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니 Dec 09. 2021

수술 후의 나는



수술 전 날. 입원한 지 9일째 되는 날, 나에게도 보호자가 생겼다.


바쁜 가족들을 대신해 상주 보호자가 되어줄 남자 친구 J는 오후에 도착했다.


코로나 시국에 상주 보호자를 하려면 72시간 내 PCR 검사 후 음성 판정을 받아야 한다.


원무과에서 보호자 등록을 마치고 드디어 병실 내 침대 옆으로 보호자 침대를 펼쳤다.


자리는 좁아졌지만 마음은 한결 편해졌고

병원 내 시설을 안내해주며 혼자 걷던 병원 복도를 함께 걷는다는 사실 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매일 카톡 하고 전화했지만 역시 얼굴을 보고 얘기를 나누는 것이 큰 힘이 된다.


수술 전 날인데도 저녁까지 먹고 12시부터 금식이라는 말을 듣고 소장을 절제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겠구나 싶었다.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있는데 옆 침대 보호자인 남편분이 양치질하는 소리에 우린 조용히 키득댔다.


“퀵쿽쿽!”


어김없이 나는 특이한 소리를 이제 나만 듣는 게 아니라 같이 듣고 웃을 수 있어서 신이 났다.


그렇게 기분 좋게 잠에 들어 다음날 아침 눈을 뜨고 양치를 했다.


난 두 번째 수술 예정인데 첫 번째 수술이 큰 수술이라 오래 걸릴 것이고 끝나면 대략 12시쯤 수술 예정이라고 안내받았다.


먹은 게 없지만 병원 복도를 걷고 병실에서 대기하다가 어제 받은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내 차례를 기다렸다.


12시가 좀 지나자 드디어 수술 침대가 왔고 난 초록색 수술 침대에 누워 수술실로 옮겨졌다.


보호자는 수술실 앞에서 대기하지 못하고 다시 병실로 올라가야 해서 밝게 인사를 나누고 난 수술실 안으로, 남자 친구는 병실로 갔다.


수술 대기실에서 잠시 대기해야 했는데 간호사가 와서 내 인적사항을 확인했다.


20분 정도 기다리자 다른 환자가 수술 대기실로 들어왔다. 그 환자는 이불을 푹 뒤집어쓴 채로 들썩이고 있었다. 울고 있는 것 같았다.


간호사가 인적사항을 확인하러 다가가자 이불을 걷었는데 내 또래의 여자분이었다.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가 많이 아프신 걸까, 마음이 아팠다.

수술 잘 될 거니까 걱정 마시라고 간호사가 친절히 위로해주었다.


찝찝하게 아까부터 아랫배가 뭉친 느낌이 들면서 변이 마렵기 전의 느낌이 들었다. 화장실에 다녀온다고 해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시간이 흘러갔고 곧이어 내 차례가 왔다.


차가운 수술실 방으로 들어가 수술 침대로 옮겨 눕고 발목과 양 팔이 묶였다.


“저 응가를 못 하고 왔는데… 괜찮나요?”


혹시라도 수술 중에 실수를 할까 봐 불안해서 조심스레 묻자 간호사는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마취 주사가 들어오자 혈관에 통증이 느껴졌다. 산소마스크가 씌워지고 곧 깊은 잠에 들었다.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지만 누군가 나를 깨우는 소리에 눈이 떠졌다. 그와 동시에 온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려오고 배에서 엄청난 통증이 느껴졌다.


너무 아프고 춥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간호사들이 내 몸 위로 덮인 이불 안으로 따뜻한 바람을 넣어주었다.


정신없는 와중에 사방에서 수술을 마친 사람들을 깨우는 소리가 들렸다.


“할아버지 일어나시면 안 돼요!!”


다급한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허리 수술을 마친 할아버지가 자꾸 일어나려고 해서 말리는 소리였다.


비몽사몽 한 사이에 병실로 옮겨졌고, 간호사들은 순식간에 옷을 갈아입혀주었다. 배가 너무 아프고 당겼지만 몽롱해서 자꾸만 잠이 쏟아졌다.


간호사들은 2시간 동안 잠들면 안 된다며 나를 깨워야 한다고 남자 친구에게 일러주었다.


아프고 졸린데 깨어있어야 하는 것이 정말 곤욕이었다. 게다가 목이 엄청나게 말랐는데 물은 마시지 못하고 물 스프레이를 입 안에 뿌려야 했다.


내가 입을 벌리면 남자 친구가 물을 입 안에 뿌려주었다. 쩝쩝. 입 안에 뿌려진 물을 모아 삼켰다.


무통주사를 맞지 않은 게 후회될 정도로 배가 너무 아팠다. 끙끙거리며 참다 보니 2시간이 지났고 드디어 잠을 잘 수 있었다.


수술 후 6시간 내에 소변을 봐야 한다고 했는데 정확히 6시간 정도 되자 오줌이 마려웠다.


침대를 일으켰지만 배에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아 남자 친구가 등을 받쳐 일으켜주었다. 일어나자마자 고통이 배가 되었다. 한 걸음 한 걸음 화장실로 옮겨가는 일이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


화장실에 도착해서 또 하나의 고난이 닥쳐왔다. 소변을 체크해야 하는데, 간이 소변통을 변기에 끼우고 소변을 본 후 소변통에 옮겨서 눈금으로 몇 mm인지 체크 후 기록해야 한다.


가족도 아닌 남자 친구가 하기엔 민망하고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너무나도 심한 통증에 그런 감정은 떠오르지도 않았다. 남자 친구가 변기에 간이 소변통을 제대로 끼우지 못하자 서있기도 힘든 고통에 제발 빨리 해달라고 짜증을 냈다.


변기에 앉는 것도 바지를 내리는 것도 혼자 할 수가 없었다. 배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소변도 시원하게 나오지 않았다.


마치 아기가 된 듯이 누군가의 보살핌 없이는 혼자 눕지도 못하는 나는 진통제를 맞으며 약기운에 의지해 잠에 들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수술 전 일주일 동안의 병원 생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