니가 제 사수라는 가정 하에 들어보고 싶어요! 따땃한 팀장님의 시선이 아닌 연차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 당장 저와 일을 해야 하는 그런 사수의 입장에서요. 숨팀장님의 답변은 쉽사리 그려지지만 숨사수님의 냉철한? 답변은 전혀 상상이 되지 않네요.




숨니의 답장

"그냥 혼자 일하면 안 될까요?"



답은 쉽게 내렸는데 답변을 달기까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오웬은 제게 서툴지만 열정적인 후배와 일하고 싶다는 답을 기대한 것 같아서요^^;


하지만, 따땃한 선배가 되고 싶은 욕심은 잠시.. 내려 두고 솔직한 마음을 써볼게요. 사실 두 명 모두 ‘같이 일하고 싶은’ 후배는 아니에요. (우리 팀 친구들에게 새삼 감사한 마음이..) 하지만, 세상에 후배가 두 명 밖에 없고 반드시 함께 일해야 한다면? 수동적이라도 전자(맡은 일은 잘 해내는 후배)를 선택할 것 같아요.


열정을 높게 사서 끌어주며 함께 성장하는 것? 멋지지만.. 꿈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일터라는 전장에서 여기저기서 나를 찾고, 당장 쳐내야 하는 일들이 산더미인데 총은 못 쏠지언정 짐 들어줄 사람이라도 필요하거든요. 팀장이 아니고 실무를 하는 연차라면 더더욱 인성이 개차반인 후배가 아니고서야 인풋을 주면 안전한 아웃풋을 내주는 후배 정도도 감사합니다 할 때가 많을 걸요? 냉정하지만, 결국 이곳은 학교가 아닌 돈을 받고 다니는 회사고, 우리는 모두 내일 퇴사해서 남남이 되어도 전혀 이상 할 게 없는 일로 만난 사이니까요. 마냥 기다려 줄 순 없어요. 1/n은 아닐지라도 모두가 최소한의 몫은 해내는 사람이어야 하죠.


너무 냉정한가요?

밸런스 게임은 하나를 선택하면 얄짤 없이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지만 제 생각을 덧붙일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해서, 무엇보다 말이 아닌 글로 이야기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서툴지만 늘 열심히 하는 후배

오웬은 아마 서툰 건 단점, 열심은 장점이라고 생각했겠죠? 하지만, 저는 그 ‘열심’ 때문에 이 후배랑 일하고 싶지 않았어요. 태도가 전부라던데 ‘열심’이 단점이라니 이상한가요? 매일 열심히 하는데 성과가 나지 않는다면 어떤 게 문제일까요? 혹시, 잘못된 열심은 아니었을까요? 그저 열심히 하는 스스로의 모습에 취해 자기만족 한 건 아닐까요?


아마 그 후배를 옆에서 지켜보는 사수는 이런 생각이 들 거예요. “하루 종일 열심히 하는 거 같았는데 왜 결과물은 이렇지?(실망) 진짜 열심히 한 게 맞나?(의심) 이건 기본적으로 일센스가 없는 게 아닐까?(포기)” 열심히 애쓰는 건 보이는데 도움은 안되고, 그래도 열심히 한 사람한테 쓴소리는 못 하겠고, ‘잘했다’는 말은 안 나오고, 그래서 겨우 고른 단어가 ‘고생했어’ 일 겁니다. (일은 잘 못하는데 열심히는 하고 심지어 착하기까지 한 후배가 가장 어렵다고들 하죠) 그리고 본인이 다시 하겠죠. 퇴근 시간은 더 늘어나고요.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 다음번엔 시키지 않고, 그냥 내가 합니다. 그게 가장 효율적이니까요. 열심히 애쓴 후배에게는 너무 아픈 말일 수 있지만, 정말 그 후배를 생각한다면 저는 이 말을 해줄 것 같아요. 열심히 하는데 성과로 이어지지 않을 때는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고요.



