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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료 감수성을 갖고 있나요?

동료감수성 : 나의 말과 행동에 영향을 받는 동료의 마음을 헤아리는 마음

by 숨니



숨니가 오웬에게

“오웬은 인디언이 된 적이 있나요?”



오웬, ‘인디언’이라는 말이

어떻게 붙여졌는지 알고 있나요?


콜럼버스가 북미 대륙을 발견했을 때 인도로 착각하고 그곳 사람들을 인디언이라고 불렀는데 원래는 ‘북미 원주민’이라는 표현이 맞는 표현이라고 합니다. 누군가의 착각으로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500년이 넘는 시간을 ‘인디언’으로 부르고 있는 거죠. 황당하죠?


요즘은 참 이름 붙이기 좋아하는 시대예요. MZ, GEN-Z, 알파, 잘파와 같이 세대를 하나의 단어로 뭉뚱그리거나, 호명사회, 핵개인의 시대처럼 한 시대를 규정하기도 하죠 하지만, 이런 ‘규정하기’가 불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다수의 특징을 모아 평균적인 모습 이야기 하는 것이지만 100% 그런 건 아니거든요.


회사에서도 흔히 쓰는 두 축의 단어가 있는데요, 꼰대와 젠지 둘 다 긍정적인 단어는 아니네요. 가스라이팅, 번아웃도 일상적으로 많이 쓰는 단어가 되어서겠지만, 왠지 단어로 규정하고부터 가스라이팅 당했다, 번아웃이 왔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늘어난 것 같지 않나요?


저희는 캠페인 라이브 전에 꼭 소셜 이슈, 성인지 감수성 이슈가 없는지(*광고물이 세상이 나갔을 때 혹시나 문제 될 수 있는 부분이 있을지, 미처 고려하지 못한 사람의 마음이 있을지 체크하는 절차를 거친다) 체크하잖아요. 그런데, 정작 매일 일하는 일터에서 우리는 ‘동료 감수성’을 따져본 적이 있던가요? 아마 가족, 연인보다 커뮤니케이션 양은 훨씬 많을 텐데요. 오웬과 이 글쓰기 프로젝트를 하며 제 기억엔 흐릿한... 지나가면서 했던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있는 것에 굉장히 놀랐어요. 그래서 내가 뱉은 말 한마디의 힘이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죠. 저도 저연차 때는 선배가 하는 한마디에 힘이 되기도 하고, 오래가는 상처가 되기도 했는데, 연차가 쌓이며 예민도가 낮아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예민도 낮은 내가 혹여나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진 않았나 하고 돌아보게 되었고요.


오웬은 일을 하면서 ‘인디언’처럼 누군가의 섣부른 규정(일반화)으로 억울한, 속상했던 적이 있을까요? 혹은 우리 회사에서 흔히 쓰는 표현 중 이렇게 바꾸면 좋겠다는 표현이 있나요? 특정한 단어여도 좋고, 선입견이어도 좋습니다. 이번 답장만큼은 아주 아주 날카롭게 부탁해요! 해병대 병장이 일병에게 이야기하듯 다시는 실수하지 않도록 따끔하게 이야기해 주세요!




오웬의 답장

"내가 해봐서 아는데 라는 말을 경계해요“



인디언이라는 이야기 속에 그렇게 재밌는 이야기가 숨어 있을 줄은 몰랐네요. 사실 꽤나 건강한 기업문화가 자리 잡은 이곳에서 숨니가 말씀 주신 내용처럼 누군가를 선입견으로 특정하는 단어는 없는 거 같아요. (온종일 생각해 봐도 말이죠..?) 그럼에도 숨니의 질문에 티클만 한 영감이라도 드리고 싶은 마음에 숨니의 문장을 하나하나 뜯어보았어요. 그러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콜럼버스와 그 일행은 처음 본 대륙을
무슨 근거로 인도라고 생각했을까요?


제가 생각했을 때는 온 지구를 과감하게 들쑤시고? 다닌 경험 탓에 그렇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콜럼버스는 유럽의 가장 선두에서 서서 미지를 개척했기에 콜럼버스가 여긴 인도야!라고 했을 때 그 누구도 의구심을 가지지 못했을 거예요.


‘경험’의 힘은 참 무섭지 않나요? 여기서 경험이라 함은 실패와 성공의 반복을 통해 얻어낸 직감에 가까운 능력일 거 같아요. 그렇기에 어떠한 논리보다 더 강한 설득력을 가지기도 하고요. 모르겠어요. 지금 이 시점에서 제가 생각하는 저희의 업은 모두가 말하듯 정해진 답보다 답이 없는 답을 찾아가는 무한한 여정이라고 생각해요. 숨니도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그렇기에 선배나 선임자의 경험치는 지도가 될 순 없지만 적어도 길을 가늠할 수 있는 나침반의 존재가 되어줍니다. “아! 어떤 답인지는 모르겠지만 저쪽 쯤 답이 있긴 하겠구나” 말이죠.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제가 생각하는 저희의 업은 목적지가 없는 무한한 여정이기에 이따금 길을 잃는 일도 부지기수죠. 그럴 땐 노를 젓는 사공 중 한 명인 저도 여정의 방향성에 말을 보태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비록 긴가민가한 의견일지라도 용기를 내서 던져보는 것이죠.


