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야근과 회식은 무용한 걸까요?

야근도 회식도 다 잘해보자고 하는건데 서로 눈칫밥은 주지 맙시다

by 숨니



숨니가 오웬에게

“막내도 즐거운 이상적인 회식은 어떤 회식일까요?”



퇴근해서 글을 쓰다 보니 한 주가 더 빠르게 지나가는 기분이에요!

일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니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거나 관점이 트이는 부분들이 있어서 글쓰기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늘은 불금이니만큼 좀 가벼운 질문을 준비했어요.



오웬은 어떤 회식이 즐거운가요?

입사 전에는 퇴근하고 다 같이 모여 고기와 소주 한 잔 하는 게 암묵적인 룰인 줄 알았었다


우리 회사는 남들이 회식이라고 하는(드라마에 흔히 나오는) 회식이 없잖아요. 팀비를 모아서 연말에 다 같이 비싸고 좋은 저녁을 먹거나, 뮤지컬을 보거나, 그런 회식이죠. (술도 거의 안 마시고요) 입사 전 기대했던 회식의 모습이 있나요? 혹은, 오웬이 그래도 여러 팀을 경험했으니, 함께 했던 회식 중 좋은 기억으로 남은 회식이 있나요?


반대로, 이런 회식은 정말 별로야! 하는 것도 알려주세요! 회식이나 티타임은 미팅이 아닌 사석에서 가볍게 이야기하는 자리지만 그렇다고 사적인 이야기를 맘껏 해도 되나 싶고, 또 공통 관심사인 일 얘기를 하기에는 더 별로 인 것 같고. 대화 주제가 고민이 될 때가 많거든요. 아무 말도 안 하면 정적이 흐르니 무슨 말이라도 해야겠고... SNS에 최악의 회식과 관련된 글을 읽으면 회식이 잦은 일반적인 찐 회사의 사례라 저희 회사에는 대입하기에는 맞지 않는 것 같기도 해요. 막내 오웬의 관점의 이야기가 궁금해요. 회식 자리에서의 진짜 속마음을 이야기해 줘도 좋고 막내로서의 회식 고충을 알려줘도 좋아요!




오웬의 답장

"회식 BY 회식, 하고 싶은데 하기 싫어요"



오늘의 질문은 저희가 속한 조직의 분위기와는 거리가 있어 새로워요 (ㅋㅋ)


회식 이야기를 하니 회사에 입사해 처음으로 가졌던 팀 회식이 떠오르네요. 팀장님과 사수 저. 셋이서 소소하게 떠났던 회식은 미디어로 접했던 폭탄주가 난무하는 회식과 달리 소소한 저녁식사처럼 차분하고 또 편안하게만 느껴졌던 거 같아요. 알쏭달쏭한 제 표정을 보신 팀장님은 웃으시며 "오웬, 입사하기 전에 상상했던 회식이랑 많이 다르죠? 실망했어요?"라는 말을 농담 삼아 건네셨는데 나름 긴장감에 얼어 있던 제 마음을 녹이면서 웃음을 터지게 만들었죠.


사실 저는 남들과 부대끼고 진한 유대를 나누는 걸 즐기기에 '직장인의 회식'에 로망 아닌 로망을 가졌던 거 같아요. (미생 애청자..) 하지만 요즘 분위기는 '회식 없는 회사=센스 있는 회사'로 굳어 가는것 같아 저로서는 아쉬움?이 커요. 회식을 하지 않는 것이 상사의 미덕처럼 묘사되기도 하고요.


숨니, 작년 연말 수산시장에서 했던 송년회 겸 송별회 회식이 기억나시나요? 저는 그 회식에서 팀과 이야기하면서 참 많은 것을 알 수 있었어요. 팀원 중 한 분이 결혼을 준비하고 있다는 기쁜 소식과 함께, 또 다른 팀원분의 고민이나 사사로운 이야기들도 솔직하게 들을 수 있었고요, 저는 팀을 옮기기 전 함께 일한 그간의 소회를 솔직 담백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죠. 개인 프라이버시가 가장 중요한 가치로 떠오르는 요즘 어쩌면 가족보다도 더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는 동료들의 이야기를 듣기란 참 쉽지가 않은 거 같아요. 하지만 일각에서는 그런 사적인 이야기를 왜 듣고 싶고, 왜 궁금해하냐고 물어올 수도 있겠네요.