내 열심은 성과를 내는 열심인가?
지금은 아니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성과를 낼 열심인가?


이 질문은 사수든 팀장이든 ‘남’은 절대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질문이에요.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오직 내가 나에게 냉정하게 던져야 하는 질문입니다. 사실 열심히 했는데 성과가 안나는 상황은 사회 초년생의 어려움 만은 아닐 거예요. 새로운 과업을 만날 때, 연차가 쌓이고 역할이 바뀔 때도 겪죠. 다만, 조금 노련하게 그 상황을 이겨내는 것뿐이에요. 9년 차인 저도 여전히 스스로가 답답할 때 많아요. 그럴 때마다 저는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했어요. ‘열심히 했는데 안 되는 거면 어디서부터 잘 못된 걸까? 이렇게 긴 시간 고민한 게 의미가 있었나? 방향이 잘 못된 걸까?’ 물론 여전히 너무 아프지만, 저는 막막한 게 더 싫었어요.


빠르게 현실 직시하고 방법을 찾는 게 지금 제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우리 일은 무형의 생각을 파는 직업이에요. 많은 인력 투입 없이 효율적으로 일하고, 투자 대비 좋은 아웃풋을 만들면 수익도 올라가죠. 그래서 쏟은 시간과 노력이 얼마인지보다 ‘그래서 성과를 냈냐’가 중요해요. 성과를 보여주고 난 다음에야 ‘열심’이 인정받을 수 있죠. 그럼, 열심히 하는 후배가 같이 일하고 싶은 후배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 먼저, 지금 혼자 애쓰는 시간을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는데 썼으면 해요. 내가 뭘 모르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는 절대 제대로 성장하는 방법을 찾을 수 없어요. 옆을 둘러보며 내가 못하는 걸 뚝딱 해내는 사람, 나는 어려운 일인데 큰 힘들이지 않고 해낸 사람들을 찾아 물어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내가 일하는 방식이 어떤 게 문제인지부터 찾고, 거기서부터 출발해요. 그렇게 관찰하고, 문제를 찾고, 주변 사람들의 노하우를 훔쳐먹다 보면 얼추 흉내를 낼 수 있어요. 그러다 보면 ‘아! 이렇게 하는 거구나’ 하는 감각이 생길 겁니다.


요즘은 회사에서 누가 누구를 가르친다는 게 굉장히 조심스러운 시대 같아요. 남의 성장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죠. 후배들은 사수에게 원치 않은 조언을 듣고 싶지 않아 하고, 선배들은 굳이 내 시간을 내주면서 꼰대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 하죠. 일반화할 순 없겠지만 그런 이야기들이 많이 들리니 후배도 선배도 암묵적으로 그저 각자의 선을 지키며 일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게 매너고 예의처럼 느껴지기도 하죠. 그러다 보니 혼자 끙끙거리며 있는 후배를 보면서도 내가 나서는 게 ‘라떼는’ 식의 듣기 싫은 잔소리, 오지랖처럼 보이진 않을까 하고 말을 아끼게 되고요. 그러다 보니 사회적으로 성장도, 동기부여도 회사가 주는 게 아닌 스스로가 찾는 것이라고 하는 것 같고요.


음.. 쓰다 보니 안타깝지만, 어쩌면 당연한 순리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의 부족함을 깨고자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후배들은 유독 빛나 보이는 것 같아요. 센스, 안목처럼 열정적인 태도도 하나의 재능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다만, 그 열심을 무기로 부족한 역량을 키워야 열심이 의미가 있다는 말이에요.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어느 시기를 넘잖아요? 정말 무섭게 성장합니다. 그리고 어느 연차 이상, 특히 누군가를 이끄는 리더가 되면 수동적이었던 사람과 능동적으로 열정을 가지고 일해왔던 사람의 격차는 분명히 난다고 생각해요. 주니어 때는 열심으로 커버가 될 정도의 격차지만, 고연차에서의 격차는 그간의 시간과 노력이 만든 격차거든요. 하루아침에 좁힐 수 없죠.


