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의 가면이 부러운 후배, 있는 그대로 드러나는 투명함이 부러운 선배
숨니가 오웬에게
오웬, 이번 주말 날씨가 너무 좋네요 :)
지난한 여름을 견뎌낸 보람이 있어요!
그래서, 이 짧은 가을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나 봅니다.
저는 요즘 글을 쓰다 보니 막연하게 제 안에 머물러 있던 생각들이 차곡차곡 밖으로 나와 정리되는 걸 느낍니다. 오웬이 질문해 준 내용을 동료들과 나눠보기도 하고, 제가 쓴 글을 다시 꺼내 읽고 고치면서 저를 발견하고 있습니다. 생각이란 건 고이기 마련인데 밖으로 끄집어내는 순간 자연스레 답을 찾아 흐를 수 있다는 걸 배우는 요즘입니다. 글 쓰길 참 잘했네요!
오웬, 최근에 유퀴즈 온 더 블럭 GD편 봤나요?
저는 GD가 본인이 나온 방송을 모니터링 하고 있는 사진 한 장을 보고 방송을 찾아봤어요. 너무 편안해 보였거든요! 세상 풍파를 다 맞은 사람의 표정이 어떻게 저럴 수 있지? 꼭 사랑하는 연인을 보는 것처럼 보는 사람도 따듯해지는 사진이었죠. 방송을 보는데 이 한마디가 그 눈빛을 설명해 주더군요.
얼굴도 인상도 말투도 달라졌지만
저는 지금 제 모습이 좋아요
직장 생활, 사회생활이라는 게 가끔은 나다움을 발견하게도 하지만, 잃게 만든다고도 생각해요. 우리가 알던 GD는 뾰족하고, 날이 선 아티스트의 모습이었지만, 유퀴즈 속 권지용의 모습은 사뭇 달랐어요. 그런데, GD는 그 모습이 권지용이라고 해요. 그 모습이 좋다고 하죠.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보여주기보다 자꾸 가면을 쓰게 됩니다. 내가 아닌 ‘상대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게 사람의 본성이거든요. 간혹 팀원들과 면담을 하다 보면 ‘신입은 이래야 하니까’, ‘상사들은 이런 후배를 좋아하니까’의 이유로 애써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가면을 쓰기도 하고, 학생일 때는 자신감 빼면 시체였는데 왜 이렇게 눈치를 보는 사람이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환경에 잡아 먹혀 자신의 본모습을 잃은 고민을 털어놓기도 해요.
이것은 학교라는 곳에서 사회라는 곳으로 처음 발을 디딘 주니어 친구들의 고민만은 아닐 거예요. 후배가 처음 생기면 잘 몰라도 잘 아는 척해야 할 것 같고, 클라이언트를 처음 상대할 때도 부족하지만 누구보다 전문가인 양 행세를 하기도 하죠. 저도 팀장이 처음 되었을 때 ‘좋은 팀장’ 가면을 쓰고 가면 안에 모습이 들킬까 봐 애쓰는 시간을 보냈어요. 그런데 막상 가면을 쓰고 나면 꾸며낸 모습이라 그런지, 남들에게 그 모습이 어떻게 보일까는 생각보다 이 가면이 언제 들킬까 전전 긍긍하는 시간으로 보내게 됩니다. 이런 마음들은 사회생활을 하는 모두가 짊어져야 하는 마음 같기도 해서 씁쓸합니다. 서로를 위해 가면을 썼는데 모두가 서로에게 가면 속 모습을 들킬까 두려워하죠.
오웬도 혹시 가면을 쓰고 있나요?
그 가면이 마음에 드나요?
아니면 가면이 들킬까 무서운가요?
저는 처음에는 ‘좋은 팀장’이 되고 싶어 모든 일을 의연하게 해내야지 하는 압박이 있었는데, 언제부턴가 팀원들에게 ‘나도 잘 몰라 같이 해보자’하고 빈방을 열어두는 사람이 되었어요. 척하지 않고 잘 모르는 게 진짜 저인걸요. 평가받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그냥 이실직고 이야기하고 도움 받는 게 저는 훨씬 편하더라고요. 부족하지만 어쩌겠어요. 그게 진짜 저니까 마음은 편안해요. 일로 만난 사이인데 꼭 속 이야기까지 해야 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가끔은 가면을 내려 두고 속마음을 꺼내 놓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홀가분한 느낌, 서로에게 안전감이 생기는 기분이 들어요. 팀은 서로의 강인함을 볼 때 든든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나약함을 볼 때 더 결속되다고 생각하거든요.