제가 생각하는 팀워크는 손발이 딱딱 맞아떨어져서 업무의 능률과 속도가 빨라지는 것도 있겠지만, 결국 팀원의 감정적 어려움이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순간을 놓치지 않도록 미리 캐치하고 업무적 공백을 서로 채워주는 것이 진정한 팀워크라 생각해요. 그렇기에 회식에서의 사담은 팀이 건강한 방향으로 합을 맞춰갈 수 있도록 힌트를 얻을 수 있는 기회라고 느껴지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런 생각은 오로지 제 시선과 사고에서 기인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네요.


이제 (회식러버) 제 시선을 벗어나

힘든 회식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친구들의 이야기를 나눠 볼게요.



이런 회식은 싫어요 01.

회식이 끝난 후 늘 울상인 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잘 흘러가던 회식이 '평가'의 앵글로 바뀌는 시점부터 버티기 힘든 시간이 된다고 하더라고요. 게다가 술도 함께 곁들여진 평가는 생생한 단어로 후배의 가슴을 후벼 파기도 하죠. 하지만 반대로 선배의 입장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죠. 안 그래도 업무로 바쁜데 피드백까지 주고 싶지 않은 마음에 회식자리에서 가볍게 이야기를 건네주셨을 수도 있고요. 저는 선배와 후배 두 사람 모두 잘 못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나 앞서 말한 거처럼 일상생활에서 서로 힘든 것은 없는지, 또 축하해 줄 좋은 소식은 없는지 소소한 사담을 몇 없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죠.


제가 생각하는 좋은 회식은 업무 이야기를 배제한 인간 대 인간의 유대 시간이 될 때 가장 좋은 회식이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그럼 '회식은 업무의 연장선'이라는 오명도 씻어냄과 동시에 업무 이야기를 하지 않았음에도 팀워크에는 오히려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 거라 확신하거든요.



이런 회식은 싫어요 02.

'평가의 자리'가 되는 회식 외에 또 다른 이유로 회식을 정말 어려워하는 친구들도 있는 거 같아요. 바로 '언제 끝날 지 모르는 회식'입니다. 많은 회식을 돌이켜보면 늘 "18시까지 00고기집으로 모이시면 됩니다"라는 공지는 있지만 "00시까지 회식 진행하겠습니다"와 같이 끝나는 시간을 알려주는 공지는 없죠.


흔히 말하는 MZ, 혹은 저연차의 멤버들은 어쩔 수 없이 회식이 부담스럽고 긴장되는 자리일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이 부담스러움을 놓지 못하는 큰 이유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회식 시간 때문인 거 같아요. 저는 결국 회식에도 효율이 있다고 생각해요. 모두가 회식에 집중하고 즐길 수 있도록 제약된 시간을 통해 회식의 밀도를 높이는 것이 모두가 즐거운 회식으로 만드는 길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이런 회식은 싫어요 03.

마지막으로는 회식을 인성 테스트라는 평가항목으로 저연차를 바라보는 시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SNS에서 'MZ사원 진짜 고기를 안 굽네요?"라는 글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어요. 저는 이런 글을 볼 때마다 긴장이 되곤 합니다. '혹시 나는 회식을 하면서 저런 실수를 한 적이 없나...? 아버지가 소주는 무조건 오른손으로 따르라고 하셨는데요. 왼손잡이인 내가 습관적으로 왼손으로 따라드린 적이 있나?' 와 같이 지난 회식을 복기해 보기도 하죠.




사실 이런 것들이 너무 사소하고 알려주기도 민망한 것들이지만 긴장하고 얼어 있는 저연차 멤버들에겐 생각조차 하지 못한 센스의 영역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들은 지금 회사가 아닌 사석에서 선배들과 식사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하얗게 변했을지도 모르거든요. 오늘 회식에 대한 이야기를 쭉 적어 내려가다 보니 되려 후배들보다 선배들이 움츠러들었다는 생각이 새삼 드는 거 같아요. 그 움츠러듦이 결국 회식은 안 하는 것이 미덕이라는 인식을 만들어 내기도 한 거 같고요.


간단한 사담조차 점점 더 나누기 어려워지는 요즘, 회식이라는 유일한 유대의 기회까지 사라지면 저희는 로봇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을까요? 유일한 유대의 기회가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는 직급이 아닌 개인과 개인이 서로 위로하고 또 응원하는 시간으로 발전한다면 회식이라는 직장인의 소중한 전통도 지킬 수 있지 않을까요?



