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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직장에 오래 다니는 건 어떤 마음이에요?

'저 계속 다닐까요? 퇴사할까요?' 만큼 무의미한 질문도 없다.

by 숨니



오웬이 숨니에게

“One Club Player를 아시나요?”



최강야구의 오래된 팬 숨니, 야구만큼이나 축구도 좋아하시나요?

저는 숨니의 야구사랑만큼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인데요(TMI)

축구에서 말하는 'One Club Player'라고 들어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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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에서 소속 클럽을 은퇴까지 단 한 번도 바꾸지 않은 선수에게 주어지는 일종의 훈장과도 같은 타이틀이에요. 손에 꼽을 정도로 그 숫자가 적어 '낭만'의 대명사로 불리기도 하죠. 뿐만 아니라 한 클럽에서 오래도록 머문다는 건 실력과 인성을 모두 겸비했기에 뛰어난 선수의 반증이기도 하고요. 오늘은 제 바로 앞 연차 선배의 이직 소식을 듣게 되었어요. 지금까지 한참 선배들의 이직 소식을 들어온 터라 그런지 근 연차의 이직 소식은 저까지 기분을 묘하게 만들었던 거 같아요. 어쩌면 평생 새싹일 줄 알았던 저도 이제 이직이라는 고민을 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던 걸까요?


솔직한 마음으로 이직이라는 깊이 고민해 보지 않은 새로운 바람이 저에게 들어오니 이런저런 상상을 안 해볼 수가 없었어요. 공들여 만든 광고를 볼 때면 이 광고는 어디서 만들었을까? 에서 이 광고를 만든 회사는 어떤 회사일까? 또 어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일까?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연봉은 어떨까? 까지 들여다보기도 했죠. 뿐만 아니라 주변으로부터 여긴 어떻대 저긴 어떻대라는 이야기가 들려올 때면 제 마음은 궁금증으로 가득 차기도 했었어요. 그럼에도 이런 바람이 잠깐 스쳐가는 바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지금보다 훨씬 강한 바람이 불 때 다양한 이유로 지친 제가 그 바람을 타고 함께 날아가진 않을까 두려운 마음이 생기기도 해요.


이런 생각이 들 때면 숨니의 지난 9년이 저는 문득 궁금해졌어요. 광고업은 타업종과 달리 이직의 빈도가 잦은 직업이라고 생각되어요. 그렇기에 9년이라는 시간이 타 업종에 비해 시사하는 바가 더 크게 느껴지고요. 뿐만 아니라 흔히 말하는 직장 권태기인 3년, 6년, 9년 차를 이겨내고, 주변의 숱한 유혹? 과 제안에도 원클럽플레이어로 성장을 이어 나가는 모습을 보기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고요.


숨니 나름대로의 명확한 기준이 있지 않았다면 한 조직에서 9년이라는 시간을 쌓아 오기 힘들었을 거 같은데 업, 그리고 조직을 바라보는, 평가하는 기준이 너무 궁금합니다. 왠지 숨니의 답변은 "오웬, 그런 고민은 충분히 자연스러운 고민이야"라고 해주실 거 같지만 오늘은 숨니의 검은 속내?를 파 해치고 싶어요. 숨니가 업과 조직을 바라보는 기준, 그리고 계속 이곳에 남아야겠다고 판단하실 때의 마음을 저에게 공유해 주실 수 있을까요? 태생이 팔랑귀인 제가 숱한 유혹에 휩쓸리지 않고 현명한 판단을 이어 나갈 수 있도록 힌트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숨니의 답장

“업을 대하는 나만의 명확한 기준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원클럽플레이어 숨니입니다 (으쓱)


'낭만'이라는 멋진 단어로 인정받으니 9년이라는 시간이 훈장 같이 느껴지는데요? 누군가를 만나 제 소개를 하면 회사를 빼놓을 수 없는데, 말하기 망설여질 때가 있었거든요. 9년이라는 시간이, 더군다나 이직이 이렇게 많은 시대에 한 직장에서 9년은 좋게 말하면 끈기인데 안주하는 사람으로 볼까 싶기도 해서요. 태생적으로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 기질의 사람이라면 시간의 누적으로 이뤄낸 루틴이 평화를 주었을 텐데, 저는 타고나기를 그런 게 안 되는 사람이더라고요. 성장감, 성취감이 일에서 정말 중요해서 고민되었던 적이 많았죠.