리더는 주체적으로 일을 설정하면서 가는 사람이에요. 인풋을 주는 주체가 되죠. 여태껏 시키는 것들만 하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리더가 될 수 있을까요? 그 인풋은 내 것이 아니었는걸요. 수동적으로 일하는 사람은 분명 한계가 옵니다. 반면, 성장하려고 능동적으로 움직인 사람은 그게 몸에 배어 있겠죠. 일도 습관이에요. 나중에는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됩니다. 그때부터는 주도권이 온전히 나에게 있어요. 일이 주어 졌을 때 적당히 할지, 끝까지 해 볼 지도 시작과 끝점을 아는 사람만 정할 수 있어요.


처음은 모두 서툴러요. 연차가 적어서 서툰 게 아니라 첫 후배가 생긴 사수도, 팀을 처음 이끄는 리더도 서툴러요. 당연한 겁니다. 안 해봤으니까요. 다만, 그 서툼 때문에 쉽게 주춤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남 모르게 혼자만 끙끙거리다 지쳐 떨어져 나가지 않았으면 해요. 우리는 팀으로 일하잖아요. 내가 손 내밀면 언제든 도움을 줄 수 있는 동료가 곁에 있다고 생각하면 생각보다 그 서툼의 시기를 쉽게 지나올 수 있습니다. 잘하고 싶다고 배우고 싶다고 손 내미는 기특한 후배를 거절할 선배가 어디 있을까요? 적어도 제가 9년 간 경험한 이 회사 안에서 그런 선배는 한 명도 없었어요. 모두가 자기 노하우를 싹싹 털어 보여주고,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면 두 팔 벌려 도와주는 선배들만 있었죠. (제가 그 선배들 덕분에 밥벌이해 먹고 삽니다) 배우고 싶은 마음을 들고 찾아오는 기특한 후배를 마다할 선배는 없어요. 선배의 시간을 훔쳐먹는 것은 후배가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넘어져서 좌절할 때 지나 온 길을 보지 않고 옆을 보세요. 툭툭 털고 일어나 아무렇지도 않게 가는 사람을 보면 ‘저렇게 다시 가면 되는구나’하고 생각이 심플해집니다.


오웬은 저에게 어떤 후배였나 생각해 봤어요. 여러 모습이 떠오르지만 밸런스 게임으로 선택하면 두 명 중에는 ‘서툴지만 열정 많은 후배’에 가깝네요. ‘수동’이란 수식어를 오웬을 보며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어서요. 어려울 때 늘 도움을 구했고, 잘하고 싶어서 방법을 찾았고, 제가 일을 나눠주고 오웬의 결과물을 받았을 때 미숙 했던 적은 있어도 숙제하듯 해왔다는 느낌은 한 번도 없었어요.


언제는 한창 아이디어 문서 정리를 하며 야근을 하는데, 제 뒤에서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거예요. 유독 잘 풀리지 않는 아이디어이기도 했고, 스트레스받아하는 것 같아서 다른 아이디어들이 잘 준비되었으니 괜찮다고, 그만해도 된다고 이야기했었는데 오웬이 무슨 말했는지 기억나요?



오늘 밥 값을 못했어요


아니 지금, 새벽 한 시까지 열심히 해놓고 밥 값을 못 했다니. 와. 기준이 이렇게 높구나. 팀에 막내가 이런 열정으로 일하는데 얘보다 월급을 좀 더 받고 있을 나는? 하고 저를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이렇게 저렇게 방법을 가져와서 의견을 묻는 후배를 보고 어떤 선배가 그냥 집에 갈 수 있나요? 내 노하우를 다 털어서라도 알려줘야죠. 같이 머리 쥐어뜯더라도 만족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다시 짜야죠. 이런 열심은 저뿐만 아니라 모든 선배들이 환영할 거예요! 이런 마음은 누군가 만들어 줄 수 없는 귀한 마음이라 생각해요.