숨니, 이 프로젝트 끝나면 회식 어떠세요?

출간 기념회를 빙자한 고통의 글쓰기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는 누룽지 통닭 회식







오웬이 숨니에게

“야근은 무조건 줄이는 게 좋은 건가요?"



퇴근 후 글 쓰는 제 모습이 꽤 근사하게 느껴지는 합리적 허영심이 드는 밤이네요. 벌써 세 번째 질문을 받고 글을 쓰고 있는데요. 글을 쓰면서 팀의 장이 어떤 생각을 하고 고민을 하는지 들을 수 있어서 새로운 시야를 가지는 느낌이라 너무 좋습니다 :)


일주일 간 숨니가 주신 질문들을 천천히 뜯어보니 유독 눈에 걸리는 단어가 있었어요. 그 단어는 바로 ‘야근’이었습니다. 숨니의 고민에 꽤나 큰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거 같아 이 이야기를 안 짚고 넘어갈 수 없었는데요, 저도 최근에 야근의 의미에 대해 깊게 생각하고 있어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대학생 시절부터 익히 들어왔던 대행사의 숙명 ‘야근’ 심지어 광고업을 잘 모르는 사람들조차도 야근이 많은 직업으로 인식하고 있는 상황이죠.


야근에도 좋은 야근과
좋지 않은 야근이 있을까요?


지난번 본부장님과 야근에 대해 꽤나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 대화의 골자는 좋은 야근과 좋지 않은 야근이 있다는 것이었는데요. 그 중 좋은 야근은 ‘최선’을 요하는 업무를 업무 이후 시간까지 쓰는 야근을 좋지 않은 야근은 지속적인 야근으로 인해 ‘습관’의 영역이 되어버린 야근으로 정의를 했었습니다. 이 전반의 가정에 매우 동의하지만 '좋은 야근'이라는 개념에 대해 여전히 의문이 남았던 거 같아요. 우리는 늘 결과물의 퀄리티를 올리기 위해 고민(최선)하는 사람들이죠. 그렇기에 좋은 야근의 기준인 ‘최선’의 개념이 참 모호하기에 결국 좋은 야근과 좋지 않은 야근이 무 자르듯 나눠지지 않는다는 것이 제 생각이었습니다.


상황을 하나 가정해 볼게요.


자, 지금부터 숨니는 지금 흑백요리사 백종원 심사위원처럼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합니다. 눈을 가리고 요리를 맛보는 것처럼 앞선 준비 과정은 일체 모른 채 '같은 주제로 만든 각기 다른 결과물'을 보게 됩니다.


A. 압도적 야근 시간을 투입해 만든 아웃풋
B. 오직 워크타임만 사용해 만든 아웃풋
(*단, A/B 모두 업무 밀도는 매우 높습니다. 야근 또한 낭비하는 시간 없이 몰입한 야근입니다)


'최선'이 좋은 야근의 기준이라면
결과물 만으로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
역으로 예측할 수 있을까요?



저는 야근이 많았던 팀과 비교적 야근이 적은 팀을 연달아 겪은 입장에서 명확하게 이것이 좋다!라고 답을 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끔 야근이 많이 줄어서 좋지 않아?라는 질문을 받을 때면 저는 늘 글쎄요…?라는 예상치 못한 답변을 드리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그 동안의 야근이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어 발끈하기도 하고 반대로 지금의 노력이 이전의 노력보다 작아 보이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죠) 순수한 질문에 발끈한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어쩌면 야근이라는 것이 개인의 만족에 속하는 영역이 아닐까? 그럼 ‘최선’이라는 것은 야근의 절대적 양을 뜻하는 것일까? 결국 결과물에서 큰 차이가 없다면 (실무로 인한 야근은 제외하고) 야근은 정말 필요 악인 것일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숨니, 좋은 야근은 무엇일까요? 또 ‘최선’이 말하는 ‘최선’은 무엇일까요? 야근하며 최선을 다한 결과물을 사람들은 알아 봐줄까요? 오늘의 질문은 야근에 대한 고민이 깊은 숨니의 관점으로 들어보고 싶습니다. 회사 멤버들이 늘 자주 건네는 인사말로 오늘의 질문을 마무리할게요.