저희 작년에 회사에서 튤립 구근 키웠던 거 기억하나요?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에 출근하면 얼마나 자랐는지 튤립부터 봤잖아요. 성큼성큼 크는 튤립이 부럽기도 했어요. 튤립의 성장은 눈에 보이지만 제 성장은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니 매일이 조급했던 것 같아요.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데 스스로를 끈질기게 괴롭혔죠.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 고민의 시간들이 저의 '업을 대하는 기준'을 선명하게 세우는 시간이었더라고요.


스크린샷 2025-04-02 오전 11.39.46.png 주말이 지나고 출근하면 무럭무럭 자라 있던 기특한 숨니팀 튤립이 들



[하고 싶은 일]

오늘 회사에서는 3년 정도 일한 동료의 페어웰 인사가 있었어요. 인사말 중 3년의 시간 중 많은 게 바뀌었지만 바뀌지 않은 것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아요. "광고를 향한 애정은 바뀌지 않았다"는 말이요. 저는 입사할 때 광고가 하고 싶어 들어온 건 아니었어요. 광고를 만드는 게 어떤 일인지,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르고 들어왔다는 게 더 맞겠네요. 그리고, 지금도 이 일이 제 천직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저는 그저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기획일을 하고 싶었고, 그걸 밥벌이로 할 수 있는 가장 적확한 일이 광고였습니다. 무형의 생각을 가지고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라니 정말 멋지지 않나요? 답이 하나로 정해지지 않은 것, 그래서 생각을 무궁무진하게 펼칠 수 있는 것, 혼자가 아닌 팀으로 함께 일하는 것, 심지어 브랜드가 바뀌고 새로운 캠페인 브리프를 받으면 새로운 챕터가 시작되는 것 등 저에게는 단점보다 장점이 많은 일이었습니다.


[다니고 싶은 회사]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만 했나요? 어떻게 남의 돈을 버는 일인데 재밌고 좋기만 하겠어요? ^^; 몇 주간 고생했던 캠페인이 갑자기 하루아침에 없던 일이 되거나, 함께 하는 일이다 보니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도 많았죠. 그런데 제가 이 일을 오래 할 수 있었던 건 오웬과 제가 몸담고 있는 이 회사가 광고라는 업을 하는 데 있어서 선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회사였기 때문이었어요. 광고라는 건 누군가에게 좋다고 알리는 거잖아요. 저희 회사는 '잘 알린다' 이전에 우리가 알리는 제품/브랜드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소개할 수 있나? 그럼 이 광고로 사람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지? 를 고민하는 회사기 때문에 제가 지향하는 가치와도 잘 맞았어요. 그리고, 워낙 광고회사가 야근과 갑질이 많다고 하잖아요. 없다고 할 순 없지만 적어도 야근과 갑질을 정당화하는 회사는 아니어서 일의 의미를 잃지 않을 수 있었어요.



노력보다는 시간의 흘러 자연스럽게 원클럽 플레이어가 되었지만 마음이 한결같이 이곳에 머물러 있었나? 하면 떳떳하지는 않아요. 저는 지극히 평범한 일반적인 사람이 속해서 3년 차 6년 차의 일태기를 정면에서 맞았거든요. 주변에서는 그런 마음이 들 때지, 금대리일 때 옮겨야지라는 말로 숱하게 저를 흔들었어요. 그런데 연봉, 복지, 워라밸과 같이 이직 사이트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한 줄의 스펙 이상의 장점이 있었어요. 저를 붙잡은 가장 큰 이유는 두 가지예요.



따라가고 싶은 롤모델이 있는가?