가면을 쓰고 일을 하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들어요. '나의 노력으로 완전히 상대를 속인 걸까? 아니면 상대는 이미 아는데 들키기 싫은 내 마음을 배려해서 모른 척해주는 걸까?' 하고요. 일로 만난 사이는 절대 가족이 될 수 없지만,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우리는 어쩌면 서로를 더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르죠. 이 책이 회사 책장 한 켠에 꽂힌다면 우리의 이야기가 매개체가 되어 서로의 가면 속 마음들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가면 속에 숨어있는 오웬의 이야기를 들려줄래요?
오웬의 답장
숨니, 저도 지난 주말 기존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푸근한 인상과 여유가 넘치는 목소리로 돌아온 GD를 보았어요. 늘 예민함이 느껴지던 모습과 달리 어떤 질문에도 여유가 묻어나더라고요. 어쩌면 GD라는 페르소나에 뒤에 숨어있던 권지용 씨의 본모습이 아닐까 싶기도 했고요. 유튜브로 유퀴즈를 보며 GD와 저를 놓고 공통점을 단연코 찾을 수 없지만(ㅋㅋ) 딱 한 가지 예명을 쓰는 공통점이 있더라고요. (*회사에서는 직급, 호칭을 떼고 영어이름을 사용하는 문화가 있다) 저도 회사에서는 제 본래 이름 대신 ’오웬‘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죠. 이렇게 다른 이름을 쓰다 보니 각 페르소나의 성격도 다르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아요.
오늘은 팀장님과 면담이 있었어요. 요즘 업무는 어떤 지, 재밌는 일은 없는지 사사로운 이야기를 마음껏 나눴죠.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제가 조금은 과도하게 긴장하는 버릇을 팀장님께 털어놓게 되었어요. ‘혹시 내 말이 상황에 맞는 말을 하는 걸까? 누군가가 갑자기 안 해본 일을 갑자기 시키시면 어떡하지? 내가 과도하게 고집을 부리는 거 아닐까?’ 등의 생각이 쌓여 만들어내는 긴장감이요.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으시던 팀장님이 의외의 답변을 주셨어요.
“전혀 그렇게 안 보여 오웬!”
팀장님의 답변을 듣자마자 곧바로 이것이 내 가면이구나 느꼈습니다. 사실 저는 늘 의연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어요. 감정의 동요도 크게 없고, 큰일이 나도 침착하게 교통정리를 하는 그런 사람들처럼이요. 사실 의연함이라는 건 풍부한 경험, 그리고 연륜에서 나온다는 것을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경험의 격차를 뛰어넘어 의연한 사람이 되고 싶은 욕심에 요상한 버릇이 하나 생겼습니다.
숨니, 혹시 제가 미팅이나 대화를 할 때 몰래몰래 상대방의 눈을 보는 거 알고 계셨나요? 그것도 매우 많이요. 특히 모두가 예민한 상태인 미팅일수록 제 눈이 굴러가는 속도는 점점 빨라지죠. 이러한 습관이 왜 생겼을까 스스로 고민해 보다 미생의 한 장면이 생각났어요.
사실 제가 가지고 있는 안 좋은 습관은 바로 지속적으로 남의 의중을 과도하게 살피는 것이에요. 위 대사처럼 자꾸 사람을 파악하려고 애쓰는 것이죠. (상대의 생각을 미리 파악하면 고민도, 대답도 더욱 빨라져 어떠한 반응이 나와도 감정의 동요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이런 의중 살피기가 ‘눈치’와는 조금 다른 개념이라고 생각되어요. ‘눈치’는 말 그대로 상황을 살피는 것이라면 ‘의중을 살피는 건’ 제 생각을 남에게 투영시켜 생각이나 기분을 짐작해 보려는 것이죠.
지속적으로 의중 살피기를 하다 보면 어느새 상대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거나, 그 결론에 스스로 잠식당하기도 합니다. 결국 의연해 보이는 오웬의 가면을 쓰기 위해 의중을 살피는 좋지 못한 버릇이 생겼고, 실제로 상대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내린 결론과, 그 결론이 만든 허상으로부터 극도의 긴장감과 압박감을 느끼게 된 것이죠.
사실 가면을 벗고 싶지만 쉽게 되지는 않는 거 같아요. 겉으로는 의연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긴장감에 덜덜 떨고 있는 저. 이제 의연함의 가면을 벗고 담백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오늘의 글은 제가 답을 내리기보다 선배님의 조언을 듣고 싶어요.