그러나 간혹 ’경험치‘라는 판단 기준으로 의견이 수용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물론 경로를 한번 틀면 정말 미국땅을 가야 할 것을 인도로 갈 수도 있기 때문에 선배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의사결정의 반대편에서는 “아 그럼 이런 의견도 안 되겠구나”라는 조금은 위험한 생각과 판단 기준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이런 생각이 한번 싹을 틔우게 되면 거듭해서 제 안에 있던 가능성에 대해 의심을 하게 됩니다. “이 아이디어는 예상 비용이 빠듯해서 어렵다고 하시겠지?” “이 전략은 이전 클라이언트 경험상 셀렉하기 어려운 전략이라 매력적으로 보시지 않겠지?”와 같이 말이죠. 결국 단어만 떼어 놓고 보았을 때 경험치는 가능성의 대척점에 있는 단어인 거 같아요. (물론 단어의 의미를 깊게 따져 놓고 보았을 때는 전혀 안 맞는 비유일 수도 있겠지만요.)


하지만 이 경험치라는 것이 비단 선배들에게만 작동하는 시야는 아닌 거 같아요. 아직 2년 차에 불과하지만 그간 쌓아온 작은 경험들이 쌓여 제 나름대로 경험치의 필터를 가지고 미팅에 참여하고 있거든요. 때는 이번 제약 비딩 프로젝트였죠. 팀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작년 건기식 브랜드를 진행했던 터라 제 나름의 경험치에 자신이 있었죠. 그래서 팀이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나누고 전략을 공유하는 자리에서 자꾸만 “팀~! 작년에 그런 식으로 해봤는데 심의에 걸리더라고요!” “팀~! 카테고리 특성상 너무 과감한 크리에이티브 아닐까요?”라고 말이죠.


제 나름대로는 시행착오를 통해 얻은 경험치의 관점으로 팀의 의견을 들어보려고 했던 거 같아요. 하지만 미팅이 끝난 이후 마음이 너무 불편하더라고요. “아니 아까 팀원들이 말한 아이디어를 토씨 하나 안 빠뜨리고 제안하거나 실행해 본 것도 아닌데 안 된다고 말하는 게 말이 되나? 너무 위험한 생각 아닌가”라는 생각이 저녁 내내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어요. 항상 제 가능성을 막아왔다고 생각했던 경험치라는 단어를 결국 저도 쓰고 있더라고요. 결국, 저도 누군가의 선배가 될 테지요. 그렇기에 기존에 선배들이, 또 내가 무의식적으로 썼던 ‘경험치’의 쓰임을 조금을 고쳐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저희 경험치를 가능성을 미리 가늠하고 계산하기 위한 경계가 아닌 가능성이 맘껏 뛰놀 수 있는 커다란 운동장이 되어주면 어떨까요?



경험치를 생각의 가능성이
맘껏 뛰놀 수 있게 돕는
커다란 운동장이 되어주는데
써보면 어떨까요?


오늘 사내 디자이너님께서 생성형 AI 활용법에 대한 세션을 진행해 주셨어요. 지난 프로젝트 제안에서 생성형 AI를 꽤나 심도 있게 썼던 터라 대단한 내용이 있겠어? 하는 저만의 경험치로 중무장하고 내려갔죠.


송길영님의 시대예보 관련 영상에 달린 댓글


생성형 AI를 실무에 접목시키기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 왔는데 웬걸요. 숨니, 이제 건축 도면도 제가 뽑고 건축 모델링까지 할 수 있는 세상이 왔더라고요. 앞으로 초단위로 더 민망하고 초라해질 우리의 경험치를 상상하면서 아무리 깊고 넓은 경험치를 가진 사람이 있더라도 혹은 제가 그런 사람이 되더라도 가능성을 판단하는 절대 기준으로 경험치를 사용하지 말아야지 다짐했습니다. 교과서도 이제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마당에 말이죠. 숨니의 질문에 해병대 병장의 매운맛을 보여 드려야겠단 마음으로 써 내려온 글인데 결국 미래의 저를 질책하는 글로 끝났네요^^;







오웬이 숨니에게

“제 선택이 누군가의 마음을 어렵게 했을까요?”



숨니, 오늘은 오후 반차를 내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용산의 어느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어요. 카페에 오기 전 조금은 늦은 송별회를 하고 와서 그런지 마음이 조금 헛헛합니다.