지금은 퇴사하셨지만 제가 주니어 때 한 장 한 장 감탄이 나오게 제안서를 쓰는 선배가 있었어요. 너무 좋았던 제안서는 100번도 넘게 열어 봤을 거예요. 어떻게 이런 단어를 고르고, 이런 감동을 줄 수 있지? 제가 하고 싶은 일이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기획이라고 했잖아요. 제 마음이 이미 움직였는데 어떻게 다른 곳에 신경이 쓰이겠어요. 저걸 훔쳐먹기도 바쁜걸요.


내가 재밌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인가?

'재밌게'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텐데 저한테 재밌게는 프로젝트의 결과보다 개인의 의미에 더 가깝습니다. 야근을 많이 하더라도 우리 팀이 열정적으로 애정을 가지고 제안을 했을 때, 이거 안 사면 바보지하는 마음이 들 만큼 마음에 드는 크리에이티브가 나왔을 때, 그리고 팀원들이 그 과정에서 성장감을 느낄 때와 같이 과정상에서의 효능감이 저를 즐겁게 하고, 지금의 팀이 그런 즐거움을 만들어 주는 팀이에요.



아시다시피 저는 제주에서 25년을 살다 입사를 위해 집을 옮겼어요. 서울에는 가족도 친구도 없어서 저에게는 이곳에서 만난 동료가 가족 같기도, 친구 같기도 합니다. 아무것도 모를 때 지금 이렇게 밥벌이하게끔 자기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나눠준 선배들도 있고, 생일이면 집에 초대해 미역국을 끓여준 사수도 있었어요. 주말에 급성 이석증이 와서 몸도 제대로 못 가누고 응급실에 가야 했는데 한달음에 달려와 준 동기들도 있고요. 아! 전셋집을 구하는데 제가 걱정되셨던지 명함을 쥐어준 법무팀 이사님도 있습니다. ㅎㅎ 너무 스윗하지요? 이쯤 되면 제게 이곳이 왜 특별한 지 이해가 되시나요? 그런데, 그때의 마음을 내어줬던 선배들은 저의 고맙다는 인사에 늘 이렇게 이야기했었어요.



고마운 마음은 아껴뒀다가
나중에 숨니가 선배가 되면 고스란히 다시 나눠줘!



여전히 잊지 않고 그 마음을 갖고 일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더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혹은 이곳이 나의 일의 가치관과 맞지 않는다면, 앞선 큰 이유가 아니라도 아주 갑자기 이곳을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오웬도요. 다만, 저는 이곳에 있거나, 이직하거나 저만의 기준을 갖고 남의 이야기에 최대한 흔들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건 제 삶이니까요. 남의 이야기에 휘둘려 현재에 집중하지도, 다음으로 옮겨가지도 못하는 게 가장 낭비되는 시간이 아닐까요?


앞으로 정말 셀 수 없이 흔들릴 거예요! 그런데, 오웬처럼 일에 대해 늘 고민하고 나아짐을 고민하는 사람은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갈대보다, 버드나무 같은 사람이 될 거예요 아무리 강한 바람이 와도 나뭇잎 사이로 흘려보내고 뿌리는 흔들리지 않는 버드나무 같은 사람이요! 현명한 선택, 별거 있나요? 제 선택을 믿는 것이 가장 현명한 거죠.








오웬이 티제이에게

“티제이도 이직을 생각하신 적이 있나요?”



진정한 원클럽 플레이어 티제이!


회사의 성장을 함께 도모해 오시면서 티제이도 엄청난 성장을 함께 이루어 내셨을 거 같아요. 하지만 그 성장 가운데 숱한 어려움에 계속 마주하셨을 거 같은데 그럼에도 회사 곁을 떠나지 않고 오랜 시간 함께해 온 이유가 있을까요? (이사님께 이런 질문드려도 괜찮나요..? 손을 덜덜 떨면서 적고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은 질문이 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 저희가 함께 다니고 있는 회사의 이름을 떼어놓고 ‘내가 속한 소속’에 대한 고민이 생겼던 적, 그리고 그 고민을 떨쳐내고 지금까지 함께할 수 있었던 티제이만의 명확한 기준이 궁금해요.