오웬에게 매버릭의 답장
저도 예전부터 사회적 가면에 대해 고민했던 기억들이 많았습니다. 다양한 상황과 환경에 따라 가면을 바꿔 쓰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면서 도대체 ‘나’라는 자아는 무엇일까? ’나’의 진짜모습은 무엇일까? 어쩌면 외부에서 보이는 모든 모습들은 거짓된 모습이 아닐까? 그런 척, 괜찮은 척, 아닌 척 모든 것에 하나부터 열 가지 꾸밈을 가지고 삶을 대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자괴감과 절망에 빠진 기억들이 떠오릅니다.
이런 주제에 대해 정말 많은 고민을 해보고 스스로 느낀 점은 “가면은 원래부터 없었다”라고 결론지었어요. 인간은 본연에 사회적 동물이잖아요. 우리는 주변의 사람과 주변의 것을 모방하며 자연스럽게 배움을 얻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스스로의 모습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출되는 환경부터 우선 바꾸라는 조언들이 아직까지 유용하듯이요. 저는 색다른 환경에 놓였을 때 스스로가 뚝딱 거리면서 그 안으로, 그 관계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과정들에 찬찬히 집중하는 것에 본연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조각들 모두 나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자아라는 것의 본질은 진동과 같다고 생각해요. 고정적이지 않은 파장처럼 계속해서 움직이는 무엇인가의 흐름, 그 흐름의 곡선이 변화하는 것 자체로써 자아의 다변화, 인간적 아름다움의 본질이라 느껴집니다.
그 환경이 익숙해지고 안락해질 때쯤 또 다른 욕구? 불만? 이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뭔가 다른 환경이 없을까? 뭔가 다른 인사이트가 없을까? 무엇인가 더 변화할 수 없을까?” 이 본질 자체는 아주 낯설고 두렵지만, 익숙하지 않은 환경으로 이동하고 싶은 욕망을 끊임없이 밀어 넣는 인간의 천성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스스로 밀어 넣은 변화에 스스로 두려워하고, 스스로 가면을 쓰고, 그 가면이 피부 깊숙이 안착하여 또 다른 나 자신으로 변태 하고 싶은 거겠죠? 어제의 나는 매우 지루해 보이니까요.
저는 최근 GD의 모습을 보며, 또 다른 GD의 매력에 빠졌습니다. 그의 영감의 원천, 깊이는 또 매우 심도 있고 깊어졌겠죠. 이전과 다르게 더욱 성숙하고 아름다운 사람이 되었다는 게 눈에서 느껴집니다. GD가 겪은 삶의 흔적들이, GD가 만들어왔던 여러 가지 가면들이 결코 피상적인 잔재물에 그치지 않고, 내면 깊이 흡수되었다 생각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항상 누군가를 대할 때 내 기억 속에 있는 그 사람의 모습을 기대하고 대하는 것에 있다 생각합니다. 좋은 방향이든 좋지 못한 방향이든 그 사람이 변화하는 존재라는 것에, 변화하고 있는 움직임을 가진 형태라고 느낄 때 저는 인간관계에 편안함을 느껴요. (사실 저도 인간관계에 매우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극 I라…) 그렇기에, 그 사람의 모습에 제 바람을 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해요. 어떤 스타일의 사람이든, 어떤 형태의 사람이든 모두 배울 점이 있고, 관계 속에 교류하며 인간다움을 나눌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면을 쓰고 사람을 대하는 것은 매우 당연하고, 저는 그런 인간의 채워지지 않는 불완전함 자체가 매우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오웬이 셀리나에게
제 나름대로 셀리나와 잘 어울리는 수식어를 찾았어요!
인간 담백질
셀리나와 약 1년이라는 시간 동안 함께하며 셀리나를 떠올렸을 때 드는 생각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담백하다‘였습니다. (후배가 쓸 수 있는 단어가 맞나요..?) 그 이유는 셀리나와 업무적으로 혹은 사적으로 대화를 나눌 때면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진심이 느껴지고 과장보다는 담백한 조언으로 상대를 편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에요. 반면에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농담처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오웬, 진짜 좋은 거 맞아요?
사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사실 제 스스로 의문이 들기도 해요. ”정말 좋아서 답변한 건데.. 이 감정조차 가면일까?“와 같이 말이죠. 셀리나, 셀리나는 회사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상대와 대화를 할 때 특별히 신경 쓰는 점이나 마음가짐 같은 것이 있을까요? 저도 답변봇에서 셀리나처럼 담백하게 대화를 리드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혹시 담백함이 가면이라면 그 가면 제가 사겠습니다!)