숨니도 기억하시겠지만 저는 조금 특별한 부서로 커리어를 시작했어요. 어느 회사에도 없는 독특하고 특별한 팀이었죠. 하지만 입사 후 1년이 된 시점으로부터 저마다의 이유로 팀은 이전의 모습으로 함께하지 못하게 되었어요. 그렇기에 회사는 저에겐 직무를 옮기는 방법과 팀의 재결합을 기다리며 타 팀에 잠시 머무는 방법을 제안해 주셨어요. 그래서 숨니팀에서 1년 정도의 시간을 함께했죠. 생각해 보면 참 고마운 일이에요. 통보가 아닌 저에게 기회를 주신 것이니까요. 하지만, 다시 또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 저에게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만약에 내가 직무를 바꿨을 때
돌아온 팀원이 혼란스러우면 어떡하지?


저의 고민을 보고 누군가는 오지랖이라고, 누군가는 우유부단함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고, 저를 아껴 주시는 분들은 오로지 제 자신만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조언을 주시기도 했습니다. 분명 저도 그것이 답이라는 것을 알고요, 저의 결정으로 팀원들의 대세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편한 마음과 갈팡질팡한 마음으로 직무를 유지하기로 했다가 기존의 결정을 번복하기도 하면서 저뿐만 아닌 주변까지 혼란을 주는 과정을 겪었어요.


늘 모든 결정의 기준을 내가 아닌 상대에게 있는 저, 이 마음 또한 자연스러운 저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여야 할까요? 아니면 명확한 의사와 결정이 중요한 회사 생활에서 고쳐야 할 마음일까요?


저에게 이 선택은 1년을 넘게 함께 보낸 첫 팀과의 이별의 선택이기도 했어요. 직무를 옮기겠다는 마음을 먹은 이후로 하루도 마음이 편치 않았던 거 같아요. 그래서 이번 주면 육아휴직을 떠났던 첫 팀의 팀장님이 돌아오시고, 더 이상 이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팀장님의 복직을 축하드리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조금은 급하게 팀장님을 뵈러 온 것이고요. 1년을 돌고 돌아 비로소 제 선택을 말씀드리고, 팀장님의 앞날을 마음 편히 응원해 드린 제 모습을 보면서 후련하기도 하면서 반대로 긴 시간을 끌고 온 제 모습이 답답해 양가감정이 드는 오후네요. 오늘의 답변은 저의 갈팡질팡을 곁에서 지켜보셨던 팀장님 숨니의 시선에서 들어볼 수 있을까요? 이런 마음이 1년여를 팀으로 함께했던 숨니에게 거슬리진 않았을지도 궁금합니다.




숨니의 답장

"과감한 결정은 경험이 쌓였을 때 할 수 있어요"



오늘 글은 오웬의 지난 팀장님이 복귀하시면 선물로 보여드리고 싶은 글이네요. 제가 같은 상황에 팀원이 이렇게 저를 생각해 줬다면 정말 기특하고 고마웠을 거예요!


요즘 저는 노자 도덕경에 나온 ‘위’라는 단어를 공부하고 있어요. 흔히 ‘위한다’는 말을 쓸 때 그 '위‘요. 생각보다 저는 상대가 원하지 않는 일들을 제멋대로 위하고 있더라고요. 제가 좋은 리더에 대해 물었던 질문 기억하나요? 그 질문도 팀원들을 위해 내가 갖추어야 할 것들에 대해 고민이 들어서했던 질문인데, 오웬의 답이 저의 '위선'을 콕 집어 주었지 뭐예요? 어떤 리더인지는 중요하지 않고 지금의 불안한 마음에 반응해 줄 리더가 필요하다고요. 그 답을 받고 나는 정말 팀원들을 위했나? 이 또한 좋은 리더로 보이고 싶은 내 마음을 위한 선택은 아니었나? 되돌아보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상대를 생각한다고 생각하지만 돌이켜보면 늘 내가 그린 그림으로 선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팀원들과 면담을 할 때도 ‘저한테 이런 걸 기대하실 것 같아서’, ‘이렇게 느끼실 것 같아서’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듣고 난 후 나를 배려해서 생각해 준 건 고맙지만 '사실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죠. 오웬이 직무 변경 선택을 망설였던 것도 예전 팀에 대한 미안함이 중요했던 오웬의 선택이었고, 새로운 길을 선택한 것도 커리어에 대한 확신이 든 오웬의 선택이지 않을까요?


제가 최근에 건강이 안 좋았잖아요. (지금은 괜찮습니다) 유독 주변 사람들이 힘든 일을 겪고 있었고 고민 상담을 많이 해 줄 때였어요. 힘든 마음을 듣다 보니 그 마음이 전염되더라고요.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제가 답답하고 무기력해졌어요. 그런 저를 보고 남자친구가 물었어요.