그런데,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를 끌어내며 일을 하지만 일하다 보면 같이 일하는 모두가 내 맘 같지 않아 지치거나, 내 열정이 누군가에게 부담을 준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일에 마음을 많이 쓰는 게 맞나?' 하는 회의감이 들 수 있어요. (저도 그랬거든요) 그렇지만 절대 의심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닌 오웬을 위해 그 마음을 잃지 않고 계속 나아간다면 분명 남들은 절대 따라 할 수 없는 오웬만의 자산이 될 거예요. 제가 장담할게요! 저는 서툴지만 늘 열정적인 후배가 나중에는 꼭 이렇게 불렸으면 좋겠어요.



처음에는 서툴렀는데
열정과 끈기 하나는 타고나서
선배들이 장점을 싹싹 훔쳐먹고
무섭게 성장한 후배


오웬도 2년 차가 되었으니 곧 후배가 생기겠죠? 언젠가 저처럼 팀을 꾸리는 팀장이 될 거고요. 저는 팀장이 되었을 때 일이 늘어나는 것만 같고, 팀원들 눈치도 봐야 하고, 내가 열심히 모은 노하우를 나눠주는 것만 같아 싫었어요. 그런데요, 오웬을 비롯해서 좋은 팀원들을 만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제 노하우를 훔쳐 먹으면서 훌쩍 크는 후배를 보는 그 기쁨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굉장히 기쁜 일이더라고요. 오웬도 이 기쁨을 꼭 느꼈으면 해요 :) 훗날 오웬의 후배가 될 누군가는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다음 글로 만나요!







오웬이 숨니에게

“숨니버스에 다시 태우고 싶은 승객이 있나요?"



숨니, 주말은 왜 이리도 빨리 갈까요?

너무 잘 쉬어서 너무 빨리 간 것일까요?

오늘은 SNS를 보다가 너무 와닿는 비유가 있어서 하나 가지고 와봤어요.



삶을 버스 운전에 비유한 글, 너무 재밌지 않나요? 삶은 내가 운전하는 버스 같은 것인데 누가 내리고 타든 처음부터 끝까지 않아 있을 사람은 나 하나뿐이래요. 이 비유를 오웬이라는 직장 속 페르소나에 대입해 보니 짧은 2년 사이에도 수많은 승객이 오웬버스를 타고 내렸던 거 같아요. 가지각색의 이야기가 쌓이기도 했고요.


숨니는 어떠셨나요? 9년간 저희 회사 멤버들 뿐만 아니라 클라이언트에 협력사 등등까지 이 업에 몸 담으면서 수많은 승객들이 숨니버스를 타고 내리고를 반복하면서 재밌는 에피소드를 많이 만들었을 거 같아요! 오늘은 숨니버스가 운행하지 않는 주말을 틈타 재밌는 에피소들을 들어보고 싶어요.


1. 다시는 숨니버스에 태우고 싶지 않은 승객은 누구인가요?

타고 내리는 건 우리의 마음대로 되진 않지만요..�


2. 아주 잠깐 탔지만 언젠가 또다시 만났으면 하는 승객은 누구인가요?

회사 사람이 아니더라도 업에서 만나 숨니버스에 탑승한 승객의 이야기라면 누구든 좋습니다!




숨니의 답장

"일의 목적지가 같은 사람"



‘숨니버스’라는 재밌는 비유에

그간 저와 함께 했던 분, 함께 하고 있는 분들이

제 버스에 타고 내리는 모습이 상상됩니다.

(오웬은 아직 타고 있네요?)