티제이의 답장

“저는 우리 회사가 커뮤니티 같아서 좋아요”



음.. 원클럽맨이라고 하기엔 지금이 네 번째 직장이라..


전 광고를 전공했지만 광고회사를 오기 전까지 세 곳의 회사를 다녔거든요. 다른 길을 먼저 걸어봤기 때문에 지금 이 길이 나랑 잘 맞는다는 걸 알게 된 것 같아요. 만약에 처음부터 광고회사를 다녔다면 어땠을까 잠깐 생각해 봤는데 사람은 걸어보지 않은 길에 대한 환상이 있잖아요. 어쩌면 다른 길을 한 번쯤 가봤을 것도 같은데 얼마 안 있어서 다시 돌아왔을 것 같네요.


광고일을 하면서는 다른 광고회사를 가볼까 하는 고민은 없었던 것 같아요. 저는 광고는 통섭적으로 일할 때 재미있고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우리 회사처럼 기획과 제작을 함께하고, ATL과 BTL을 넘나들며 일할 수 있는 조직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사실은 이 이유가 제일 큰 것 같은데 전 우리 회사가 커뮤니티처럼 느껴져요. 오래 다녀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문화가 주는 즐거움과 안락함이 있어요. 다른 어느 회사를 가서 실없는 농담 따먹기 하다가, 정신 차리고 일하다가. 이런 사조직?에 초대받아 일에 대해 글도 쓰다가 하겠어요.


여기까진 제가 걸어온 길에 대한 이야기였고 오웬의 길은 저의 길과는 또 다르겠죠. 언젠가 걸어보지 못한 길을 가기로 결정할 수도 있고 그게 좋은 선택일 수도 있어요. 그래도 지금 이 순간 오웬과 같은 길을 걸으며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즐겁네요. 오웬 꽃길만 걸어라!








셀리나가 숨니에게

“퇴사를 결정하는데 숨니만의 원칙이 있나요?”



이 책에 어울리는 질문일까 고민이 되었지만 ‘일’이 주제인데 빠지면 섭섭할 것 같네요.


숨니는 ‘퇴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요즘엔 ‘퇴사’ ‘이직’이 너무나 자연스럽기도 하고 하나의 문화를 이루어 가기도 하잖아요. 조용한 사직, 시끄러운 퇴사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조용한 사직
일을 그만두진 않지만 정해진 일만 하고 초과 근무는 거부하는 사직인 듯 사직 아닌 사직 같은 조용한 사직

시끄러운 퇴사
퇴사 과정을 라이브 방송을 통해 보여주거나, 회사에 쌓인 불만 털어놓고 가는 시끄러운 퇴사


이런 용어가 만들어질 때마다 사람들의 관심이 이곳에 모이고 있구나라고 느끼게 돼요. 쉽게 이직하고 퇴사하는 요즘, 한 곳에 오래 머무르는 게 도태되는 것처럼 여겨지는 시대에 퇴사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힘은 무엇일까요?


제가 주임일 때, 코로나가 터지면서 참 많은 것들이 바뀌었어요. 선배 동기 할 것 없이 일주일에 한 명 꼴로 나갔죠. 그때 퇴사하는 사람들을 보며 ‘남아 있는 게 도태되는 건 아닐까?’하고 고민했던 기억이 나네요. 저는 깊은 고민 끝에 ‘퇴사’에 대한 기준을 세웠어요.