오늘도 칼퇴하는 하루 보내세요!




숨니의 답장

"결과물의 차이는 없어도 나에게 남는 의미가 다르죠"



야근. 우리 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제죠.


특히나 우리 회사는 야근을 지양하는 문화잖아요. 오웬 말처럼 '광고회사=야근 많은 회사'인데 이 절대 공식을 깨고자 노력하는 회사죠. 최대한 야근을 줄이고자 연봉 미팅 때는 야근 횟수를 수치화해서 알려주시기도 하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연말 종무식 때 한 해의 평균 퇴근시간을 계산해 공표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렇다 보니, 저에겐 야근은 되도록 하지 않으면 좋은 것으로 학습되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주니어 때는 '야근 안 하는 사람=일잘러'라 생각해서 사람들이 ‘숨니야 오늘도 야근해?’라는 질문이 발작 버튼이었어요. 그 이야기를 듣기 싫어서 퇴근하고 집에서 잔업을 하기도 했어요.


사실 별생각 없이 인사치레로 한 말이었을 텐데 마치 어릴 때 숙제를 다 못해서 집에 못 가는데 옆 친구가 ‘으이그~ 잘 좀 하지!’하고 핀잔을 주는 것 같았거든요. ‘야근이 많이 줄어서 좋지 않아?’하는 동료들의 질문에 발끈한 오웬 마음도 같은 이유지 않았을까요? ‘야근’ 자체가 마이너스 성과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문화, 내가 조금 더 고민하고 싶다는데 격려는 못해줄지 언정 부정적인 시선이라니. 당연히 불편하죠. 그러고 보니 우리는 서로 어떤 일을 하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야근(夜勤)'에 ‘근(어떤 과업을 하는지)’보다 ‘야(늦은 시간까지 일을 한다)’만 보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A. 압도적 야근 시간을 투입해 만든 아웃풋
B. 오직 워크타임만 사용해 만든 아웃풋


두 가지 결과물.


더 많은 시간을 고민한 A가 더 좋았으면 좋겠지만 냉정하게 생각해서 저는 A, B의 결과물 차이는 크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 또한 이렇게 고민하는 게 의미가 있어?라는 생각을 한 적도 많아요. 영상 캠페인을 예로 들면 저희가 하는 제안은 제안 그 자체가 최종 결과물이 아니거든요. 감독님의 트리트*를 거치고(*스토리보드를 실제 촬영을 고려해서 감독의 시선에서 수정하는 작업) 전문 프로덕션이 붙어서 실제 소비자에게 보이는 결과물을 만들죠. 그래서 앞선 고민의 깊이가 결과물에 큰 차이를 만들진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B에 투자한 시간이 A대비 더 적으니 수익성은 B가 더 좋을 수 있겠죠?


하지만, 이 기준은 철저하게 '결과'만 봤을 때 이야기입니다.


동일하게 주어진 물리적 시간에서 둘 다 밀도 있게 고민한다는 가정하에

A, B를 '결과'가 아닌 '과정'에 관점에서 볼게요.


업무 시간을 넘기더라도 과정에 최선을 다하는 A
워크타임 내 업무를 하기 위해서 최대한 효율적인 과정을 택하는 B


예를 들어, 클라이언트가 이벤트 참여율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해 추가 배너 제작을 의뢰했습니다. 효율적으로 일하는 B는 요청받은 배너를 기획해서 전달합니다. A는 시간이 더 걸렸지만 배너 기획안과 함께 이벤트 기간 내 참여를 부스팅 할 수 있는 리워드와 인플루언서 리스트를 같이 제안했어요. (고민 포인트는 '이벤트 참여율'을 높이는 거 였으니까요)


다른 예도 들어볼게요. 아이디어 미팅에서 B는 브리프에 잘 맞춘 안을 가져왔어요. A는 브리프에 맞춘 안을 준비하다 최선의 방향이라고 아니라고 생각해서 다른 전략 방향으로 고민한 아이디어도 가져왔죠. 두 방향의 장단점을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가야 할 방향에 대한 논의 테이블을 만들었어요. 아마 두 케이스 모두 A, B의 결과물의 차이는 크게 없을 겁니다. 그런데,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겨야 할 때 오웬은 어떤 사람에게 맡기고 싶나요?