인생을 극으로 비유할 때 원래는 은퇴 후 삶을 2막이라고 하지만, 저는 지금이 인생의 2막이 아닐까 싶어요. 은퇴 후 삶이 3막, 4막쯤 되려나요. 저는 제주에서 25년을 살았어요. 제주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대부분 비슷한 친구들과 생활해요. 새로운 친구를 만나도 친구의 친구일 확률이 굉장히 높죠. 모르는 사람을 만나도 인스타그램 친구를 하면 함께 아는 친구가 늘 있을 정도니까요. 그러다 취업을 하고 직장생활을 서울에서 시작하게 되면서 제 버스는 전에 없던 새로운 인연들로 가득해졌습니다.


오웬, ‘시절인연(時節因緣)’이라는 말을 들어봤나요?


불가 용어로 ‘모든 사물은 시기가 되어야 일어난다’는 의미인데, 인연의 시작과 끝도 자연의 섭리로 그 시기가 정해져 있다는 뜻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저는 오웬보다 조금 긴 시간 일을 했으니 ‘업’에서의 만남과 헤어짐을 많이 겪었어요. 입사와 퇴사. 프로젝트의 시작과 끝. 함께 살 붙여서 일하지 않았는데도, 긴 시간을 함께 보내지 않았는데도 기억에 많이 남고 제가 서툰 시기에 만나 아쉬운 인연도 많네요. 그런데 그런 분들을 떠올려보면 시기에 상관없이 하나의 공통점이 있어요. 가고자 하는 일의 목적지가 비슷한 사람들이라는 것. 일을 대하는 가치관이나 태도, 일에 임하는 자세가 비슷하죠. 그래서 그런지 물리적인 시간은 짧았지만 마음 한편에 그 승객 이름을 적어두고 다음에 언젠가 돌고 돌아 다시 만나는 기회가 오길 바라게 됩니다.




지금은 제 버스에서 내렸지만
언젠가 다시 만나고 싶은
VIP 승객들을 소개할게요




#01. 한 마음으로 일했던 파트너, 클라이언트

팀장이 되고 맡은 거의 첫 프로젝트로 기억합니다. 뷰티 브랜드 클라이언트였는데 제가 메인 AE일 때도 프로젝트를 함께 했던 분이셨어요. 이 분과 함께 일하면 대행사와 클라이언트 사이가 아닌 이 캠페인을 성공적으로 함께 만드는 파트너로 느껴졌어요. 이게 당연해 보일 수 있는데, 일하다 보면 결정의 순간에 보고가 쉽게 되는 쪽, 혹은 합의된 캠페인 목표점과 벗어나는 다른 욕심을 채우는 쪽의 선택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잖아요. (물론 여러 내부 사정이 있으셨겠죠?)


그런데 이 분은 늘 우리가 함께 만드는 캠페인이 잘 되는 쪽의 선택을 하셨어요. 진행하면서 변동사항이 발생하더라도, '필요하다면 해야죠, 제가 다시 내부 설득해 볼게요!'라고 이야기해 주셨죠. 설득해 주는 클라이언트가 있는데,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샘솟지 않겠어요? 그렇게 파트너로서 목표를 향해 같이 나아가다 보니 캠페인 결과 역시 좋았죠. 좋은 결과에는 늘 ‘덕분에’라는 말로 감사를 전하셨어요. 지금은 함께 일하지 않지만 팬으로서 그 브랜드를 응원하고 있습니다.





#02. 같이 배아픔을 나누는 부사수

제가 4-5년 차 때였을 거예요. 저랑 2년 정도 차이가 나는 부사수였어요. 아이디어 죽이 잘 맞는 후배였죠. 매일 좋은 캠페인, 케이스를 발견하면 방에 공유하기 바빴죠. 왜 우리는 이런 아이디어를 내지 못했는지 분해하면서 다음 아이디어 미팅에 결의를 다지곤 했어요. 지금도 그 후배와는 ‘새로운 것 보이면 던져주는 카톡방’을 만들어서 안부인사 대신 레퍼런스를 공유합니다. 지금은 다른 업계에서 일하는데 이 친구가 기획한 프로젝트는 꼭 가서 봅니다. 이렇게 재밌게 열심히 끝까지 파는 친구인데 결과물이 얼마나 좋겠어요. 배 아프러, 자극받으러 가아죠.