하나,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속도에 휘둘리지 말 것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와 속도는 그들과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둘, 치명적인 이유가 아니라면 힘들다고 그만두지 말 것
어딜 가든 힘들지 않은 곳은 없기 때문에
셋, 다음 거처 없이 퇴사하지 말 것
성향상 일이 힘든 것보다 소속이 없는 것을 더 힘들어하기 때문에
넷, 두근거리는 일을 만나면 도전할 것
나에게 더 맞는 일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다섯, 안되면 다시 하던 일 열심히 할 것
내 길이 아니니까 가던 길 열심히 가면 되기 때문에


적어보니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저도 제 나름대로 퇴사에 대한 확고한 기준들을 쌓아왔네요. 기준을 세워 놓으니 웬만해서는 퇴사하고 싶다는 마음이 크게 작동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숨니는 중간에 무언가를 포기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라는 질문을 할 정도로 하나를 시작하면 끝까지 해내는 숨니, ’ 퇴사‘를 생각해 본 경험이 있으신지, 저처럼 퇴사의 기준을 가지고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숨니의 답장

“일하는 내 모습을 잘 들여다보기”



우선, 퇴사라는 게 회사에서 꺼내기 조심스러운 이야기 일 수 있는데 이렇게 터 놓고 이야기하니 새롭네요! 팀원의 퇴사 원칙을 들어본 팀장이 몇이나 될까요? 간혹, 장난으로는 ‘이 일 이제 못할 것 같아’라는 말을 하지만 서로 퇴사의 원칙을 터놓고 이야기하진 않으니까요. 그런데, 퇴사의 기준을 만들어 두는 건 스스로에게도, 회사에게도 ‘건강한 퇴사’를 만드는 좋은 방법이라 생각해요.


저는 제가 이렇게 끈기 있는 사람인 줄 몰랐어요. 알바 4년, 회사 9년, 연애 12년. 어떻게 보면 서른넷 인생이 조금 단조로워 보이기도 하네요. 저는 성격상 뭐든 금방 질려하지 않아 하는 성격이에요. 주어진 것 안에서 재미를 찾고, 그 안에서 바닥까지 파보거나, 경험을 축적시켜 그 속에서 정점을 찍는 걸 좋아해요. 새로움에 대한 확장보다 밀도를 높이는 게 저에게는 가장 큰 ‘성장감’입니다.


제 퇴사의 기준은 심플해요.

2개에 명확한 답이 내려지지 않을 때 다른 길을 선택할 거 같아요.

(*퇴사 후 이 글을 다시 읽어보는데 정말 나는 이 기준으로 퇴사를 결정했다)



1. 따라가고 싶은 롤 모델이 있는가

현재 저로서 롤모델은 꼭 선배에 국한되어 있지는 않아요. 닮고 싶은 지점도 기획서를 쓰는 일, 아이디어를 내는 일에 ‘하는 일’에 한정되지 않아요. 생각, 관점, 태도와 같은 조금은 더 큰 이야기죠. 즉, 나에게 인풋이 되는 사람,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굳이 이직을 생각하지 않을 것 같아요.


2. 재밌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인가

예전에는 환경이라는 게 현재보다는 ‘미래’에 초점을 맞춰서 생각했었어요. 마치 주식처럼 그래서 내가 1년 뒤에 성장하고 있을지, 업계에 미래가 밝은지 같은 것들이요. 그런데 막상 일을 하다 보니 오늘 당장 퇴근할 때 보람 있고, 내일 당장 출근할 때 회사 가는 길이 두렵지 않은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퇴사하고, 다른 동료들이 저마다의 다른 경험들을 축적해가고 있을 때 저도 당연히 불안했죠. 이직이 이렇게 활발한 시대에, 심지어 경험이 곧 커리어인 시대에 한 직장에서 하나의 일만 계속 파는 게 안주하는 사람으로 보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고요. 최근 한 강연에서 이직 경험이 많았던 연사 분의 이야기를 듣고 위안이 되었습니다.



스크린샷 2025-04-02 오전 11.54.40.png @_onewriting


변해야만 성장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껍데기를 깨고 나오는 것만큼이나
지키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움직임 하나 없이 갑갑해 보이는 껍데기를 뒤집어쓴 번데기는
다른 말로 어린 나비다.
나비가 되려면 반드시 인생의 어느 시기는 번데기여야만 한다.