모두가 어른인데 왜 너만 어른인 척 해?


아무도 저한테 해결해 달라고 안 하는데 무기력에 빠진 제가 이해가 안 된 거죠. 순간 서운했지만 마음을 추스르고 나니 맞는 말이더군요. 상대방은 그저 들어주는 제가 필요했던 거지 무언가 해결해 주길 기대하진 않았을 거예요. 오히려 제가 그 이야기 때문에 무기력해하고 있다면 저에게 말을 꺼낸 걸 후회했을지도요. 오웬은 갈팡질팡이라고 표현했지만 결과적으로 선택을 번복했더라도 선택의 시점의 오웬의 마음이 더 기우는 쪽을 선택한 거라 생각해요. 선택하면 쉽게 번복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나의 앞으로의 커리어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로인데 어느 누가 갈팡질팡 하지 않겠어요.


오웬이 이 문제로 저랑 고민을 나눠 주었을 때 ‘나였으면 이렇게 했을 텐데' 하는 제 안의 정답이 있었지만 말을 아끼게 되었어요. ‘누구보다 고민 많이 하는 애인데, 오웬이 이렇게 선택한 데는 이유가 있을 거야’하는 믿음이 있었죠. 명확한 의사와 과감한 결정은 경험이 쌓였을 때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팀을 옮겨야 하는 이런 특수한 일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의사를 묻고, 결정을 요하잖아요. ‘이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팀 의견은 어때요?’ 하고요. 경험이 부족할 때는 명확한 의사보다는 구체적인 의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설사 정리되지 않은 의견 일지라도요.


그때의 오웬이 할 일은 갈팡질팡한 마음을 상대가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굳이’를 붙여가며 고민과 생각을 나누는 거라 생각해요. 적어도 오웬과 제가 있는 이 회사에서는 언제든 나의 고민을 듣고 두 손 걷고 도와줄 동료들이 있잖아요? 이제 고민은 끝났고, 오웬에게는 이전 팀에서 배운 걸 잘 써먹을 일만 남았네요! 눈에 띄게 성장한 오웬을 보는 팀장님 입장에서는 돌아왔을 때 혼란보다 기쁨과 보람이 더 클 거라고 확신해요.




솔의 답장

"내 선택을 최고의 선택으로 만들면 되죠!"



안녕하세요 오웬,

마찬가지로 직무를 변경했던 (무려 7년 차에..) 사람으로서 해드릴 수 있는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싶어 글을 작성해 보아요.


저는 이전 팀과 페어웰을 하기까지 무려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어요. 그 2년 동안 이 직무를 하고 싶어 내외부로 열띤 활동과 노력을 했던 시기도 있고,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에 잠 못 들던 날들도 많았어요. 특히나 직무 전환에 대한 아젠다로 처음 팀장님과 미팅을 할 때는 해보지 않은 일이라 마냥 100% 확신을 갖고 이야기할 수도 없었어요. 당시 저는 리더의 포지션으로 넘어갈지 말 지의 시기도 걸쳐있었기에 조금 일찍 오픈하게 됐거든요. 게다가 그때 제 퍼포먼스가 좋은 평을 받고 있던 때라 팀장님도 고민이 많으셨죠. 오웬이 말한 ’갈팡질팡‘의 시기가 저도 똑같이 있었다는 말이에요. 감사하게도 이후 본부에서 관련 일들을 미리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현업에서 직접 시도하며 확신이 들었는데 오웬도 그랬을지 궁금하네요.


저는 그때 팀에서 두 번째로 높은 연차였던지라 저의 결정이 혹시라도 다른 동료들에게 혼란이나 안 좋은 영향을 주진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어요. 하지만 다들 마음이 단단하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사는 분들이라 그렇진 않았고요. 팀장님의 마음을 제가 짐작해 볼 수는 없지만, 오웬이 그 팀에서도 지금처럼 최선을 다했던 사람이라면 팀장님도 오웬의 결정을 응원해 주셨을 거 같아요. (저의 팀장님도 그러셨거든요!)이게 아니더라도 직장생활엔 늘 예기치 못한 변수가 있으니. 우리 미안함은 내려두고, 우리의 선택을 최고의 선택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면 어떨까요?







객원멤버

(*4명의 객원멤버가 함께 해주었습니다)



솔(Sol)

이곳이 첫 회사인 숨니와 오웬과는 다르게 경력직으로 입사한 동료 입니다

컨텐트 팀에서 일하다 현재는 신규 직원들의 온보딩과 사내 교육을 기획하는 PX매니저로 일합니다

인턴부터 디렉터까지 회사 내 다양한 동료 이야기를 가까이에서 듣는 위치에 있어 이번 글쓰기 프로젝트가 동료 감수성을 해치는 부분이 없을지 검수자 역할로 초대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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