셀리나의 답장
'인간 담백질'이라니!
스스로 담백하다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그 이유를 고민하는 데에도 시간이 꽤 걸렸네요. 처음엔 저의 무뚝뚝한 면모를 좋게 해석해 준 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질문을 곱씹어보니 그건 또 아닌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담백'이란 단어의 의미를 찾아보았어요.
담백이란, 무엇이든 과하지 않고 원래 상태에 가까운 것을 뜻한다고 해요. [맛]에서는 간이 세지 않은 상태. '싱겁다'는 맛이 부족한 느낌인데 '담백하다'는 과하지 않다고 느껴지네요. [성품]에서도 마찬가지로 쓰이는 듯합니다. 과하지도 너무 싱겁지도 않은 적당히 깔끔한. 보통은 '솔직하다'라고 할 텐데 '솔직'으로는 다 담기지 않는 긍정성이 느껴져 '인간 담백질'이라는 수식어가 퍽 마음에 드네요.
'솔직함이 무기'라는 말이 있죠. 솔직함이 누군가의 마음을 해치는 진짜 [무기]가 아니라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들을 잘 전달하는 [도구]로 사용되어야 그것이 '담백하다' 느껴지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런데 제가 어떻게 담백해질 수 있었을까에 대한 답을 드리기엔 제법 복잡한 것들이 얽혀있네요. 타고난 기질인 것 같기도 하고, 학습의 결과물인 것 같기도 하거든요.
오웬은 지나치게 다른 사람의 의중을 살펴서 스스로 내린 결론과 허상에 압박을 느낀다고 했죠. 제가 오웬과 같은 본부로 처음 이동했던 때를 기억하나요? 대부분의 본부원들은 이전부터 함께 합을 맞춰왔지만, 저는 가장 먼 건너편 자리에 있던 타 본부 사람이었어요. 해가 절반 정도 지난 6월, 이미 서로 친해진 학급에 전학 온 아이처럼 긴장하며 저를 증명하기 위해 부단히 애썼죠. 본부 미팅에서 누구보다 먼저 대답하려 노력하고, 부담이 되어 못하겠는 일도 일단 해보겠다고 했어요.
눈치를 보고 의중을 살피는 건 어쩌면 더 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크다는 게 아닐까요? 저는 오히려 과도하게 긴장한 오웬의 모습이 더 솔직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가끔은 긴장해서 고개를 푹 숙이고 귀가 새빨개지다가도 미팅에서 납득할 수 없는 부분엔 흥분해서 반박하는 모습도 제가 보기엔 잘하고 싶은 오웬의 모습이 투명하고 솔직하게 드러나는 것처럼 보여요. 그런 시간이 쌓여 오웬에게 능숙함과 여유가 생기면 자연스레 오웬이 바라는 모습이 되어 있지 않을까요?
저는 겁이 많은 사람이지만 피하지 않고 부딪히다 보니 용감한 척 쓰고 있던 가면이 오히려 용기를 주어 제법 용감한 사람이 되어있었습니다. 가면이 때로는 자신감을 주기도 하거든요. 스스로를 너무 채찍질하기보다는 때로는 가면 뒤에 숨어 떨고 있는 진짜 내 모습을 토닥여주세요. 그리고 때가 되면 더 의연하고 담백해진 오웬의 모습을 보여주세요. 사실 ‘담백’이라는 건 신뢰가 축적되어야 가능한 것이네요. 사람 간의 관계에서 어느 정도 신뢰가 쌓인 후에야 더 솔직해질 수 있잖아요.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 신뢰가 쌓여야 못하는 걸 못한다고 말할 수 있고, 실수를 실수라고 인정할 수 있고, 좋지 않은 걸 좋지 않다고 담백하게 말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신뢰가 쌓이기까지 다그치지 않고 기다려 주길 바라요!
조금은 다른 이야기일 수 있지만 마지막으로 아이유가 ‘관객이 될게’라는 곡을 만들 때의 마음을 나누고 싶어요. 수많은 관객들의 시선과 기대를 부담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혼자서는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공연을 해낼 수 있는 동력으로 삼았던 아이유처럼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생각에서 부담감 너머의 마음을 얻기를!
(*4명의 객원멤버가 함께 해주었습니다. 마지막 객원멤버를 소개합니다.)
기획자인 숨니, 오웬과 다르게 제작팀에 소속되어 있는 디자이너입니다
경력직이자, 타 팀의 관점을 더해주기 위해 이 프로젝트에 초대되었습니다
오웬과 닮은 꼴로 쌍둥이 설(?)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