저는 운 좋게 내 껍질을 조금 일찍 찾은 나비일 수 있지 않을까요? 9년의 시간이 안주하는 게 아닌 어른 나비가 되기 위해 껍데기를 필사적으로 움켜쥔 시기일 수 있지 않을까요? 분명한 건, 환경을 바꾸지 않고 그 시기를 보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던 것들이 있다는 거예요. 남들이 환경을 바꾸며 새로움에 도전하고 적응 기간을 가질 때 저는 온전하게 성숙의 기간으로 썼을 테니까요. 언젠가 저에게도 분갈이가 필요한 시기가 오겠지만, 요즘은 제 선택에 만족하고 있어요. 셀리나의 퇴사의 원칙을 보니 조금 더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셀리나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어떤 거예요? 적당한 속도는 어느 정도의 속도일까요? 퇴사를 결정할 수 있을 만큼의 치명적인 이유는 어떤 걸까요? 셀리나를 두근거리게 하는 일은 어떤 거예요? 저는 셀리나랑 오래 일하고 싶거든요! 이런 이야기를 건강하게 나누며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셀리나가 오웬에게

“오웬도 이직을 생각해 본 적 있나요?”



오웬은 7명의 든든한 동기가 있지요?

숨니처럼 좋아하고 존경하는 선배도 있고요.


제가 처음 퇴사를 고민하게 된 건 존경하던 선배와 든든한 동기가 퇴사를 하는 시점부터였어요. 숨니가 퇴사를 한다면? 동기 절반이 새로운 곳으로 이직을 한다면? 오웬은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나요? 제가 퇴사에 대한 기준을 세웠던 것이 마음을 다잡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처럼 오웬만의 기준을 세워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퇴사를 너무 많이 생각하지는 말고요..!)




오웬의 답장

“흔들리다 보면 제 나름의 기준이 생기겠죠?”



저에게는 조금 먼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만일 동기 중 한 명이 퇴사를 한다면? 혹은 숨니나 셀리나처럼 가까운 선배가 퇴사를 한다면 갑자기 제 마음도 요동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드네요. 저에게 이직이란 단어는 지금보다 더 나은 상태로 가기 위한 발돋움으로 다가오는 거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셀리나의 가정처럼 동기 중 절반이 퇴사를 하고 롤모델 같던 선배들이 줄지어 이직을 한다면 나 혼자 퇴보하는 느낌이 들 거 같기도 하고요. 저곳엔 무엇이 있길래 다들 떠나는 걸까?라는 생각도 들겠죠? 그런데 셀리나의 탄탄한 기준들을 쭉 읽어보며 든 생각이 하나 있습니다.


이건 직접 흔들려봐야 비로소 발견할 수 있는 기준이다!



이러한 생각을 하다 보니 에피소드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군입대를 하고 난 직후 1주일을 흔히 가입소 기간이라고 해요. 이 가입소 기간이 끝나는 날 저녁이면 모두를 세워놓고 "집 가고 싶은 사람 나와!"라고 교관들이 외치죠. 그때 너무 웃긴 게 딱 한 명만 나오면 두 명이 나오고 두 명이 나오면 열 명 스무 명은 우습게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최종적으로는 500명 중 거의 50명이 넘게 퇴소를 하게 됩니다. 이런 대혼돈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면 입대 후 처음으로 내가 왜 이곳에 남아야 하지? 혹은 이곳에 온 이유는 뭘까 등의 꽤나 본질적이고 깊이 있는 고민을 하게 됩니다. 그러곤 이성적인 판단을 통해 나름의 기준이 생기고 그 끝에는 이곳에서 남아 끝까지 버티겠다는 다짐으로 연결되었던 거 같아요.


이직의 기준도 비슷한 거 같아요. 아직 외부의 움직임에 제대로 흔들려 보지 않아서 그런지 그 기준을 가늠하기 어려운 거 같아요. 앞으로 주변인들의 숱한 이직과 동요로 제 마음은 크게 요동치겠지만 반면에 제 스스로 기준점을 찾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습니다. 훗날 저도 셀리나처럼 명확한 기준이 생긴다면 그때 공유 드려 볼게요.



흔들리지 않고 피는 기준(꽃)이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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