클라이언트는 다음 캠페인을 의뢰할 때
어떤 사람이 먼저 생각날까요?



팀장이 되니 '야근'에 대한 압박이 팀원일 때보다 큽니다. 팀원일 때는 내 시간을 쓰는 거라 괜찮았는데, 팀장이 되니 관리의 영역이 되었죠. 이상적으로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철저히 제 관점이고 일에 대한 가치관은 다를 수 있으니까요. 그러던 중 최근 팀원의 해 준 이야기에서 '내가 믿는 대로 가도 되겠다'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열정을 가지고 임했던 초반 기세와는 다르게 우리가 원한대로 흘러가지 않는 프로젝트가 있었어요. 초반 동기부여가 무색하게 제안한 것들이 어그러지는 게 잦아서 저조차도 '제발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싶은 프로젝트였죠. 그런데 하필 이 프로젝트가 매번 서포트만 하던 팀원이 메인 AE로 데뷔하는 프로젝트였어요. 저는 이 야근이 그 친구에서 무의미하게 느껴질까 봐 신경이 쓰였죠.


그런데, 그 프로젝트의 메인 AE를 맡은 친구가 프로젝트가 끝나고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 이 캠페인 하면서 정말 많이 배웠다고요. 그러고는 자기가 과정상에 배운 것들을 편지에 빼곡하게 적어서 주었죠. 그중에는 우리가 야근을 불사하며 제안했는데 아무런 코멘트 없이 클라이언트 결정대로 되어 속 쓰린 기억도 있었어요. 그 팀원은 같은 상황을 두고 그래도 끝까지 파봐서 미련이 없는 마음, 그래서 결과에 아쉽지 않은 마음에 대해 이야기하더라고요. 이 친구는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내 노력에 대한 떳떳한 감각을 배운 거죠. 이렇게 일하는 친구는 클라이언트가 어떤 질문을 하더라도 본인이 고민한 게 있으니 능수능란하게 응대할 거예요. 그리고, 팀장 입장에서는 딜리버리 하지 않고 깊이 있게 고민한 후 커뮤니케이션 해주리란 확신이 있습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이 클라이언트는 자연스럽게 신뢰가 쌓이겠죠?


야근을 이야기할 때 '시간', '결과물'만 놓고 좋고 나쁨을 이야기하기에는 섣부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최선'의 관점으로 보기에는 리밋을 어디에 둘 것인지 판단이 불명확하고요. 과정으로 판단하기에도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 정의 자체가 어려운 영역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야근은 좋고 나쁨 보다는 의미, 유의미 혹은 필요, 불필요로 보는 게 더 적합한 단어 같아요. 그리고 그 의미는 이 일을 직접 하고 있는 나 자신만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판단하기에 '필요했다'라고 생각하는, '의미 있었다'라고 보는 야근이라면 저는 '좋은 축적'이라고 생각해요. 당장 결과가 없더라도 그 시간들이 신뢰의 축적, 실력의 축적일 수 있죠. 그래서, 야근을 하기 전에, 혹은 야근을 한 다음에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는 걸 추천해요. 아래 질문에 답을 할 수 없다면 지금 가방을 싸고 자리에서 일어나세요. 엉덩이 붙이고 있는 시간을 늘린다고 결과가 뚝 떨어지는 건 아니더라고요.


필요한 야근인가?
그래서 의미가 있었나?


마지막으로, '좋은 야근'은 없듯이 세상에 야근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정시에 퇴근해서 자기 삶을 누리는 걸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간혹 팀원들이 '오늘도 야근할까요?' 묻거나, 주변에 저 팀은 야근 많이 하는 팀, 저 팀은 야근 안 하는 팀으로 구분하는 시선이 불편할 때가 있습니다. 팀장도 야근하고 싶지 않아요. 다만,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하는 겁니다. 야근하는 동료에게 '또 야근해?'는 실례입니다. 걱정해 준답시고 '그게 야근할 일이야? 일찍 가'도 그 동료에게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아요. 우리 모두 어른이고, 스스로가 판단할 수 있어요. 괜한 걱정으로 동료의 사기를 꺾지 마시고, 그저 오늘도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더 잘 해내고 싶어 하는 동료를 응원해 주는 건 어떨까요? 인사를 바꿔볼게요!



이슈없이 흘러가는 평온한 하루 보내시길!





keyword
이전 03화언제 열심히 하고 싶어 지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