#03. 가족보다 가족 같은 동료들

올해 (*해가 넘어가서 작년입니다) 유독 마음 품을 많이 썼던 한 해입니다. 마음이라는 게 눈에 보이지 않는 거라 저는 무한하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마음 품을 쏟아보니 어쩌면 물질적인 것보다 더 큰걸 내어 주는 거더라고요. 그래서 올해 가정의 달에는 그간 저에게 마음을 내어주셨던 분들께 뒤늦은 감사 인사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타지생활도, 자취생활도, 회사생활도 모든 게 처음이라 낯선 왕초보 운전사인 제가 답답했을 법도 한데, 클락션을 울리거나, 왜 이렇게 운전을 못하냐며 핀잔을 주신 분이 없었어요. 늘 기다려주시고, 할 수 있다고 같이 다시 해보자고 하는 분들만 있었죠. 그분들에게 저는 ‘회사사람’이었을 수 있는데 가족 같은 마음을 내어주셨어요. 그런데 그런 분들은 일을 대할 때도 그렇게 대하는 분들이었어요. 밥벌이가 아닌 정말 내가 좋아하고, 함께 잘 해내고 싶은 일로. 저는 정말 복이 많은 사람이네요. 그때 나눠주신 마음 품으로 지금도 멈추지 않고 운전하고 있어요. 지금은 그때보다 조금 더 능숙한 운전사가 되었는데, 그분들이 불러주시면 빚을 갚으러 언제든 달려갈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 사이 감사한 분들께 전했던 카톡


반대로 태우고 싶지 않은 승객은 '일의 목적지가 다른 사람'입니다. 주니어 때는 그런 사람들도 모두 품고 가야 멋진 사람, 그릇이 큰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관점이 조금 달라졌어요. 제 스타일이 생기고, 일에 대한 저만의 가치관에 선명해지다 보니 목적지가 같은 승객을 위해서만 시간과 마음을 쓰게 됩니다. 그리고, 모두를 품는 게 목적지가 다른 상대를 위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해요. 목적지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목적지의 버스가 또 있겠지요. 다만, 일의 목적지가 다른 건 타기 전에는 알 수 없고 운행 중에 알게 되잖아요. (타기 전에 알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요. 그쵸?) 저는 목적지가 다르더라도 제 버스에 탔을 때만큼은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타다 보니 원래 가려던 목적지보다 이 버스가 가는 방향이 마음에 들 수도 있잖아요. 끝끝내 마음에 안 들어도 다음에 다시 타고 싶은 버스가 되고 싶을 수도 있고요? (바로 그때 승차거부를 하는 희열이 있습니다)


일로 만난 인연이지만, 좋은 기억과 이야기가 이렇게 차곡차곡 쌓여가는 걸 보면 매일의 출근길 마음 가짐을 단정하게 하고 싶어 집니다. 지난주 금요일 광고인을 꿈꾸는 학생들을 만나는 행사에 다녀왔어요. 10분 단위로 20명이 넘는 학생과 이야기를 나눴죠. 포트폴리오를 리뷰해 주는 자리였는데, 저도 모르게 이 질문을 가장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저희 회사는 어떤 회사 같아요? OOO님은 어떤 분이에요?' 이왕이면 같은 목적지를 가는 사람이 탔으면 하는 마음. 그래야 운전사도, 승객도 즐거운 마음으로 먼 길을 갈 수 있으니까요.


제가 타고 있는 누군가의 버스에 저는 어떤 승객일지 궁금해요. 그리고 제 버스를 타고 내렸던 승객들에게 다시 타고 싶은 버스, 지금 타고 있는 승객들이 언젠가 내릴 시절이 오더라도 참 좋았다고 생각하는 '숨니버스'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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